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편
입학식 날, 아이와 잠시 눈을 맞추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엄마인 저 역시 과학고에 적응하는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입학식 직후 진행된 '학부모 교육'이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사 일정과 학교폭력 예방 교육, 기숙사 생활 등을 안내한 뒤, 그 해의 대학 입시 결과도 공유해 주셨습니다. 이제 막 과학고에 입학했을 뿐인데, 어느새 '대학 입시'라는 단어가 코앞까지 다가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며칠 뒤 열린 학부모 총회였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매년 3월이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온 터라, 과학고의 총회 역시 크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학부모 대표를 선출하고, 급식 검수와 같은 학교 활동을 도울 봉사자를 모집하는 과정도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반별로 모여 앉아 연락처를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반 모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임의 결성과 지속 여부는 구성원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듯했습니다. 특히 과학고의 경우 2학년부터는 조기졸업(진학) 대상자와 3학년 진급자로 나뉘기 때문에 1학년 반 모임이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모임은 이후 2~3년을 함께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가 속한 1학년 반은 아이들도, 부모들도 비교적 무난한 분위기였습니다. 1년 동안 아이들 소식을 나누고 대입 정보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았고,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여전히 1년에 서너 번씩 만나 안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과학고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아이가 자기주도학습을 선택했기에 학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없었습니다. 같은 중학교 출신 학부모와는 여러 면에서 결이 달라 쉽게 가까워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교에 대한 정보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학부모 운영위원 추가 모집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평소 성격이라면 분명 망설였을 텐데, 그날만큼은 이상하게도 망설일 틈 없이 공고를 보자마자 학교로 가 원서를 접수했습니다. 물론 학교로 향하는 내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하는 생각을 수십 번 되뇌긴 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며 원서를 작성했는데, 접수를 도와주시던 행정실장님께서 "이번에는 지원자가 많아 선거 연설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것 말고는 제가 학교를 더 가까이에서 경험해 볼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마음을 굳히고 떨리는 손으로 원서 접수를 마무리했습니다.
다행히 선거 연설이라는 조건에 부담을 느낀 분들이 많았는지, 끝까지 남은 지원자였던 제가 학부모 운영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약 2년 동안 그 역할을 맡으며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학부모 운영위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예산을 심의하고 여러 학부모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고, 교감선생님, 교장선생님, 그리고 학교를 이끌어가는 여러 부장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특히, 그 당시 교감선생님께서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리는 날이면 회의가 끝난 뒤 작은 다과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과학고의 교감이 아니라, 특목고에 자녀를 보낸 한 아이의 엄마로서 저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공감해 주셨는데, 그 자리에서 들은 조언들은, 당시 저에게는 꽤 귀한 정보이자 위로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적응해야 했던 것은 월요일 등교와 금요일 하교 시스템이었습니다.
입학식 이후 처음 맞은 금요일, 오후 네시 무렵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갔습니다. 기숙사 뒤편 주차장은 이미 아이들을 기다리는 학부모들의 차로 가득했고, 장거리 지역 학생들을 태울 버스도 정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이가 과학고를 다니는 동안 금요일 오후는 제게도 작은 쉼이었습니다. 정기적인 모임이나 학교 방문 일정도 있었지만, 아이의 하교를 돕기 위해 조금 일찍 나서면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던 그 시간은 제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7교시 수업(15:20~16:10)을 마친 아이들은 기숙사에서 빨랫감과 주말 동안 해야 할 공부거리가 가득 담긴 캐리어를 끌고 나왔습니다. 대부분은 부모 차를 타고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고 들었지만, 저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이는 잠이 많이 부족했는지 차에 타기만 하면 곯아떨어졌습니다. 저는 궁금했던 학교 이야기를 묻지 못한 채 조용히 운전만 해야 하는 시간들이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학원이나 과외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제 아이는 그 시간에 잠을 보충하며 체력을 회복하는데 더 신경을 썼습니다. 첫 한 달은 적응하느라 힘들었는지, 금요일이면 저녁 식사 후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러다 조금씩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주말의 잠 시간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주말은 어느새 평일만큼이나 바빠졌습니다. 학교에서 주어진 과제들을 먼저 해낸 뒤, 남는 시간에는 수학과 물리 역학 문제를 붙들고 앉아 있곤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은 또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8시 전까지 등교하려면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한 시간 남짓 걸렸지만, 출근 시간과 겹칠까 봐 더 일찍 출발해야 했습니다. 전날 밤 5일 치 기숙사 짐을 캐리어 하나에 챙겨 두고, 아침을 든든히 먹은 뒤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에도 아이는 차 안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했습니다.
학교 근처에 도착하면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아이들을 태운 차들이 기숙사 주차장으로 들어서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월요일에는 특히 출근길에 들른 아빠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는데, 누구 하나 서두르지 않고 미리 나와 계신 선생님들의 안내에 따라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아이와 캐리어를 내려주고 다시 빠져나오는 그 풍경은, 어느새 과학고생 가족들의 한주를 시작하는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월요일 아이를 등교시킨 뒤, 금요일에 다시 데리러 갈 때까지 아이가 기숙사에 머무는 동안 집이 참 썰렁했습니다. 텅 빈 아이 방이 낯설었고, 적막이 흐르는 집이 어색해 괜히 아이 방 앞에서 서성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학교에 적응해 가는 동안, 저 또한 과학고생의 엄마로서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학부모 운영위원으로 학교의 분위기를 익혔고, 엄마들과 교류하며 입시정보를 챙겼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없는 평일 낮의 시간을 비로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학교 안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저는 그 시간을 학교 밖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견디고 있었습니다.
[쉰세 번째 고슴도치 시선] 혹시 '돼지 엄마'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소수정예로 팀을 꾸려 최고의 학원이나 과외 교사를 연결해 주는, 사교육 정보에 밝은 학부모를 일컫는 말입니다. 제 아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도 유명한 '돼지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분의 아이가 제 아들과 친했던 덕분인지, 과학고 입학 무렵 이른바 '대치동 300'이라는 그룹과외 자리를 제안해 주셨습니다. 대치동에서 섭외한 선생님이 지역으로 내려와 수업을 진행하고, 전체 과외비 300만 원을 참여 학생 수만큼 1/N로 나누어 부담하는 방식이라서 그렇게 불린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잠시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제가 아니라 아이였습니다. 이미 학원 수업을 정리하고 자기주도학습을 선택한 뒤였고, 아이는 "그룹 과외보다는 혼자 해보고 싶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리는 대기표를 받아 들고 기다려야 할 만큼 귀한 자리였습니다. 그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아이의 선택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그 자리를 사양한 엄마가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주변에서 시샘 아닌 시샘을 받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아이는 목표를 정하고 나면 주변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부모로서 그 단단함이 참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다음 이야기] 과학고생의 하루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중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