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편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생각보다 평화로웠습니다.
아침 7시. 아이는 눈을 뜨자마자 차려놓은 아침을 든든히 먹고 학교 갈 준비를 합니다. 전날 밤 미리 챙겨놓은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현관 앞에서 인사를 한 뒤 학교로 출발하면, 저는 아이 방 창문으로 쪼르르 달려가 아이의 등교 모습을 가끔 지켜봅니다.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밝게 웃으며 걸어가는 아이의 등굣길 모습을 눈에 담으며, 아이의 하루가 무사히 흘러가길 기도하고, 아이의 뒷모습이 학교 정문 너머로 사라지면, 그제야 저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제 하루를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이사를 온 곳은, 창밖으로 학교 정문이 보이는 '초품아'였습니다.
이 동네도 학교를 중심으로 아파트들이 즐비해, 매일이 북적이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에 살던 곳과는 분명히 다른 점들이 보였습니다.
일단, 방과 후에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예전 동네에서는 초등학생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곳에서는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었습니다.
이 동네 아이들도 분명 하교 후엔 학원에 가는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빡빡한 일정은 아닌 듯했고, 뭔가 이전 동네와는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무교육이니 배우는 내용 자체는 예전과 비슷한 것 같았지만, 숙제와 수행평가의 양이나 강도가 확연히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수행평가의 경우, 이전 학교에서는 품이 많이 드는 과제 때문에 아이가 밤늦게까지 공부방에 남아있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과한 과제가 없었습니다. 대신, '가족과 함께 OO 만들어오기'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과제가 많아졌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빠와 함께하는 미술숙제
게다가 시험에 대한 부담도 거의 없었습니다.
수학 단원평가나 받아쓰기 같은 시험이 있긴 했지만, 이전 학교처럼 경쟁을 부추기는 상장 시스템 같은 건 없었고, 말 그대로 해당 단원을 정리하는 간단한 테스트에 불과했습니다. 마침 그즈음, 초등학교에 중간, 기말시험을 없애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이 학교 역시 한 학기에 한번 정도 확인 차원의 시험만 치러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 기간의 풍경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곳은 평소에도 아이들 뛰노는 소리가 저녁 늦게까지 들렸는데, 시험 전날에도 놀이터가 여전히 왁자지껄했습니다. 예전 동네에서 느꼈던 시험 기간의 적막함은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 동네는 해맑고 건강하게 뛰노는 아이들이 많은, 그야말로 생기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사실, 이게 맞는데...
워낙 학구열이 치열한 동네에서 살다 온 터라, 이사 온 첫해에는 이런 풍경이 어리둥절하고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차츰 적응해, 어느새 아이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 아이도 이곳에 적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하교 후 친구들과 어울려 뛰놀다 들어오는 시간이 생겼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곳에 이사 온 뒤에도 태권도장을 다녔고,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에 참여하는 등 정규 수업 외에도 아이가 할 일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또,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습관이 된 저녁 식사 후 공부방 루틴(03화 참조)도 그대로 유지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녁 식사 전까지의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에 흠뻑 젖어 들어오는 날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원래,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전과 달라진 아이의 하루에는 여유와 활기가 가득해졌습니다.
확실히 제가 보기엔, 이곳 학교생활이 제 아이에게 더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교육열이 높은 환경에서 강도 높은 학습을 이어가던 아이가, 다소 여유로운 분위기로 옮겨오니, 생각의 깊이와 폭을 넓힐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듯했습니다.
특히, 매달 치던 시험에서 벗어나자, 아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활동, 예를 들면 책 읽기 같은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학교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을 경험해 보며,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아이가 전학 없이 그곳에서 계속 학교생활을 이어갔다면?'
아마도, 혼자 공부하던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결국 사교육 정글 속에 발을 들여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사교육 도움을 받으며 수업과 시험에 올인하는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의 학구열이나 교육열이 잘못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제 아이와는 맞지 않았다는 이야길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이 두 번째 이사는 옳았습니다. 이 동네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덕분에 아이가 제대로 된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아이의 초등 1, 2학년의 소중한 추억 일부를 빼앗는 변화를 겪게 한 점은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새롭게 터를 잡은 이곳에서만큼은 아이가 편안하고 안정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환경 변화로 잃었다'라고 생각한 것들은 정작 아이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어른의 기준에서 내린 추측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다만, 이 일을 통해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제 믿음은 더욱 단단해졌고, 아이 역시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순간들이 아이가 자기만의 길을 걸어갈 때,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믿습니다.
[스물한 번째 고슴도치 시선] 이사 후에도 아이는 태권도장과 피아노학원을 계속 다니길 원했습니다. 특히 태권도장은 학교 앞에도 있었지만, 이전에 다니던 도장과 같은 출신 대학의 지도자 네트워크에 속한 도장을 고집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차로 10분쯤 떨어진 곳을 다녔습니다. 덕분에 관장님들끼리의 소통이 원활해, 이곳 관장님도 이미 아이의 성격을 잘 알고 계셨고, 도장 간 교류를 통해 예전 친구들을 만날 기회도 종종 만들어주셨습니다.
아이의 태권도 여정은 검은띠를 딸 때까지 이어졌고, 피아노학원은 아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겠다 싶을 때 그만뒀습니다. 제 아이는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수준과 필요를 스스로 가늠하고 결정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다음 이야기] 방과 후, 꿈이 자라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