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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한 이야기 1. 자존감이 필요해!

초등 편

by My Way

초등 고학년 때,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과 과학이었습니다. 왜 좋아하냐는 제 물음에, 아이는 "잘하니까 좋아한다"는 깜찍한 대답을 내놓았죠(13화 참조).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긍정적이고 자신만만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를 과학 영재(?)라고 부르던 근자감 가득한 모습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려 완성한 피라미드 같은 자존감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못다 한 이야기 그 첫 번째 에피소드로 아이의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줘야 한다"는 말, 아마 부모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자존감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존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시기는 초등 고학년 무렵이지만, 그 뿌리는 이미 유아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아이의 유아기 시절을 떠올려보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거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전에, 먼저 그 상황과 주변을 꽤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하곤 했습니다. 무엇이든 충분히 살펴보고,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만 조심스레 시도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관찰 끝에 용기를 내어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경우 아이는 울면서 크게 좌절했고,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새로운 시도 자체를 꺼리는 악순환이 일어났습니다.


그럴 때, 저는 다음과 같이 행동했습니다.


먼저, 그 일이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대신 엄마의 판단으로 처음부터 그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하기보다는 접할 기회는 주되, 아이의 반응을 지켜보는 방식이었습니다. 유아기 시절의 '태권도 에피소드(1편 20화 참조)'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반면, 아이가 자신 없어하고 싫어하지만,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환경에 자주 노출시켜 스스로 도전해 볼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유아기 시절, 문화센터와 어린이집에 첫발을 내딛을 때 아이가 적응하기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던 것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그 밖에, 엄마 눈에는 사소하지만, 아이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미끄럼틀 타기나 그네 타기 같은 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보겠다고 마음을 정할 때까지 기다려주었습니다.

때로는 원하는 만큼 블록을 높이 쌓고 싶은데 자꾸 무너진다며 대성통곡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그랬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용기를 내어보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도 해보기 시작했습니다. 키가 한 뼘씩 자랄 때마다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것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그래서, 학습적인 부분에서도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아이에게 '선택권' 주기

아이가 어릴 때에도 저는 작은 선택권을 주곤 했습니다. 장난감이나 책, 어린이집에 입고 갈 옷 등을 아이가 직접 고르게 하되, 선택 범위를 정해주어 불필요한 혼란을 줄였습니다.

초등학생이 된 뒤에는 조금 더 발전시켜, 간단한 일일 다이어리를 쓸 때, 다음날 공부할 과목이나 분량을 스스로 정하게 했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아이에게 맡긴 건 아니었습니다. 필요하다 판단되면 살짝 개입해, 아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숙제나 학습계획을 함께 점검했고, 다음날의 일정과 목표를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끔 도왔습니다.


두 번째, 목표량 낮추기

공부가 하고 싶지 않은 날도 분명 있었겠지만, 의욕이 앞서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높게 잡고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처럼 의기양양해하더라도, 저는 항상 목표량을 조금 낮춰 시도해 볼 것을 권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가 10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하면, 저는 먼저 5개만 해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5개를 해낸 뒤, "더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이면, 그때 더 하도록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하였기 때문에, 아이는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져, 원래 계획했던 10개까지 마무리하곤 했습니다.


세 번째, 소소하지만 성공하는 경험 쌓아주기

목표량을 낮추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렇게 소소한 목표를 자주 달성하면, 아이는 작은 성취에서 오는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아이가 이런 경험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가능하면 성적이나 학습 결과에 대한 물질적인 보상은 되도록이면 자제하였습니다. 대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울인 아이의 노력 자체를 칭찬하거나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며 작은 축하파티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가 성취감 자체만으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기르길 바랐습니다.


마지막으로, 칭찬하기

최근 알고리즘 추천으로 보게 된 영상 속 꼬마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제가 엄청 못 그린 그림에도 칭찬을 해주세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은 좋아지겠지만, 꼬마 아이의 말처럼 실체 없는 칭찬은 무의미한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가 험난한 과정을 잘 견뎌내고 결국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에는,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OO이가 이 결과를 만들기 위해 시도했던 이러이러한 노력들이 너무 멋졌어."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방식은, 아이가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생이 되면서 자신에게 맞춰 조금씩 변형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융통성 있게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다 느낄 때는 수시로(?) 조정하며, 자신만의 룰에 따라 생활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 아이도 가끔은 넘어집니다.

열정적으로 카이스트 생활을 하다가 문득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방황하기도 했고, 실패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제 아이는 자신이 잘할 수 있고, 그 일로 자존감이 올라갈 것 같은 활동을 찾았습니다. 그게 아르바이트일 때도 있었고, 어떤 모임에 참여하는 것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스스로 회복할 방법을 찾고,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다시 일어서곤 하는 것을 봐왔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자신의 자리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양한 방법으로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회복탄력성 잘 형성된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초등학생 시절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공부 그 자체보다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힘, 즉 '자존감'이 아닐까 합니다.

이 자존감을 바탕으로 자기주도학습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중고등학교 시절 마주하게 될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의 학습 성과에만 매달리지 마시고, 아이가 스스로 도전하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충분한 경험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세요.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아이는 자기 주도성과 회복탄력성을 단단히 키워가며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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