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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저질체력이면

영유아편

by My Way

최근(2025년 3월 기준), 우리나라 출생아 수가 동월 기준 10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물론, 올해 1분기 합계출산율은 0.82명으로, 여전히 OECD 평균 1.15명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의 인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2.1명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떤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와야 이와 같은 초저출산국가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워킹맘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세상, 경단녀란 말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어 일과 가정, 육아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조금 다른 의미의 워킹맘(대학원생)이긴 했지만, 조건부 친정살이(03화 참조) 덕분에 누구보다 좋은 조건에서 육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준비 걱정 없이 출근 전까지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퇴근 후에는 낮동안 육아를 담당했던 동생과 친정엄마로부터 아이의 낮생활을 공유받아, 아이에게 무엇을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될지 끊임없이 살펴보고 고민하면서 아이가 잠들 때까지 집중해서 놀아주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압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은 살림을 도맡아 주신 친정부모님과 낮동안 육아를 담당해 준 동생 덕분이었음을. 아마도, 저 혼자 살림과 일, 육아까지 했다면 이 정도로 아이의 니즈를 맞추고 아이의 성향과 취향을 캐치해 내진 못했을 겁니다.


이처럼 저의 육아 환경이 최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몸으로 놀아주기보다 누울 자리부터 찾는 엄마였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 엄마였지만, 태생부터 저질체력이었던 터라 퇴근만 하면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사실, 낮동안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열심히 일한 이유가, 집에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아이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였는데, 마음과 달리 매번 역효과가 났습니다.


하지만, 퇴근하자마자 제게 바통터치된 아이의 육아를 제 저질체력 때문에 방치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대한 정적인 놀이, 다시 말해 휴식 놀이를 시도하여 제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예를 들면, 화려한 색감에 숫자나 한글이 적혀 있는 다용도 매트를 사서 거실 바닥에 깔아놓고, 아이와 함께 엎드려 다용도 매트 관찰하기(숫자, 한글, 색깔) 놀이, 매트 위에 누워서 노래 부르기 같은 것을 통해 몇 분 간만이라도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엄마의 저질체력이 아이에게 꼭 나쁜 영향만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엄마가 저질체력이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첫째, 누구보다도 아이를 잘 관찰할 수 있습니다.

누울 자리부터 찾는 저질체력 엄마였던 저는, 아이 곁에 누워 아이가 뭘 하는지 가만히 지켜보고 관찰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제 아이의 경우, 돌 무렵부터 혼자 노는 시간이 꽤 늘어났습니다. 뭔가에 열중해서 혼자 웅얼거리기도 했고, 혼자 웃기도 하면서 뭔진 모르겠지만 바빴습니다. 저는 아이가 혼자 놀 때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개입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만 봤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을 보이는지 등을 빨리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요구에 즉각 반응할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록 누워있었으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혼자 놀고 있던 아이와 눈이 마주쳐 뭔가 반응(미소를 짓는 등)을 보이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바로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육아에 대한 저의 세 가지 다짐(02화 참조) 중 하나였던, '아이의 감정에 즉각 반응하자.'의 확장 버전이었는데, 아이가 아직 말이 서툰 시기, 집안 곳곳의 사물을 가리키며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물 인지 놀이를 할 때도 유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놀이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무한체력은 젊고 활동적인 엄마, 아빠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저질체력인 엄마에, 더 저질체력인 아빠가 있다면?

제 아이는 엄마, 아빠가 저질체력임을 아는지, 상호작용 놀이를 하는 시기부터 놀이의 주도권을 잡았습니다.

예를 들면, 생후 14개월 무렵 아빠 손을 잡고 이방 저 방을 그냥 걸어 다니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아빠가 따라와 주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희는 아이가 설계한 놀이 속에서 환자, 학생, 상점의 손님 등이 되어 아이가 시키는 대로 놀았습니다. 나중엔 해야 할 대사까지도 만들어주어 한 편의 연극 놀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아이가 놀이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 그 과정에서 아이 스스로 어떤 놀이를 할지 선택하고, 어떻게 놀지 규칙을 정하고, 놀면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어 자율성 향상, 정서적 안정감과 자신감 확보 등의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저희는 알고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엄마가 저질체력이라, 어쩌다 보니 아이에게 자기 주도놀이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엄마의 저질체력을 탓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가성비 좋게, 효율적으로 놀아줄 수 있을지를 궁리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제 아이는 운 좋게, 수동적인 엄마, 아빠 외에도 몸으로 놀아주는 젊은 이모들, 웬만한 것들은 다 허용해 주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이 계셔서 영유아기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루할 틈 없이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런데, 저질체력에 수동적인 엄마도 참기 힘든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생후 7개월부터 시작된 아이의 무한반복 놀이의 굴레였습니다.




[세 번째 고슴도치 시선] 생후 234일째, 카펫 모서리에 붙은 작은 라벨을 만지작거리며 한참 동안 살펴보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호기심이 남다른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생후 10개월] 장독 안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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