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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가 텅 빈 이유

초등 편

by My Way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 주변은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어 늘 아이들로 활기찼습니다. 저희가 살던 곳은 소위 말하는 초품아*는 아니었지만, 도보 5분 거리로 학교 영향권 안에 있었습니다.

* 초품아 :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저는 등하교 시간의 동네 풍경을 참 좋아했습니다. 특히 방과 후의 놀이터는 뛰노는 영유아들과 그들을 돌보는 보호자들로 언제나 시끌벅적했는데, 그런 모습이 사람 냄새나는 풍경 같아 보여 좋았습니다. 물론, 초등학생 이상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원을 가느라 좀처럼 보기 힘들었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동네가 평소와 달리 휑하게 느껴졌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놀이터에서 뛰놀던 아가들의 모습도, 함께 나와 수다를 떨던 엄마들의 모습도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이 동네에 나만 모르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동네가 며칠간 고요해서 의아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놀이터가 텅 빈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사 온 이 동네에는, 암암리에 지켜지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학교 시험 기간엔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험과 무관한 영유아 동생들조차도, 시험 기간에는 놀이터에 나가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더 놀라웠던 건 그 누구도 그 점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이도 아직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지 않는 1학년인 데다가 예체능 외엔 다른 학원을 보내지 않다 보니, 이런 분위기를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이곳 아이들과 엄마들의 학구열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토록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학원, 과외, 학습지를 시키고, 수학 단원평가 성적이나 상장 하나에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굴었는지, 그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저는 좀 느긋했던 것 같습니다.

알파맘이 되고자 노력했지만(02화 참조), 사교육을 꼭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인데, 학교 수업 열심히 듣고, 숙제만 제대로 하면 되지, 뭘 더해?'


그런 생각으로, 평소 공부는 간단한 복습 정도와 숙제 중심으로 시켰고, 시험 공지가 나오면 그때부터 시험 준비를 도왔습니다.


그 당시 제 아이의 시험공부 방식은 크게 두 가지 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는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은 모두 중요하다(03화 참조)'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꾸준히 강조해 온 내용이라, 제 아이는 학교에서 치는 간단한 쪽지시험조차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잘하고 싶은 바람도 컸기 때문에,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날이면 저녁식사 후부터 취침 시간까지 공부방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의 취침 시간이 다소 빠른 9시였기에, 오랜 시간 앉아 있었다기보다는 집중해서 시험공부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평상시 공부와 시험공부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아이가 그날 무엇을 배웠는지 일일이 체크하진 않았습니다. 저녁 식사 후, 함께 공부방에 가서 숙제를 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숙제를 위해 참고서를 펴고 그날 배운 것들을 한번 훑어보는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습니다.

대신 EBS 교육방송을 잘 활용하는 편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인터넷 강의를 듣는 것과 비슷한데, 학기 중에는 초등학생용 다양한 프로그램을 필요할 때 찾아보는 정도로 사용했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특강은 꾸준히 시청하도록 했습니다.


[초등 2학년] EBS 교육방송 시청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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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시험공부는 평상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아이가 시험공부를 할 때 혼자 두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초등 저학년 시기는 "공부해!"라는 말을 하기보다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했던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시험 범위 체크하기

시험 범위에 해당하는 문제집 풀게 하기. 단, 곁에서 지켜보면서 문제 풀이 시간, 어려워하는 문제, 이해도가 부족한 부분 확인하기

문제 풀이에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 판단되면, 좀 더 효율적인 문제 풀이 방법을 알려주되, 받아들일지 말지는 아이의 의사 존중하기

틀린 문제는 왜 틀렸는지 함께 확인하기. 단순 연산 실수라면 숫자만 바꿔서 다시 풀게 하기

어려운 문제이거나 이해도가 부족해 틀린 것이라면 문제부터 다시 찬찬히 살펴보기

맞힌 문제도 확실히 알고 맞혔는지 확인하기

이 과정을 반복하며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싶으면 그날 시험공부 마치기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이 과정 복기시키기


결국 시험은 제가 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치는 것이고, 언젠가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기에, 저는 시험 공부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즉,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아이가 제 방법을 기본으로 해서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문제 풀이 같은 부분도 효율적인 방법은 알려주되, 교과서 방식 그대로 풀길 원하면 그 방식을 존중했습니다.


제가 아이와 함께했던 공부법은 '선행'보다는 '현행'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방식만으로도 아이가 시험을 잘 치르고 돌아왔기 때문에, 저는 초등 저학년 시절 공부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 공부는 점점 치열해졌고, 아이의 공부방에도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날이 늘어났습니다. 이제 겨우 초등 저학년인데, 학습량이 너무 과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이 아빠의 출퇴근 전쟁도 점점 심해지면서 가족의 일상에 서서히 위기의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결국, 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열아홉 번째 고슴도치 시선] 방학이 되면, 아이의 한 학기 행동특성과 종합의견이 담긴 '학교생활기록부'를 받아왔습니다. 물론 일부는 작성 예시 문구를 참고해 쓰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은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해 주신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기록들이 아이의 학교생활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라 생각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습니다. 열아홉 번째 고슴도치 시선은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생기부 종합평가 내용으로 대신하겠습니다.

1학년 1학기 : 똑똑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잘 발표하고 책을 많이 읽어 상식이 풍부하며 또래보다 높은 수준의 어휘를 사용하며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함.

1학년 2학기 : 독서습관이 바르게 정착되었고 요약 정리하는 능력이 우수하며, 학습에 집중력이 있고 이해가 빨라 전교과 고루 우수하며 받아쓰기를 잘함.




[다음 이야기] 탈출, 그날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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