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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적응의 열쇠

초등 편

by My Way

아이 인생에 있어 초등학교 입학은 여러모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부여되고,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기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겼습니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감행(01화 참조)했던 저는, 가장 먼저 아이의 공부방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과 장난감으로 채워진 휴식공간(아이방)은 따로 있었고, 공부방은 주로 저녁식사 후에 사용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는 학교 숙제와 공부를 주로 했고, 저는 일을 하거나 아이의 학습을 도와주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방에서 제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학교생활에 도움이 될 생활 습관과 루틴을 잡아주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초등 적응의 열쇠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숙제하기.

학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학교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식사 후에는 공부방에서 학교 숙제를 하는 루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갔습니다.

숙제에 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아이 곁에서 지켜봐 주었지만, 혼자 할 수 있는 숙제라면 아이가 집중하는 동안 저는 옆에서 컴퓨터를 켜고 제 일을 했습니다.


두 번째, 책가방 싸기.

숙제가 끝난 뒤에는 다음날 등교를 위한 책가방 싸기를 '함께' 했습니다. 가정통신문이 있는지 확인했고, 알림장도 꼼꼼히 체크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첫 등교를 하던 날부터 L파일을 가방에 꼭 챙겨 보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가정통신문이 구겨지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 친구 엄마들, 특히 아들 둔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오갔습니다.


"구겨지고, 찢어져서 도무지 내용을 알 수 없는 가정통신문 말고, 딱 한 번이라도 온전한 걸 받아봤으면 좋겠다."


제가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어쨌든 L파일 하나 덕분에, 남자아이 엄마들이 흔히 본다는 '찢어진' 가정통신문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책가방 싸기가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자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가방을 싸는 건지, 가방을 만들고 있는 건지, 어찌나 느리고 꼼지락거리는지... 가끔은 보다 못해 답답함이 한계치를 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잔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던 저는, 습관이 자리 잡을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책가방을 빨리 챙길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습니다.


1) 알림장을 함께 확인한 뒤, 무엇을 더 챙겨야 하고, 무엇을 집에 두고 가도 되는지를 체크한 다음, 저는 알림장을 읽어주고, 아이가 필요한 물건들을 주도적으로 챙기도록 유도하였습니다.

2) 아이가 알림장을 보면서, 저에게 어떤 것을 챙겨야 하는지를 지시하게 만든 후, 제가 가방을 잘 쌌는지 아이가 확인하는 역할을 맡게 했습니다.

3) 아이 몰래 미리 알림장을 확인해 둔 뒤, 아이 스스로 가방을 챙기도록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빠뜨린 물건이 있으면, 제가 살짝 옆에 놓아두어, 아이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가방 싸기가 끝나면, 방문 앞에 가방을 내놓게 했습니다. 그것은 곧 "다음 날 등교 준비를 모두 마쳤다."는 작은 표식이 되었습니다.


셋째, 다이어리 쓰기.

방학 때 흔히 만드는 24시간 단위의 계획표가 아니라, 다음날 중요한 일정을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을 정리하는 일종의 일일 다이어리를 쓰게 했습니다. 책가방을 다 싼 뒤에는 다이어리 공책을 꺼내, 아이와 제가 각자 알고 있는 일정을 공유하며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미리 점검했습니다.

예를 들면, 태권도장을 가야 하는 날인지, 피아노학원을 가야 하는 날인지, 혹은 엄마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함께 정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입학 직후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학습 계획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것 역시 조금씩 진화해 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 시험(?) 준비하기.

아이들이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자,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수학 단원평가와 받아쓰기 같은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게다가 수학 단원평가 같은 경우에는 100점을 받으면 상장을 주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한 달에 한두 번 치르는 시험에 불과하긴 했지만, 굳이 '상장'까지 주면서 경쟁을 유도하고 학습을 시키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모두 중요하다.'는 인식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알림장에 수학 단원평가나 받아쓰기 시험 일정이 적힌 날이면 다이어리를 쓴 뒤 잠들기 전까지 '시험공부 시간'을 갖는 루틴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여기서 제가 한 일은 루틴을 만들어 준 것뿐이었고, 시험공부는 오롯이 100점을 받고 싶다는 아이의 욕심과 상장을 받고 싶다는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사실 시험공부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기까지는 교과서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참고서만으로도 수학 단원평가 정도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교과서와 참고서를 활용한 복습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매일 평일 저녁 공부방에서 이루어진 루틴들은 저와 함께, 혹은 제 시선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잘 지켜졌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들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 읽기로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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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 같은 반 엄마들 사이에서는, 알림장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아이들의 학교생활 이야기에 의문이 생기면, "OO이 한테 전화해 봐."라는 말이 오갔다고 합니다.

가끔 장난을 치기도 했지만, 선을 지킬 줄 아는 아이였고, 성실한 학습 태도와 꼼꼼함 덕분에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신뢰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자의 반, 타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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