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등 편
2차 소집면접이 끝난 뒤 결과 발표를 기다리던 때, 아이 아빠는 아이와 둘만의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수업이 한창이었지만,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을 잠시 내려놓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저는 흔쾌히 동의하였습니다. 더불어 입시를 준비하며 쌓아온 아빠와 아이 사이의 유대감이, 이 여행을 계기로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바랐고, 처음 떠나는 '남자들만의 여행'이 아이에게 오래 기억될 추억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아이 아빠가 계획한 둘만의 여행 목적지는 두 곳이었습니다. 카이스트와 강화도.
첫 번째 목적지인 카이스트에서 아이는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몇 년 뒤 이곳이 자신의 캠퍼스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맛있는 학식을 즐겼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캠퍼스를 천천히 둘러보았고, 아이가 뇌공학자의 꿈을 품게 만든 정재승 교수님의 연구실 앞에도 가보았습니다. 교수님을 직접 뵐 수는 없었지만, 연구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새롭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아이 아빠는 아이가 꿈꾸는 공학도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카이스트에 발도장을 꾹 찍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목적지는 강화도였습니다. 그곳에서는 마니산에 올랐습니다. 평소 등산을 즐기던 가족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씩씩하게 정상까지 올랐습니다. 정상에 섰을 때 불어오던 차가운 바람과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결과를 기다리며 쌓였던 답답함을 조금은 흩어주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둘만의 짧은 여행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결과에 마음 졸이며 학교를 오가는 것보다, 바깥공기를 마시며 보낸 그 며칠이 아이에게는 더 오래 남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드디어 합격자 발표날이 되었습니다.
오후 4시.
아이가 학교에 있었기 때문에, 결과는 제가 먼저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점심을 먹은 뒤 그 시간이 될 때까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도 집중이 되지 않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열어본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먼저 아이 아빠에게 카톡으로 소식을 전한 뒤, 곧바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금방 전화를 받았습니다.
"OO아 축하해."
아이는 교무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막 합격 여부를 확인하려던 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는 동시에, 전화기 너머로 함성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와, 축하한다, OOO."
"우리 반 OO이가 과학고 합격했다!"
"나도, 과학고 다니는 친구 생겼다."
아이 친구들의 꾸밈없는 축하가, 한동안 전화기 너머에서 이어졌습니다.
아이도 무척 기뻐했습니다.
저는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아이의 추천서를 써주신 2학년 담임선생님, 아이의 건강 문제로 며칠간 결석할 수밖에 없던 때에도 학습이 뒤처지지 않도록 살펴주신 3학년 담임선생님, 늘 곁에서 과학 실험을 도와주신 과학선생님, 그리고 아이의 진로 고민을 들어주시고 과학고 진학으로 이끌어주신 진로진학 상담 선생님까지, 그동안 아이의 길을 함께 걸어주시며 과학고 입학에 마음 써주신 분들이 차례로 떠올랐습니다.
아이의 과학고 합격은 온전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뤄낸 결과라 더욱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아이가 과학고를 꿈꾸고 그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교 3년 내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며,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쏟아부었던 노력의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입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희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사춘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한층 더 돈독한 관계가 되었다는 점도 꽤 의미 있는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이는 과학고생이 되었습니다.
예비소집이 있기 전까지의 며칠 동안, 아이는 어떤 앞날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처 알지 못한 채, 과학고생이 되었다는 사실과 목표를 이루었다는 기쁨을 온전히 누렸습니다.
제 아이의 중학교 생활은 여기까지입니다.
이 이야기, 어떻게 읽으셨습니까?
사교육 없이 자기주도학습만으로 과학고에 입학한 제 아이의 이야기가 그저 특별한 이야기로만 느껴지십니까?
여전히 자기주도학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어렵게만 느껴지십니까?
