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은 사치

중등 편

by My Way

제 아이의 과학고 입시 여정은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쳤습니다.

처음에는 과학고에 가보겠다는 막연한 다짐에서 출발했지만,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을 다니며 과학고에 대한 을 키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참석한 과학고 입학설명회는 아이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되었고, 미리 찾아본 모집요강은 혼자서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틀을 잡아주었습니다.


과학고 모집요강은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이를 사전에 확인한 것이 과학고 준비에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입시 전형 일정은 전체적인 스케줄을 잡는데 도움이 되었고, 전형 방법은 성적 관리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제출해야 하는 서류 중 하나인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는 학교생활을 어떤 방향으로 꾸려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자소서를 작성할 때 반드시 배제해야 하는 기본적인 항목들이 있습니다.

첫째, 교내외 모든 대회 입상 실적(올림피아드, 교외 각종 경시대회, 교내 수상 등)은 기재할 수 없습니다.

둘째, 영재학급과 영재교육원 교육 및 수료 여부도 포함할 수 없습니다.

셋째, TOEFL 등 각종 어학인증시험 점수, 한국어(국어) 및 한자 등의 능력시험 점수 역시 적을 수 없습니다.

넷째, 부모 및 친인척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암시하는 내용과 지원자 본인을 알 수 있는 이름, 출신학교 등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인적사항도 모두 금지됩니다.

이 외에도 학교에서 주관하지 않은 모둠 및 프로젝트 활동, 즉 사설 학원 및 기관에서 추진하는 교과 관련 활동을 배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받아온 영재교육, 학교에서의 각종 수상, 다양한 진로 체험 활동 등이 전혀 의미가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가' 중에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는 적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모든 과학고의 자소서에 포함되어 있는 '수학, 과학, 혹은 정보 관련 탐구 활동'을 작성할 때, 영재교육 중 수행했던 탐구 활동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영재교육'이라는 표현이나 특정할만한 프로그램명을 직접 밝힌 수는 없고, 그 활동의 주제, 동기, 과정, 결과를 중심으로 서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 활동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그리고 지원자가 어떤 성장 또는 변화를 이루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학교에서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활동 가운데 자신의 진로에 맞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경험하고, 그 경험을 생기부와 자소서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모든 과학고의 자소서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항목 중 하나가 '인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배려, 나눔, 협력, 의사소통, 타인존중, 갈등관리, 관계 지향성, 규칙 준수, 리더십, 봉사활동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실천사례를 적고,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서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교내에서 있었던 사소한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갔는가, 친구들과 어떤 방식으로 협력했는가, 배려 활동을 실천한 사례가 있는가 등 학교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이 과학고 입시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항목 역시, 학교생활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봉사활동은 전기고등학교인 과학고뿐 아니라 후기고등학교인 일반고 진학에서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교가 학생들의 봉사시간을 확보해 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들을 마련해주고 있고, 학교에서 진행하는 봉사만으로도 기본 점수는 충족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 아이는 학교밖 봉사활동에 눈을 돌렸습니다. 학교 내 활동만으로도 점수는 충분했지만, 자소서에 쓰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학원을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나 홀로 공부''나 홀로 입시 준비'를 병행하느라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부 봉사 활동까지 한다는 게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아이는 주말시간을 쪼개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에서 참여할만한 봉사활동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주목적은 자소서에 활용할만한 경험을 쌓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왕 하는 거 아이에게 의미 있고, 색다른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찾아보던 중, 마침 집 근처 요양병원에서 중고등학생 도우미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사 첫날, 교외 봉사가 처음인 아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길을 안내해 준다는 핑계를 대고 병원까지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곳에는 오랫동안 활동해 온 형과 누나들이 있었습니다. 중학생은 처음이라며 친절하게 챙겨주어, 아이는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아이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입시 준비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약 1년 반 동안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갔습니다. 덕분에 자기소개서의 한 부분을 진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이야기로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의 중학교 2학년 생활을 돌아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수학 페스티벌, 과학 실험 탐구대회, 영재교육원 등 다양한 수학, 과학 탐구 활동들을 해냈습니다. 틈틈이 독서를 했고, 주말에는 봉사활동까지 참여하며 과학고 입시를 위한 '맞춤형'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를 위해 건강한 식사와 간식을 챙기고, 시험기간에는 스터디 메이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으며, 때로는 운전기사로 아이의 중학교 생활을 뒤에서 묵묵히 보조했습니다.


물론 제 아이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자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변했고, 급성장으로 인해 등 쪽 피부에는 튼살 흔적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뽀송뽀송했던 얼굴에는 수염이 나기 시작했고 여드름도 올라왔습니다. 방문을 닫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고,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사춘기 소년 특유의 짜증이나 이유 없는 반항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과학고 입학을 위한 준비를 스스로 해야 했던 아이에게 '중2병'은 사치였는지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부터 과학고를 거쳐 카이스트에 입학하기까지 줄곧 입시라는 시스템 속에서 사는 기분이었습니다.




[마흔세 번째 고슴도치 시선] 자기소개서에는 교내외 수상실적을 적을 수 없지만, 학교에 따라 생기부에는 학기당 1개*의 수상실적을 상급학교에 제공할 수 있습니다.

* 2026학년도 기준, 부산과학고, 부산일과학고, 대구일과학고, 인천과학고, 인천진산과학고, 대전동신과학고, 강원과학고, 전남과학고, 제주과학고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제 아이가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에도 동일했는데,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 중에는 교내보다 올림피아드 같은 교외 실적에 더 공을 들이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반면 제 아이는 사실상 과학고 입시 준비를 거의 혼자 해오던 터라, 교외 수상실적까지 챙기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도 그 부분이 고민이 되었는지, 담임선생님, 과학선생님, 그리고 진로진학 담당선생님께 조언을 구하더니 양보다는 질을 택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 같았습니다. 꼭 필요한 대회만 선별해 집중하고, 관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과 힘을 모아 역할을 나누어 준비하는 등,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친구들과 함께 해내며 수상실적을 채워나갔습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건, 제 아이는 필요한 도움을 선생님께 요청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친구들과의 협력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소수정예 아이들 틈에서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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