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편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은 공교육만으로 과학고와 카이스트에 입학했던 제 아이의 육아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교육 정글을 무사히 통과한 승자의 기록입니다.
'우리 아이도 카이스트에 갈 수 있을까'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지만, 이공계 성향의 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학부모님들만을 위한 글은 아닙니다. 제 기록의 핵심은 자기주도학습입니다. 사교육을 받더라도, 사교육에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아이로 키워보자는 것이 제 기록의 궁극적 지향점입니다.
기타 자세한 메인 프롤로그는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1 _ 영유아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 들어보셨습니까?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인데, 저도 맹자 어머니처럼 아이의 교육을 위해 한번, 그리고 비록 실질적인 이유는 교육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된 또 한 번의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은 아이의 이름 이니셜을 딴 'W모삼천지교',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W모이천지교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가 유치원 졸업을 앞둔 시점에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았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초등학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주소지 기준으로 자동 배정되기 때문에 '선택'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과 맞물려, 친정에서 분가해 살고 있던 집의 전세만기가 돌아와 '선택'의 영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전세만기를 재연장해 입학통지서를 받은 학교에 그냥 입학시킬 것인가, 아니면 교육 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일단,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한 곳에 정착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제 과거 경험상 '전학'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았기 때문에 최소 6년은 안정된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그 '안정된 교육환경'이 양질의 교육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살던 곳은 오로지 친정 부모님 댁과 가까웠기 때문에 선택한 곳이었습니다. 조건부 친정살이(1편 03화 참조)가 끝나고 분가를 하긴 했지만, 유치원생이었던 아들의 하원 후를 부탁드려야 하는 일이 종종 생기다 보니, 다른 조건은 전혀 염두에 두지 못한 채 친정과의 '거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엇보다 아이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둔 결정을 내리고 싶었습니다.
몇 날 며칠간의 고민 끝에, 저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즉, W모일천지교가 완성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 아빠와 충분한 의견 교환 후 결정된 것이긴 했습니다만, 제 의견이 상당히 많이 반영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한 그곳에서 아이가 초, 중,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하며 장밋빛 꿈을 꾸었습니다.
사실 제가 선택한 곳은 전국적으로도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물론, 그 지역 중에서도 약간 변두리이긴 했지만, 친정 부모님 댁과도 멀지 않아 필요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교육 환경도 좋아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이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사를 한 덕분인지, 낯선 지역과 새로운 환경에 큰 어려움 없이 잘 적응했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학교 생활도 성실하게 해냈습니다.
하지만, 말로만 듣던 사교육 열기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내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었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습니다.
아이의 교육에만 신경 쓰느라, 박사학위 취득 후 본격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게 된 아이 아빠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아이 아빠는 이곳으로 이사한 뒤, 서울 경기권도 아닌 지방에서 왕복 4시간을 출퇴근에 쓰게 되면서 점점 지쳐갔습니다. 게다가 평일에 단 한 번도 아이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지 못하자,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가족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아이의 교육이 아닌, 가족의 행복을 위해 또 한 번의 이사를 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아이의 전학만은 절대 안 된다.'라고 했던 제 다짐은 아이 아빠의 지친 모습에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사가 제 아이의 삶에 의외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사도 '교육' 카테고리에 넣어 W모이천지교라 칭하고자 합니다.
어떻습니까?
학교공부만으로 과학고에 입학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했던 아이의 초등학교 시절,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한 지역에서, 사교육 열기로 인해 내적 갈등을 겪은 제가 아이의 초등학교 학습을 어떻게 곁에서 도왔는지, 원치 않았던 전학이 아이의 삶에 어떤 의외의 전환점이 되었는지, 듣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럼, 지금부터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사교육 정글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그 두 번째 이야기, 초등 편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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