제 아이의 과학고 진학 과정을 통해 제가 정리해 본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나름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아이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할 이유 찾기
초등 시절에는 막연하게나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면(2편 20화 참조),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제 아이처럼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 목표를 정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동기부여가 될만한 계기를 찾아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희망하는 학교를 직접 방문해 본다든지,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와 연결되는 멘토를 소개해 준다든지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했음에도 당장 꿈이 없을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략적인 방향만큼은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고등학교 선택은 대입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중학교 생활 동안 미리 진학 방향을 고민해 두는 편이 이후 선택에서 훨씬 유리합니다.
둘째, 공부 계획과 실행의 기준은 아이 스스로 결정하기
초등 시절이 아이 성향에 맞는 공부 방법을 알려주는 시기였다면, 이제는 공부 계획과 실행의 기준을 아이 스스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해야 할 시점입니다. 물론, 자기주도학습이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교육을 받더라도,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며 공부하는 것이 자기주도학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 시험 기간에는 공부 방법을 함께 점검하고,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분배해야 할지를 짚어주며 아이가 보다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고 틀린 문제를 함께 확인하는 역할도 했습니다(05화 참조). 다만, 이는 중학교 1학년 첫 시험 때까지였고, 이후에는 이러한 개입을 점차 줄여갔습니다. 중2, 중3으로 올라가면서부터는 공부 목표량을 어디까지로 할지, 이를 어떻게 실행할지는 아이 스스로 계획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등 때부터 사용해 오던 다이어리를 꾸준히 활용했습니다.
또한, 아이는 선행보다는 현행 학습에 집중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즐기는 성향이었던 점도 이유였지만, 그보다 혼자 공부하다 보니 선행까지 병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과정은 선행 없이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선행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셋째, '왜?'를 묻고 반성하는 습관 기르기
제 아이는 시험공부를 할 때마다, 문제집의 문제를 풀 때마다 "왜 이 개념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던 아이였습니다(05화 참조). 중학교 초반에는 시험기간이라는 조급함 때문에 그런 질문에 충분히 답해 주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자유학기제라는 시간을 통해, 아이의 '왜?'라는 질문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공부, 특히 과학고에서는 이런 질문을 습관처럼 던지는 아이들이 훨씬 유리합니다. 중학생 시기에는 단순 암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공부를 해낼 수 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아집니다. 개념을 알고 있는 것과, 문제 상황에 맞게 그 개념을 선택해 응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에, 왜라는 질문을 습관적으로 가지는 것이 고등학교 학습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아이가 늘 틀린 문제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는 점입니다(12화 참조). 단순히 정답을 맞히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틀렸는지 되짚고 스스로를 반성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이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자기주도학습이란 결국 이처럼 결과에 매달리기보다 과정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부모가 적절히 개입하기
초등 시절과 마찬가지로 저는 중학생 시기에도 부모님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방식과 시점은 초등때와 달라야 합니다. 저는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된 아이가 곧바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전환기에 방향을 잡아주는 수준의 개입이 더해진다면, 아이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입의 정도와 태도입니다. 공부를 했는지 감독하거나,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묻는 태도여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중학생 시기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개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주도학습의 포석을 깔아주는 초등 시기를 잘 지나, 중학교에서 실제로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하며 공부했다면, 아이의 목표가 꼭 과학고가 아니더라도 새롭게 시작하는 고등학교 공부에 분명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중학교는 자기주도학습을 연습하는 시기를 넘어, 실제로 실천하고 몸에 배도록 만드는 시기입니다. 여러분께서도 아이들이 슬기로운 중학교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3 _ 중등 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유아편, 초등 편과 마찬가지로, 이번 중등 편에서도 목차 안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못다 한 이야기'로 풀어낸 뒤, 고등 편 연재를 이어가려 합니다.
고등 편은 과학고의 학교생활을 중심을 한 이야기가 될 예정이지만, 이 또한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고에 진학한 이후에도 제 아이는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주도학습으로 학교생활을 버텨냈기 때문입니다.
그럼, '못다 한 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부터 다시 시작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