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아이의 과학고 생활을 기록했던 제 블로그에 가장 많이 올라온 질문 가운데 하나가 '과학고 준비할까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대개는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이미 정해 둔 학부모님들의, 이른바 '답정너*식 질문'입니다만, 이런 질문이 반복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분들이 과학고 준비에 대해 궁금해하고 계신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 답정너 :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으로, 주로 자신이 듣고 싶은 대답을 미리 정하여 놓고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여 자신이 원하는 답을 하게 하는 사람. 또는 그런 행위.
그래서 이번에는, 과학고 준비에 대해 제가 생각해 온 것을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아시다시피, 과학고는 전기고등학교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과학고에 합격할 경우, 후기 고등학교에는 지원할 수 없습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과학고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하게 되면, 해당 연도에는 어떤 고등학교에도 입학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고 지원에 대해 지원해 보고 결정하는 선택이 아니라 합격을 전제로 준비해야 하는 선택이라고 말씀드려 왔습니다(10화 참조).
다만,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이 경우 초.중등교육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학교별로 정해진 조건과 절차를 거쳐야 하고, 전학을 선택한 학생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부담 역시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고 진학은 처음부터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과학고 준비할까요?'라는 질문에, 대부분 '네'라고 대답합니다.
물론, 이 대답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과학고 입시에 관심을 갖고 질문해 주신 분들의 아이들은, 대체로 이공계 성향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것과 많은 분들이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과학고 입시에 떨어질 경우 그동안 준비했던 시간이 '손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일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저는 한 번쯤은 도전해 보시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제 아이의 입시과정을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과학고에 진학하기까지 아이는 중학교 3년 내내 학교생활에 충실했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를 꼼꼼히 챙기고, 진로와 진학에 대해서도 꾸준히 고민해 왔습니다. 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는 자기소개서를 작성했고, 비록 실전 과정에서 지필시험을 치르지는 않았지만, 면접을 거치는 등 마치 대입 수시를 준비하듯 그 과정을 밟아왔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거친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과학고 입시 준비는 대학 입시의 축소판과도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경험이 설령 실패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결코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문제는 과학고 입학 이후입니다.
중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던 상위권 아이들이 한 학교에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시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가 매겨집니다. 과학고 생활을 지켜본 엄마로서 느끼기에, 과학고는 생각보다 훨씬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과학고를 준비하기에 앞서, 아이의 성향을 먼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째,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자기 주도성은 반드시 '사교육 없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고는 기숙사형 학교이기 때문에 스스로 학습 계획을 세우고 공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도 자기 주도성이 필요합니다. 시간과 학습관리를 스스로 잘하는 아이라면, 기숙사형 학교의 장점인 등하교 시간을 절약해 공부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하기보다는 부모님이나 학원에 의존하거나 강제성이 필요한 아이라면 과학고 진학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둘째, 멘탈이 강한가?
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멘탈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던 제 아이와 제 아이의 친구 에피소드(14화 참조) 기억나십니까? 두 아이는 성적도, 활동도 비슷했지만 결국 한 가지, 멘탈에서 갈렸습니다. 아이의 친구는 중3 과정 영재교육원을 다니며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주눅이 들었고, 결국 과학고 입시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는 그 과정을 즐겼습니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언젠가는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이처럼, 경쟁을 즐기고, 등수 하락을 오히려 동기부여로 삼아 더 노력하는 아이라면 과학고는 꽤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 하락으로 멘탈이 쉽게 무너지는 아이라면, 경쟁이 치열한 과학고나 자사고보다는 일반고가 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셋째, 어려운 수과학 문제에 대해 흥미가 있고, 풀고자 하는 집요함이 있는가?
과학고의 수업은 학습량이 매우 많고, 진도 또한 빠릅니다. 일반고에서 1학년 동안 배우는 수학과 과학을 과학고에서는 1학년 1학기 만에 끝냅니다. 국사를 포함한 사회과목이나 음악, 미술 같은 예술교과도 거의 없습니다. 오로지 수학과 과학(정보), 그리고 국어와 영어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2026학년도 OO 과학고등학교의 교육과정 편성표를 보면, 1학년 1학기 29학점 중 수학 6학점, 과학 12학점, 정보 3학점으로 총 21학점이 수학과 과학(정보)에 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과학고 진학을 고려한다면, 수학과 과학에 대한 확실한 흥미가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어려운 문제를 끝까지 붙잡고 풀어내려는 집요함도 중요합니다. 과학고 수업은 초반부터 난도가 높은 문제풀이를 전제로 진행됩니다. 예를 들어 수학 개념서로 유명한 '수학의 정석'은 실력 편과 기본 편으로 나뉘는데, 과학고에서는 일반적으로 기본 편을 건너뛰고 실력 편부터 다룬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수학적 사고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과학고보다는 일반고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넷째,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는가?
사실 이 항목은 필수조건이라기보다는, 과학고 생활을 하는 아이를 보며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던 부분입니다.
과학고에는 수학과 과학뿐만 아니라 악기를 잘 다루거나, 노래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로는 이런 취미활동들이 과학고의 치열함을 건전하게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학고 준비할까요?"라는 질문에 대해 제가 내린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아이의 성향부터 차분히 살펴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리한 이 네 가지 성향 가운데 몇 가지라도 갖추고 있는 아이라면, 합격 여부를 떠나 한번쯤은 준비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처럼, 그 준비과정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분명 크게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