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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겨운 건 딱 싫어!

영유아편

by My Way

혹시 아이의 첫 뒤집기를 기억하십니까?


제 아이는 생후 103일째 첫 뒤집기를 성공하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얼떨결에 성공해 어리둥절한 얼굴로 낑낑거리며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주일 뒤, 뒤집기가 완성될 때까지 아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적으로 뒤집기를 연습했습니다.


요즘은 터미타임(Tummy Time)이라고 해서 생후 1개월 전후로 아기의 상체 힘을 길러주기 위해 일부러 엎드려 놀게 하면서 목 가누기, 뒤집기, 기기 등의 준비를 시킨다고들 하는데, 제가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의 행동발달 그 이면에 아이 스스로의 반복적 연습이라는 숨은 노력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반복 연습'은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하기 시작해, 놀이와 학습으로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반복'이라는 것이 삶을 익히고 배워나가는 바탕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놀이로 이어진 반복활동, 어떤 게 기억나십니까?


저는 생후 7개월 아이가 실내용 유모차에 앉아 방울이 달린 작은 인형을 가지고 놀다 떨어뜨렸던 그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날, 저는 아이가 실수로 떨어뜨렸다고 생각해 주워줬는데, 제 눈을 빤히 보면서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떨어뜨리는 겁니다.


'어, 이거 어디서 봤는데?'

한때 육아책을 맹신하며 정독했던 저는 곧 아이의 행동이 '무한반복놀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때 당시 제가 참고했던 육아책에 따르면, '아이들은 반복놀이를 통해 신뢰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라고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충분하다 느낄 때까지 무한반복놀이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는 방울 달린 인형을 떨어뜨리고, 엄마가 주워주는 그 단순한 놀이가 너무 재미있는지 까르르 소리 내서 웃고, 박수를 치며 좋아했습니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니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10번, 20번, 30번이 되어도 도대체가 끝날 기미가 없는 겁니다.


'지겨운 건 딱 싫어!'


안 그래도 저질체력이었던 저는 지겨운 반복놀이에 그만 지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 이 반복놀이는 놀이 이상의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놀이의 다양한 변주를 시도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잠시 바닥에 누워있다가 아이가 인형을 떨어뜨리면 까꿍 놀이처럼 몸을 일으키면서 주워준다거나, 노래(동요)를 접목해 박자에 맞춰 인형을 주워준다거나, 떨어뜨린 인형을 다른 물건으로 바꿔 아이의 반응을 살펴본다거나 하는 식으로 놀이를 변형하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아이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준다는 그 놀이를, 아이가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면, 그때서야 큰 대(大) 자로 뻗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만의 놀이규칙을 만들어, 아이와 놀 때만큼은 가능한 그 규칙대로 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 컨디션이나 감정에 따라 일관성이 없는 날도 생길 것 같았습니다.

그때 당시 제 육아 스타일은 육아책 맹신에서는 벗어났지만, 좋다는 방법은 다 한 번쯤 실행해 보던 상태였는데, 책에서 읽은 내용 중 '일관성 있는 육아교육'에 꽂혀 있던 시기였습니다.


만약 지금처럼 육아에 대한 정보가 넘쳐났다면, 그중에서 선별해 전문가의 지침을 따랐겠지만, 제가 아이를 키우던 20여 년 전에는 그렇지 못해, 제 생각대로 룰을 정했고, 이 놀이규칙은 이후 아이와 놀 때마다 되새기며 지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첫째, "지겹다." 혹은 "엄마는 재미없어."와 같은 말은 하지 말자.

놀이가 지겹고, 재미없는 건 놀이 당사자인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어른의 시각이라 생각해, 아이와 놀 때는 그런 마음과 말을 자제하려고 애썼습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아이와의 무한반복놀이에 '지겨운 건 딱 싫어!'라는 마음이 들긴 했지만, 다행히도 마음의 소리가 밖으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와 관련해, '엄마가 지루해하고, 재미없어하면, 아이에게 좌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한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얼마나 다행이다 싶던지...


둘째,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노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아이와 놀아준다는 말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저는 '놀아준다.'는 것에는 의무감이나 위계가 느껴져서 '함께 논다.'는 생각을 가지려 애썼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아이도 재미있어야 하지만, 엄마도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난감을 고를 때에도 개월수에 맞는 장난감을 고르되, 제 기준에서 장난감의 주 용도 외 다양한 놀이가 가능한 지부터 체크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있는 물건들 중,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장난감화해서 아이와 함께 놀았습니다. 아마 제 생애 가장 아이디어가 빛나고, 창의적인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놀이 주도권을 뺏지 말자.

앞선 에피소드(04화)에서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저질체력이다 보니, 아이에게 본의 아니게 놀이 주도권을 주긴 했습니다만, 반복놀이에 대한 지루함을 빌미로 놀이 주도권을 뺏어오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다만, 다른 억양, 다른 표정, 다른 몸짓, 그리고 놀이 패턴을 아주 살짝 바꾸는 것 등을 통해 놀이를 확장함으로써 나름 지루함을 타계하려 애썼습니다.


아이의 단순 무한반복놀이는 꽤 오랜 기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의 방식으로 그 시기를 잘 견뎠고, 아이도 충분히 만족했는지, 단순 무한반복놀이가 다른 형태로 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책'이었습니다.


[생후 10개월] 책 = 장난감

책2.jpg




[네 번째 고슴도치 시선] 생후 100일 무렵 두 손을 맞잡던 행동이 발전해, 생후 179일째부터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소근육 발달이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책 편식?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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