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편
2020년은 시작부터 어수선했습니다.
코로나19로 졸업식과 입학식이 축소되었고, 대학들은 개강을 미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겨울방학 동안 아이는 개학 후에 열릴 교내 대회를 준비했고, 2학년 1학기 과목들을 예습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교 역시 코로나19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인사이동과 2학년 담임 배정 소식이 전해졌고, 저희는 기숙사 입사를 위해 필요한 검진(B형 간염, 결핵, 감염성 피부질환 검사 등)을 마친 뒤 개학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개학이 미뤄졌습니다.
약 20일 뒤로 미뤄진 개학과 함께, 당분간 기숙사 운영이 어렵다는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아이들은 개별 연락을 통해 반과 담임선생님을 확인했고, 개학 전까지 수학과 영어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대면 수업 대신, 스스로 학습을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엄마들은 '방학이 조금 더 길어졌다'는 정도로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학원마저 멈추면서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겨울방학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해 늦잠을 자는 아이, 시간관리에 실패해 과제를 제때 끝내지 못하는 아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아이 등 코로나19는 그렇게 아이들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반면, 제 아이는 원래부터 사교육 없이 혼자 공부하던 아이라 이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개학 시기에 맞춰 스스로 생활 리듬을 조정했고, 학교만큼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아침 7시에 일어나 9시면 책상에 앉아 과제와 예습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개학이 다시 미뤄졌습니다.
3월 중순으로 예정되어 있던 개학은 4월 초로 연기되었고, '드라이브스루 교과서 배부'라는 낯선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학교는 임시방편으로 이어가던 수업을 더 이상 계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학부모를 통해 교과서를 배부하고 정식수업을 시작하기로 한 듯했습니다.
드라이브스루로 교과서를 배부하던 날, 저도 정해진 시간에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학교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자, 선생님들께서 학년별, 반별로 교과서를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저는 2학년 배부 장소로 이동해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창문만 내리고 학반과 이름을 말씀드렸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 선생님께서 아이별로 준비된 교과서를 건네주셨습니다. 그 과정은 30초 남짓에 불과해, 교과서를 건네주신 분이 누구신지, 담임 선생님은 그 자리에 계셨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습니다.
이후 온라인 개학이 고3부터 순차적으로 시작되었고, ZOOM과 구글 클래스룸 등 여러 시스템을 활용한 수업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걱정과 달리 수업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었고, 비대면이라는 낯선 방식 속에서도 학교의 일상은 조금씩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4월 초 등교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아이들의 건강을 담보로 등교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학부모와 학생, 선생님들 사이의 논의가 계속되었고, 결국 5월 말이 되어서야 등교가 결정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전교생이 학교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각자 집에서 자가격리를 한 뒤 전원 음성이 확인되면 그다음 날부터 기숙사에 입사해 주말까지 포함한 약 열흘간을 학교에서 지낸 뒤 퇴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주말 동안 학원이나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가능성, 즉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과학고 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발생하면 대면 수업이 또다시 미뤄지거나 학교 전체가 함께 격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 하나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규칙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전원 음성이라는 결과를 받을 수 있었고, 드디어 등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열흘간의 기숙사 생활 동안, 주말에도 학교에 남아 아이들을 지켜주신 선생님들, 그리고 식사를 책임져 주신 영양사님과 조리사 선생님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잦아들 때까지 몇 차례 위기(외부 대학 입학사정관의 코로나 감염 등)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큰 탈 없이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버텨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과학고 2학년 1학기는, 조기졸업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개학과 동시에 조기졸업 대상자와 3학년 진학자가 구분되고, '상급학교 진학 희망자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이 조사는 조기졸업 이후 상급학교로 진학할 것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일부 학생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조기졸업만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진로를 보다 유연하게 설계하는데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일부 대학에서는 조졸과 조입을 다르게 반영하기도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지원 가능한 대학을 미리 확인하는 차원에서도 이러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코로나19로 개학이 미뤄지면서,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상급학교 진학 희망자 조사가 끝나면, 조기졸업 대상자들은 '상급학교 조기입학 이수인정 평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2학년 수업과는 별도로 3학년 과정의 수업을 듣고 수행평가를 치러야 합니다. 원래라면 3월부터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통해 진행되었을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등교 개학이 미뤄지면서, 모든 일정이 계속 뒤로 밀리기만 했습니다. 결국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되어서야, 온라인으로라도 고3 과정 수업 선택과 수행평가 일정이 공지되기에 이르렀습니다.
2학년 수업 일정조차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던 상황에서, 고3 과정까지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그해 과학고 조기졸업 대상 학생들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버텨내야 했습니다.
그중에는 제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제 아이도, 기숙사에서 완전 소등 이후에 공부를 해야겠다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수면시간을 최대한 확보하며 지내왔던 1학년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 시간을 줄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과학고 입학을 준비하며 챙긴다는 무선 스탠드 같은 물건들을, 저희는 2학년 1학기가 되어서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 뒤면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기숙사 취침시간 이후, 무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2학년 과제와 3학년 수행평가 등을 동시에 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어느 과학고생의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조기졸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죽기 살기로 공부했어요."
그 말을 떠올리는 순간, 제 아이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원래 과학고의 봄은 조기졸업을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잔인한 계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과학고의 봄은 코로나19로 미처 견뎌볼 틈도 없이 스쳐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 대가는 이후의 계절들이 대신 치러야 했습니다.
[예순세 번째 고슴도치 시선] 과학고등학교에도 1학년 학사일정에 '공개수업'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는 동안 공개수업에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습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참석하는 학부모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어떨 때는 저만 참여해 다소 민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아이의 학교생활과 수업방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 생각해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과학고의 공개수업은 조금 달랐습니다. 1학년 학부모들의 참석률이 상당히 높았고, 기대했던 만큼 수업 방식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참석한 수업은 수학이었는데, 처음에는 문제를 빠르게 풀고, 숙제로 풀어 온 문제를 확인하는 평범한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선생님께서 아이들 각자의 해법을 존중해 주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소 투박하고 비효율적인 풀이방식이라 할지라도, 선생님께서는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끝까지 풀어낸 과정에 더 큰 격려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제 아이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내며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가 여전히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반가웠습니다.
[다음 이야기] 코로나가 증명한 자기주도학습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중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