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교훈을 얻는 아이

중등 편

by My Way

제 아이가 다니던 중학교의 성적 통지표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중학교 성적.jpg OO 중학교 성적 통지표 예시


한 학기 동안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를 치른 뒤 받은 점수를 합산해, 학기말에 교과별 성취도를 산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이는 한 학기 수업이 끝나고 받는 최종 성적표에 모두 A가 나오는 것을 목표로 시험과 수행평가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과학고 입시에는 수학과 과학의 성취도*가 가장 중요했지만, 생기부를 제출해야 하는 이상 다른 과목들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합산 점수로 성취도가 산출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는, 중간고사 결과가 조금 미진했다 싶으면 수행평가와 기말고사에 더 집중하며 상위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첫 필기시험에서 반 2등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전교 등수가 올랐습니다.

* 과학고 입시에 제출하는 생기부에는 원점수와 표준편차는 제외하고 성취도(A~E)만 기재됩니다.


사실, 전교 등수는 성적 통지표에 기재되지도 않고, 담임선생님께서 따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상위권 아이들끼리 성적을 비교해 알음알음 정보를 공유하는 것 같았습니다. 제 아이가 1등을 했을 때도 친구들이 "네가 제일 잘 친 거 같아."라고 이야기해 주거나, 복도에서 마주친 과학 선생님께서 "OO이, 이번에 시험 제일 잘 쳤더라."라고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공부법은 1학년 1학기 시험과 1학년 2학기 자유학기제를 거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친구들이 학원에서 준비해 주는 기출문제로 시험공부를 할 때, 아이는 학교 선생님들이 나눠주신 학습지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 선생님이 짚어 주는 시험 예상 문제를 풀 때, 아이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들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체크해 뒀다가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시험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졸 때, 아이는 기댈 곳이라고는 학교 선생님들 밖에 없어서 수업에 집중하고 의문이 생기면 바로 질문하면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준비를 혼자 해야 하다 보니, 아무래도 학원의 도움을 받는 친구들에 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을 꾸준히 실천하면서 점차 효율이 높아졌고, 시험 경향과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노하우가 쌓였습니다. 또한, 수업에 충실한 기본 공부법 덕분인지, 웬만해서는 성적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교육을 받는 친구들에게 뒤처지지 않았고, 혼자서도 안정적으로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왜?"라는 질문(5화 참조)을 달고 다녔는데, 이러한 공부 태도는 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중2 중간고사 때 이와 관련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도덕 선생님께서 시험에 “~~에 해당하는 것을 찾으시오.”라는 문제를 내셨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나눠주신 학습지에는 “~~에 관련 있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시험 답도 그 내용에 체크되어 있었습니다. 제 아이는 “~에 해당하는 것”과 “~에 관련 있는 것”은 다른 의미라 판단해, 학습지 내용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답을 체크한 상태였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집에서 답을 채점하던 아이는 의문을 가졌고, 제일 먼저 제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꼼꼼히 살펴본 저는 아이 말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다만, 선생님이 어떤 의도로 문제를 출제하셨는지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라, "많이 아쉽겠구나." 하는 대답만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이는 학교에 가서 그 문제의 답을 정정하고 돌아왔습니다.

"와, 어떻게 그렇게 했어?"

깜짝 놀란 저에게 아이는 답을 정정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우선, 국어선생님께 가서 '해당하는 것'과 '관련된 것'의 의미 차이를 자문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이해한 단어의 뜻이 정확한지 재확인을 거친 후, 도덕선생님께 찾아가 문제의 답에 오류가 있음을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다행히 도덕선생님께서는 아이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셨고, 국어선생님께 재차 확인을 하신 뒤, 결국 제 아이의 답이 맞는 것으로 정정해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선생님의 실수를 꽤 대담하게 지적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여 정정해 주신 선생님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건(?) 이후,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문장 하나, 단어 하나, 허투루 썼다가는 2학년 O반 OO이 한테 혼난다."라는 농담이 돌았다고 합니다. 훗날 담임선생님께서 그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이는 누구보다 학교 수업에 충실했고, 의문이 생기면 선생님께 여쭤보았으며, 문제 풀이도 꼼꼼히 하면서 자기주도학습을 체득해 나갔습니다. 나아가 시험을 치른 후에는 늘 '교훈'을 얻었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시험 후에 가장 많이 내주신 과제는 '오답노트 작성하기'였습니다. 그런데 제 아이는 단순히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보다,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 몰라서 틀린 것인지, 알면서 틀린 것인지,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아서 발생한 일인지, 문장의 어떤 부분을 잘못 이해했길래 이런 답을 썼는지" 등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숙제로 주어졌으니, 오답노트를 작성하긴 했지만, 그보다 틀린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시험을 복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엔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오늘 시험을 통해 OOOO이란 교훈을 얻었어요."


이 교훈은 "문제를 잘 읽자."일 때도 있었고, "숫자를 잘 보자."일 때도 있었으며, "학습지를 꼼꼼히 보자."일 때도 있었습니다.

신기했던 건, 교훈을 얻었다고 한 부분은 더 이상 실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매 시험마다 새로운 교훈이 생겨났습니다.


자꾸 교훈을 얻던 아이는, 카이스트 대학원생이 된 지금도 낯설고 어려운 인생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교훈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마흔두 번째 고슴도치 시선] 자기주도학습을 결심한 아이에게도 시련은 있었습니다. 과학고에 가겠다는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또래 아이들처럼 자신의 의지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중심에는 휴대폰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오늘은 휴대폰을 내 방에 두고, 공부방에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아이는 종종, 특히 시험기간만 되면, 휴대폰 사용에 대한 자신의 다짐을 큰소리로 이야길 하곤 했습니다. 스스로 절제하기 위한 노력의 일종이었던 것 같은데, 때로는 본인도 모르게 자제력을 잃어, 잠깐만 보겠다던 휴대폰에 어느새 푹 빠져 계속 쉬고 있기도 했습니다.

"10분만 쉰다더니?"

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싶으면, 저는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지곤 했는데, 그러면 아이는 자신의 약한 의지력에 스스로 화를 내며 자책하곤 했습니다.

말로만 다짐해서는 절제가 잘 되지 않자, 어느 날부턴가 휴대폰을 봉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은 '휴대폰 감옥' 혹은 '휴대폰 금고' 같은 제품도 판매되는 것 같던데, 그 당시 제 아이는 전원을 꺼버린 휴대폰을 지퍼백에 넣어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옷장 속에 보관하는 방법으로 봉인을 대신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원시적(?)이라 우스웠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방법이 아이에게 잘 맞았는지, 꽤 자주 휴대폰이 지퍼백에 봉인되었습니다.

휴대폰에 대한 잔소리는 저 역시 피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아이가 스스로 절제하려는 노력을 보일 때는 야단이나 비난 대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 아이는 또래들처럼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스스로 통제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자기 조절 능력을 키워나가는 아이였습니다.




[다음 이야기] '중2병'은 사치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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