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편
육아와 교육에 있어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제가 아이를 키울 20여 년 전에도 '책'은 중요했습니다.
최근(특히 코로나 19 이후), 아기 엄마들 사이에 '책육아 열풍'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영유아기부터 책과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열풍'이라는 단어가 주는 과한 느낌이 조금 신경 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초독서증'이라는 책육아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 초독서증(Hyberlexia) : 뇌가 성숙하지 않은 아이에게 문자를 과도하게 주입한 결과, 의미는 전혀 모르면서 기계적으로 문자를 암기하게 된 증세. 원래는 5세 이전에 배우지 않고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요즘에는 다른 아이들과 놀거나 가족과 어울리는 것보다 책을 보고 글자를 읽는 것에 몰두하는 것을 말함.
책육아 열풍에도 아이들의 문해력(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부족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 저는 '열풍'이란 단어에 함축된 너무 과도한 독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의 첫 독서는 생후 6개월, 잠들기 전 책 읽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밤중 모유수유를 하고 있던 시기였지만, 아이가 책과 친해졌으면 하는 생각에 연령대에 맞는 책을 몇 권 사다가 잠들기 직전에 반복해서 읽어주곤 했습니다. 다만, 읽어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고, 아이가 만지거나 입에 가져간다거나 하는 등 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잠들기 전 책 읽기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이어졌습니다. 두 돌 무렵부터 아는 단어가 늘기 시작해 생후 34개월 무렵 한글을 완벽하게 뗀 후에도 잠들기 전 책 읽기는 엄마 혹은 아빠와 계속 이어졌습니다.
[생후 17개월] 혼자 책을 꺼내 보고 있는 중. 앗, 더벅머리...
제가 했던 책육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영유아기의 독서는 '책 읽기'보다는 '책과 친해지기'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가지고 노는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그 당시 지인들로부터 물려받은 하드커버 중고 책이 있었는데, 아이가 읽기엔 수준이 좀 높았고, 받고 보니 좀 낡기도 해서 읽기용보다는 장난감 대용으로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책을 쌓고 무너뜨리는 놀이,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너는 놀이, 아이만의 성을 만드는 놀이 등을 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거나 눈여겨보는 책이 있으면, 그 책을 펼쳐 사물을 찾거나, 색깔을 알려주거나, 글을 읽어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놀았습니다.
둘째, 아이가 책을 읽어주길 원하면 어떤 책이든, 그곳이 어디든, 그게 언제든 상관없이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가끔은 독서가 목적이 아닌 무한반복놀이의 일환으로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주려고 하면 또 다른 책을 가지고 오는 행동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도 가지고 오는 책 모두를 단 1초라도 읽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계속 책을 바꿔가지고 오는 것은 아이만의 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행동을 절대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자란 후에는 같은 책만 여러 번 읽어달라고 하는 책편식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간혹 아이의 책 편식에 대해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저는 '책편식? 뭣이 중헌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어달라고 하고, 그런 현상이 며칠째 계속되어도 그냥 아이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었습니다. 다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05화(지겨운 건 딱 싫어!)에서 말씀드린 놀이의 확장을 여기에도 적용해, 책을 활용한 놀이로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계속 읽고 있던 책 속의 그림과 비슷한 그림이 있는 다른 책, 혹은 책 속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다른 책을 찾아서 보여주었습니다.
"어, 잠깐만. 이 책이랑 이 책에 같은 자동차가 있네?"
책들 속에서 같은 색깔의 사물, 같은 그림을 찾는 놀이는 아이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는지, 그 후 한 권에 집착하기보다 비슷한 류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는 등, 독서의 범위가 확대되었습니다.
셋째, 전집을 사주지 않았고, 아이에게 책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에 전집으로 인한 강박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전집이 괜찮고, 가성비가 좋다 해도 아이에게는 그런 부담감을 주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아이가 많이 어릴 때는 제가 선택한 책을 읽어주었지만,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는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아이에게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다만, 그럴 때 한 가지 유의했던 것은 아이가 쉽게 결정할 수 있도록 선택범위를 좁혀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독이 아니라 정독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실, 집에 아이가 읽을만한 책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틈틈이 사다 나르고, 아이가 원하는 책을 사주긴 했지만, 낱권으로 구매해서 그런지 아이의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여러 번 읽어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을 찾아내는 등 한 권의 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해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이가 책을 스스로 읽기 시작한 생후 34개월 차 어느 날, 집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꺼내 혼자 다시 읽어보더니 "우리 집에는 이제 재미있는 책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한 뒤부터는 원하는 책을 자주 사주곤 했습니다. 그때도 한 권을 여러 번 읽어보는 습관은 계속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덕분인지, 책을 좋아하게 된 아이는 생후 20개월부터 책을 읽는 척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제게는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보였습니다.
[다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 생후 10개월, 낯설어하던 친할머니를 보름 만에 다시 만났는데, 반가워하며 안겼습니다. 아무래도 기억력이 좋은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국어능력의 원천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