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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자기주도학습, 그 시작을 위하여

초등 편

by My Way

어느 날, TV에서 개그맨 박명수 씨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때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박장대소하며 웃었지만,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과학고 입학을 꿈꾸고 카이스트에 가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이라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이제부터 하면 됩니다.


제 아이의 초등 시절은, 14화에서 이야기했듯이 학군지에서 보낸 격동기와 전학 후 맞이한 안정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알파맘이 되어 보겠다고 발버둥 치다, 결국은 아이의 뒤에서 아이의 방식대로,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 아이의 특성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1. 초등 저학년 때 예체능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엄마의 강요가 아닌 아이 스스로의 필요에 따른 선택이었습니다.

2.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났으며, 독서습관이 잘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3. 집에서 하는 공부만으로도 국어(독서, 글쓰기, 발표력, 디베이트), 수학(연산보다 이해, 양보다 질), 영어(학습보다는 언어) 과목의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4. 과학을 좋아했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늘 흥미를 보였습니다.

5. 자칭 과학 영재(?)라는 근자감이 있었지만, 단순한 허세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노력이 뒤따랐습니다.

6. 승부욕이 강하고, 실패를 싫어했지만, 자존감과 회복 탄력성이 높아 잘 이겨냈습니다.

7. 규칙을 잘 지키고 자제력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다른 부모님들도 그러하시겠지만, 저에게 있어 제 아이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어떤 역량을 펼치며 살아갈지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고나 카이스트를 목표로 꿈꾸게 한 적은 없습니다. 아이의 꿈이 시시각각 변했고, 저는 그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세우기보다 아이의 성향에 맞춰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왔을 뿐입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초등 시절 자유롭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 방식이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이미 지나온 길이기에 돌아보면, 초등학교는 자기주도학습의 포석을 깔아주는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부모님의 적절한 개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감히, '자기주도학습, 그 시작을 위하여' 부모님들께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공부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공부에 대한 구체적인 목적이 없을 수 있습니다. 제 아이 역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그 속에 "왜?"에 대한 답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해 준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성적이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거야."


사실 지금은, 공부가 전부가 아닌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이미 있다면, 꼭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이와 함께 꿈을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이야길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공부 방법 알려주기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 하고, 잘해보고자 한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함께 이야기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공부해"라고만 말하지 마시고, 아이 곁에서 아이의 성향과 스타일에 맞는 방법을 찾아주세요.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방향인지, 속도인지, 부모의 관심인지, 아니면 이끌어줄 학원 선생님인지 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습관과 루틴 잡아주기

초등학생 시절에는 학습 습관과 공부 루틴이 몸에 배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처럼, 공부 시간만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책상에 오래 앉아 몰입하는 것이 공부면 더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 자체가 습관이 되도록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와 함께 공부방을 사용했는데, 이는 아이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 곁에서 함께 공부하고 학습 환경을 공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덕분에 아이가 집중하는 습관과 일정한 공부 루틴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독서 습관도 초등 저학년 때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부의 기본은 국어실력에 있습니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주제의 책(학습만화 포함)을 책상에 앉아 읽는 경험을 반복하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현행과 심화, 그리고 선행은 아이 성향에 맞추기

제 아이는 선행 없이 현행만으로 초등학교 공부를 마쳤습니다. 게다가 심화과정도 따로 하지 않았습니다. 교과서에 충실했고, 학교 수업에 최선을 다했으며, 공부는 늘 복습 위주였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이마다 달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처럼 현행에 만족하며 즐거운 학교생활을 해도 좋고, 좀 더 어려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재미를 느끼는 아이라면 심화까지 시도해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때론 후행(?)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후행 학습'은 어디에도 없는 말이지만, 아직은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아이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셔서 과감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행 또한, 현행이 완벽할 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지만, 진도만 빼는 선행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성향이, 선행 없이는 불안해한다면 선행을 하는 것이 맞겠죠?

따라서, 중요한 것은 부모가 현행, 심화, 선행 중 어떤 것이 내 아이에게 맞는지 판단하고, 그에 맞춰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뢰와 격려로 아이를 바라보기

아이들마다 부모님에게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 아이는 특히 "너를 믿는다."라는 말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는 "너라면 해낼 줄 알았다." 혹은 "엄마 아빠는 네 결정을 믿는다."와 같은 말로 신뢰를 표현하고 아이와의 관계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칭찬하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럴 때 아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초등학생 시절에는 공부 성과로만 아이를 판단하기보다, 아이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이의 성장 스토리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고슴도치 엄마 눈에는 조금 독특하고, 순수하며, 근자감이 충만한 귀염둥이였습니다. 반면, 학습적인 면에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초등학생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입니다.


물론,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마음가짐부터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제 아이의 경우, 이 변화 또한 제 강요가 아니라 아이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3 _ 중등 편'에서 풀어가겠습니다.


지금까지 '사교육 정글 속 생존자의 기록 2 _ 초등 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유아편과 마찬가지로, 목차 내에서 다루지 못한 에피소드들을 '못다 한 이야기'로 풀어낸 뒤, 중등 편 연재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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