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편
5월 말에서야 시작된 등교수업 이후, 학교 일정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조기졸업 대상자들은 3월부터 시작되었어야 할 고3 과정 모니터링과, 대학 수시 전형에 반영되는 2학년 1학기 성적 관리까지 동시에 감당해야 했기에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가며 버텼습니다.
선생님들은 코로나19로 더욱 촉박해진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정규 수업 외 시간을 활용해 3학년 과정을 최대한 압축해서 아이들에게 전달했고, 아이들은 그 과정을 통째로 '흡수'해야만 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예정된 '상급학교 조기입학 인수인정 평가'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진행되는 고3 과정의 수행평가와 시험 역시 전 과목 80점 이상을 받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습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아이들 사이의 차이가 눈에 띄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차이는 단순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였습니다.
그 변화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2학년 1학기 중간고사였습니다.
몇 차례의 지연 끝에 등교가 시작되었지만, 학교는 이미 수준 높은 온라인 수업으로 진도를 많이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시험만큼은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중간고사는 예년보다 훨씬 늦은 6월이 되어서야 치러졌습니다.
아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수업 내용을 모두 포함한 광범위한 시험 범위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제 아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2학년에 올라오며 배우게 된 고급물리학, 고급화학, 생명과학실험, 고급지구과학 등의 심화 과목들은 학교 수업 외에 참고할 자료가 부족해 더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시험 환경 또한 낯설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1학년과 3학년은 오전, 2학년은 오후에 시험을 치렀고, 시험기간 내내 1학년은 통학, 2, 3학년은 기숙사 생활을 유지하는 등 최대한 밀집을 피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시험뿐 아니라 시험 환경에도 적응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주도학습으로 치열하게 시험 준비를 했지만, 시험 이후에는 다소 의기소침해 보였습니다.
"친구들은 학원의 기출문제를 풀어보고 시험을 쳐서 그런지 쉽게 문제에 접근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모든 문제가 낯설어서, 아는 개념을 하나씩 적용해 가며 풀다 보니 힘들었거든요. 아마 몇 과목은 잘 못 본 것 같아요."
그러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습니다. 고급 과학 과목들도 무난히 방어했고, 특히 아쉬움이 남아 있던 수학 성적도 눈에 띄게 상승했습니다. 아이는 안도하는 듯했지만, 만족스럽지 않다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 결과를 아이 개인의 노력으로만 이해했습니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서의 흔들림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말고사를 치르고 2학년 1학기 성적이 모두 정리된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성적 향상이 아니라, 코로나19로 바뀐 학습 환경 속에서 자기주도학습의 진가가 드러난 결과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기말고사는, 중간고사 한 달 뒤 곧바로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에도 학교 일정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각종 행사들과 수행평가가 줄지어 이어졌고, 아이는 단 하루도 쉬지 못했습니다. 밀린 일정에 따라 휘몰아치는 교내 대회와 2학년 수행평가, 그리고 '상급학교 조기입학 이수인정 평가'를 대비하기 위한 3학년 과정의 수행 준비까지. 아이는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밤늦게까지 쉼 없이 달려야 했습니다.
주어지는 과제들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단순한 문제 풀이가 아니라 실험과 연구를 기반으로 한 긴 호흡의 과제들이었고,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등의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작업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그 모든 과정을 해내고 있었습니다.
시험공부를 따로 할 여유도 없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느덧 기말고사가 다가왔습니다. 기말고사는 나흘에 걸쳐 진행되었고, 그 사이에 주말이 끼어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 2학년 1학기 성적은 예상보다 빠르게 발표되었습니다. 아이가 종합 성적표가 담긴 흰 봉투를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며, 첫 중간고사 결과를 받아 들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학교에서는 종종 2학년 1학기에 3학년 진학 대상자들이 조기졸업 대상자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지만, 막상 그 상황이 되고 보니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조기졸업 대상자들은 같은 시간 안에 2학년과 3학년 과정을 병행해야 했고, 수행평가 역시 두 학년 분량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기에 물리적으로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없었더라도, 2학년 1학기 성적은 조기졸업 대상자들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그 차이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매년 성적 역전 현상이 일부 나타나긴 했지만, 그해 2학년 1학기는 판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일부 조기졸업 대상자들의 성적이 3학년 진학자들보다 훨씬 낮아지는 일이 발생했고, 1학년 성적만으로 조기졸업 대상자를 선발하는 조기졸업 선발기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과학고에서 오래 근무하신 선생님들께서도 이처럼 큰 폭의 성적 변화는 처음이라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분명한 기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주도학습'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원 수업조차도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습니다. 학원에만 의존해 온 아이들에게는 강제성이 약해진 환경이 오히려 학습 공백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는 성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조기졸업 대상자였음에도 2학년 1학기 성적이 하락한 아이들은 수시 지원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시 전형에서 중요한 것은 성적의 '우상향'인데, 흐름이 꺾이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근소한 차이로 조기졸업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던 학생들 중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성적을 받아 아쉬움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반면, 제 아이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공부했을 뿐인데도 등수가 눈에 띄게 상승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비대면 수업으로 늘어난 학습량을 스스로 조절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주도학습은 누군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혼자 남겨졌을 때 드러나는 힘이라는 것을.
코로나19는 결국, 자기주도학습의 진가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시간이었습니다.
[예순네 번째 고슴도치 시선] 과학고에만 있는 조기졸업 시스템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 기준이 성적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공부를 잘했다는 증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기졸업을 준비하는 2학년 1학기를 지나며, 그 생각은 이 제도를 일부만 이해한 결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조기졸업을 했다는 것은 단순히 성적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시간의 압박을 견디고, 감당하기 버거운 일정 속에서도 스스로를 무너지지 않게 지켜내는 일이었습니다. 동시에 수많은 과제와 시험,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담을 하나씩 넘어서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과학고의 조기졸업은 단순히 더 빨리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했다는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과정을 끝까지 통과해 낸 시간과, 그 안에서 쌓아온 힘을 증명하는 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제 아이는 사교육 중심의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의 방식으로 버텨낸 아이였고, 과학고라는 또 다른 경쟁 속에서도 끝내 조기졸업의 길을 완주해 낸 아이였습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대견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음 이야기] 과학고 안에서 시작된 입시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중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