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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단을 외자. 왜요?

초등 편

by My Way

"OO 이는 학원 어디 다녀요?"

"과외는 안 시키나요?"

"학습지는 어떤 걸 하나요?"


엄마들과의 친분이 깊어지고,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해나갈수록 저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이 늘어났습니다. 학원, 과외, 학습지 등 사교육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저로서는 그런 질문들이 당혹스러움과 동시에 '뭐라도 해야 하나?' 하는 조급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되려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물어, 학습지 하나를 추천받았습니다. 그때 추천받은 학습지는 그 당시 수학분야에서 독보적이었던 방문 학습지였고, 1회 무료 강의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영유아 편의 태권도 에피소드(1편 20화 참조)를 기억하신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편입니다. 엄마 판단에 따라 필요하다고 느껴지면 일단 권해보고,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는 주되, 최종 선택은 아이에게 맡기곤 했습니다.


학습지 역시 그런 맥락에서 아이에게 무료 강의를 권했고, 아이도 일단 테스트해 보는 것에 동의하였습니다.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하시는 것은 저와 아이 모두에게 처음이라, 꽤 긴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방에서 약 10여분 정도의 1:1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저는 거실에 앉아 아이의 반응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일단, 아이는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랐습니다. 하지만, 테스트 방식이 아이의 수준에 맞는 문제를 찾기 위한 것인지, 연산에만 집중해 계속 문제를 반복해서 풀도록 유도하는 듯했습니다.


'아이고, 울 아들에게는 재미없는 수업이겠구나.'


방문 학습지는 지금까지 아이가 수학공부를 해오던 방법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문제를 풀게 하는 방식은 아이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어서, 아이가 지루해할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아이의 반응은 제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땠어, 오늘 수업?"

"재미없었어요."

"그럼, 학습지 안 하는 걸로?"

"네."


그렇게, 짧았던 사교육 체험은 끝이 났고, 아이는 다시 예전처럼 집에서 공부하는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과목수학이었습니다. 다른 과목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학만큼은 '꾸준함' '단계적 학습'이 특히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도 1학년 2학기부터 수학 단원평가 시험을 실시하고, 100점을 받은 아이에게 상을 주는 제도를 운영했는데, 너무 이른 나이에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수학공부를 독려하려는 취지라는 점은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수학 단원평가 일정이 공지되면, 아이의 시험공부를 곁에서 도왔습니다.


제 아이의 시험공부 방법, 궁금하십니까?

그 내용은 다음 편에서 자세히 다루고, 여기서는 제 아이의 평소 공부법, 특히 수학공부 방법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습보다는 복습 위주의 공부를 했습니다.

제가 파악한 아이의 성향은, 새로운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정말 백지상태로 학교에 가서 수업시간에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의 설명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돌아왔습니다.

평소에는 방과 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참고서를 중심으로 한 번 가볍게 훑어보는 정도로 공부를 마무리했고, 단원평가 같은 시험이 있을 때에는 시험 범위에 맞춰 문제집을 풀어보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초등 1학년] 참고서로 복습 중. 밖에서 얼마나 뛰어놀았는지 뽀얀 피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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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교과서에 충실한 공부를 했습니다.

특히 수학공부는 온전히 학교 수업만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문제 풀이 역시 교과서 방식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일단 개념부터 정확히 이해하고, 풀이 원리를 익힌 뒤, 그 방법 그대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 후 응용문제로 넘어갔는데, 이 방식은 문제를 빠르게 푸는 요령은 부족해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문제 풀이 기술보다는 정확한 원리를 알고 풀어나가는 것이었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매우 효과적인 수학공부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아이의 수학공부 방식을 일단은 지지했습니다. 다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문제 풀이 스킬과 암기력도 중요하다고 판단해, 아이의 공부 방식에 개입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구구단 외우기'였습니다.


친구 엄마들로부터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미 구구단을 외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진 저는, 아이가 2학년이 되자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구구단 암기를 권했습니다. 마침, 예능 프로그램에서 '구구단을 외자.'라는 게임이 나오기도 해, 놀이처럼 자연스럽게 해보길 원했습니다.


"구구단을 외자."

"왜요?"

"음... 외워두면 계산이 빨라지니까."

"외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데요?"

"어떻게?"


아이는 제게 구구단의 원리를 설명하며,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6 곱하기 3은 6을 세 번 더한 것과 같아요. 그래서 6 곱하기 3은 18이에요."


그랬습니다.

제 아이의 구구단은 기계적으로 외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가르쳐주는 그대로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연히, 암기한 아이들에 비해 속도는 느렸지만, 초등 저학년 수준에서 문제를 푸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아이의 방식은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학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 역시 암기보다는 이해하는 방식이 더 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의 방식을 지켜보기로 마음을 바꾸고, 더 이상 구구단 암기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아이는 단순한 연산보다는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람직한 방법이라 여겼던 이 방식도, 때로는 한계를 드러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열여덟 번째 고슴도치 시선]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아빠의 출퇴근 전쟁이 시작되면서(01화 참조), 평일에 아빠와 마주칠 기회가 사라진 아이는, 아빠와 함께 살면서도 아빠를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아빠에게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빠의 귀가가 늦어질 때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메시지가 오고 갔습니다. 아빠는 아이가 적어준 몇 안 되는 문장으로 하루를 버텼고, 아이는 아침마다 아빠가 남긴 쪽지를 찾아 읽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제 아이는 감성이 매우 충만한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놀이터가 텅 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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