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편
"삶이... 행복하지 않아."
아이 교육을 위해 제가 내렸던 수많은 선택들을 묵묵히 따라와 주던 아이 아빠가, 어느 늦은 밤, 피곤에 절어 퇴근하자마자 제게 털어놓은 한마디.
그 순간, 쉼 없이 돌아가던 우리 가족의 일상이 멈춰 섰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는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똘똘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급 임원을 맡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원(태권도장 주 5회, 피아노학원 주 1회)을 많이 다니지 않았음에도,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와 수행평가, 그리고 시험 준비를 하며 너무 바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아이는 평소 루틴인 '9시 취침시간'을 넘기면서까지 공부방에 머무는 날이 점점 늘어갔습니다.
저 역시, '알파맘 되기(02화 참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주변에서 엄마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학교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아이를 서포트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밤늦게까지 시험공부를 하고, 수행평가를 준비할 때면, 늘 그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자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날이 늘어날수록, 일상이 빡빡해질수록 마음 한 켠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불편함 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내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데도 이렇게 바쁜데, 도대체 다른 애들은 시간 활용을 어떻게 하는 걸까?'
'이제 겨우 2학년인데도 이러면,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과연 이곳이, 내가 꿈꾸던 양질의 교육환경이 맞기는 한 걸까?'
여기에 더해, 말로만 듣던 사교육 열기를 온몸으로 실감하면서, 아이 혼자 공부하는 이 방식이 정말 옳은 건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가족을 위해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을 견디고 있는 아이 아빠의 희생은 미처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그 말이 터져 나왔던 겁니다.
"삶이... 행복하지 않아."
아이 아빠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왕복 4시간의 출퇴근도 버거웠지만, 평일 내내 아이와 눈 한번 맞추지 못한 채 출퇴근을 반복하는 삶이 너무 외롭고 싫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이 아빠의 말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정된 교육환경, 양질의 학습 기회에 욕심을 내며, 아이의 교육을 최우선에 두고 감행했던 이사(01화 참조)가 결국 가족 모두를 지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이건 제가 꿈꾸어왔던 가족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이곳이 아무리 좋은 교육 여건을 갖추고 있다 한들, 가족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환경이라면 결국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빠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이도 저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열한 학구열과 사교육 열기 속에서도 학교생활이며 친구 관계에 별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하고 있는 아이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절대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그 일, '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이곳을 탈출하자!'
어린 시절 전학을 경험했던 적이 있던 저는, 그 기억이 썩 유쾌하지 않았기에 이사할 곳을 물색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처음부터 제 주장이 너무 지나쳐, 이 사태를 만든 건 아닌지 정말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나마 아이가 아직 초등 저학년이라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었지만, 전학 소식을 들은 친구 엄마들의 반응이 또다시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남들은 여기로 이사 오는 타이밍에, 지금 여기를 나간다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OO이를 생각하면 여기에서 졸업하는 게 낫지 않아요?"
아이 친구 엄마들의 말은 지금까지 제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아이는 초등 2학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공부에 파묻혔고, 아이 아빠는 삶이 행복하지 않았으며, 저는 내성적인 성격을 이겨내며 억지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때 우리 가족에게는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을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이사 후, 아이 아빠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끔 야근을 하기도 했지만, 칼퇴하는 날이면 6시 반쯤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확실히, 전보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고, 아이 역시 아빠와 함께하는 순간들을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날의 선택'이 참 잘한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는 많든 적든 환경변화로 인한 영향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분명히 '잃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째, 소꿉친구가 사라졌습니다.
물론 친구는 새로 사귀면 되고, 아이도 금세 그렇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같이 다니고, 초등학교에 함께 입학했던 단짝친구와는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 후 약 1년간은 그 친구를 너무 그리워해, 한두 번 만나러 가기도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반가움에 부둥켜안던 모습이 참 짠했는데, 시간이 지나 서로 바빠지며 연락이 뜸해진 것이 거리가 멀어져 더 그런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까웠습니다.
둘째, 아이가 쌓아 올렸던 우등생, 모범생 이미지와 학급 임원 같은 '커리어'가 사라졌습니다.
'커리어'라는 표현이 좀 과장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초등학교 시절에 형성된 이미지나 역할은 졸업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제 아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곳에 합류한 터라, 기존의 어린이집, 유치원, 혹은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는 유대감을 뚫고 어렵게 만들어낸 '똘똘한 아이' 이미지와 학급 임원 경력이었기에 더 아까웠습니다.
셋째, 알파맘이 되겠다며 어렵게 쌓아놓은 저의 학부모 인맥도 초기화되었습니다.
그 시절엔 초등 1학년때 만들어진 인맥이 쭉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역시 1학년 모임을 기반으로 2학년까지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전학과 함께 그 모든 것이 끊어졌습니다. 아이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저는 아이와 달리 새로운 모임에 나갈 용기가 부족해, 애써 만들어두었던 그 인맥을 두고 온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이런 저의 아쉬움과는 달리, 아이는 겉으로 보기에는 큰 어려움 없이 '전학'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이전보다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번째 고슴도치 시선] 초등 2학년때 받은 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학년 1학기 : 항상 용모가 단정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며 자신의 일을 스스로 잘 처리하고 학습태도가 바람직하며 창의력이 돋보이고 학습이해도가 아주 높음.
2학년 2학기 : 수업태도가 모범적이며 학습에 대한 의욕으로 성적이 우수하고 예의바르며 책을 많이 읽어 상식과 어휘력이 풍부함.
[다음 이야기]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