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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 후, 꿈이 자라는 시간

초등 편

by My Way

자유로운 영혼이 된 아이(09화 참조)는 학교생활도 즐거워했지만, 무엇보다 수업이 끝난 뒤의 시간을 더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전학을 온 이 학교는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아이의 방과 후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여러 가지 꿈을 실험해 보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이의 꿈은 시시각각 바뀌었지만, 그 꿈들은 모두 학교 현장에서 피어난 것들이었습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을 두고 "정규 수업이 아니니 사교육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공교육의 연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학교가 직접 선정한 강사들이 학교 안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만큼, 학교밖 교육과는 결이 다르다고 믿었고, 그래서 더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하고 재미있는 수업이 많아, 분기마다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이전 학교에는 방과 후 프로그램이 몇 개 없었고, 그마저도 모두 학습과 연계된 수학, 영어, 국어 등의 프로그램들이라 사교육 성격이 짙었는데, 이곳은 오히려 그런 프로그램이 소수였습니다. 대신, 아이들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고, 진로를 꿈꿀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분기별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고 했지만, 방과 후 개인 시간을 고려해, 1~2개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는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학습적인 부분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영어, 수학 프로그램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아이는, 그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들 중에서 스스로 원하는 수업을 골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며 아이의 꿈이 계속 변해갔습니다.


첫 번째 꿈은 축구선수였습니다.

생후 9개월 무렵부터 걸음을 뗀 아이는, 생후 349일째부터 공을 찼습니다. 만약 제가 '아이의 특별함'에 빠졌다면 아마 축구 신동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몸치 엄마와 저질체력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축구를 잘 할리 없다는 생각에, 그저 공을 주고받는 축구'놀이'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에 '축구'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이는 반색하며,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축구는 운동화가 너덜너덜해지고, 햇볕에 피부가 까맣게 타도록 이어지며, 아이에게 축구 선수라는 꿈을 꾸게 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에게 '축구'는 인기 프로그램이라 접수가 순식간에 마감되곤 했습니다. 아이는 많이 아쉬워했지만, 곧 수긍하고 다른 재미난 프로그램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또 다른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축구사랑은 식지 않아서, 초등학교를 지나 카이스트를 다니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 꿈은 마술사였습니다.

지금도 집에 남아 있는 마술도구들을 볼 때면 자그마한 손으로 마술 연습을 하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무한반복놀이(1편 05화 참조)'에서 시작된 무한반복 연습은 아이의 삶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태권도를 배울 때도, 수학공부를 할 때도, 완벽히 몸에 익히고, 머리로 받아들일 때까지 아이는 부단히 애썼습니다. 마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카드를 들고 자신만의 요령으로 카드 마술을 선보이기 위해 하루 종일,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카드를 손에 쥐고 연습을 했습니다.


"뭐가 돼도, 되겠구먼."


아이 아빠는 아이의 그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며, 가끔씩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런 아이가 대견하고 예뻤습니다.

아이는 어린이 마술사 자격시험에 도전해 '세미매지션 자격증'을 딴 후 마술수업을 그만두었습니다. 마술이 싫어서가 아니라, 더 재미난 것을 찾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TV에서 하는 마술 공연들을 보면, 가끔 그때가 떠오르곤 합니다.


세 번째 꿈은 배드민턴 선수였습니다.

매번 축구 신청에서 미끄러지자 선택한 대안이었지만, 의외로 아이에게 잘 맞았습니다.

배드민턴 강사 선생님은 방과 후 프로그램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기본기부터 배드민턴 룰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셨고, 덕분에 아이의 배드민턴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학교 대표로 뽑혀 훈련을 받을 기회가 생기면서 아이에게는 이 배드민턴이 새로운 활력이 되었습니다.


그때 쌓은 배드민턴 실력은 과학고등학교 1학년때, 2, 3학년들이 나가는 대구지역 고등학교 배드민턴 대회에 대표로 차출되며 입증되었고, 대학원생이 된 지금도 여전히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고 있습니다.

사실, 아이는 값비싼 라켓이나 배드민턴 전용 운동화 같은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저 운동 그 자체를 즐기며,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과 열정을 만끽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방과 후 프로그램들로 꾸었던 여러 꿈들은, 이 과학자라는 꿈의 부수적인 꿈이었지도 모릅니다. 전학 오자마자 신청한 과학실험 방과 후 프로그램은 아이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전학 첫 학기부터 6학년을 마칠 때까지, 이 프로그램은 고정해 두고 다른 프로그램들을 그때그때 선택했으니 말입니다.

과학실험 수업을 통해 아이는 '과학'이 가장 재미있는 분야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과학책과 병행하며 호기심을 채우고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그렇게 쌓은 꿈과 열정은 결국, 지금 아이가 공학자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초등 3학년] 과학 실험 방과 후 프로그램 수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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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축구 방과 후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이 아닌 즐거운 운동을 경험했습니다. 배드민턴 선수로 차출되며 성취감을 느꼈고, 마술을 배우며 발표력을 키웠습니다. 'Why?' 시리즈와 '내일은 실험왕', '내일은 발명왕' 등의 학습 만화책을 즐겨보던 꼬마 예비 과학자는, 과학실험 방과 후 프로그램을 통해 질문하는 아이, 호기심을 해결하는 아이로 성장했습니다.


제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주요 과목(국, 영, 수, 과)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대신, 학교 수업을 마치면 방과 후 프로그램을 통해 스펙이 아닌 경험을 쌓고, 경쟁이 아닌 성장을 이루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통해 아이 스스로의 세계가 확장되고, 아이의 진짜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는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스물두 번째 고슴도치 시선] 생후 360일째부터 아이는 구석진 곳에 숨어 있거나,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부지런히 놀다가도 가끔 멍을 때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1편 11화 열 번째 고슴도치 시선 참조).

그런데, 초등학생이 된 후에도 종종 비슷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면, 어디든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 모습, 즉 명상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마도 제 아이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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