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 편
과학고등학교에서의 1년은 조기졸업(이하 조졸), 상급학교 조기입학(이하 조입), 그리고 3학년 진급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 성적에 대한 중압감은 일반고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일반고가 대학 입시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긴 마라톤을 달리는 구조라면, 과학고는 그 여정의 중간에 주어지는 '지름길'을 두고 한번 더 경쟁하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그것은 꽤 매력적이지만 그만큼 치열합니다.
2025학년도부터 바뀐 조졸과 조입의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적 기준입니다.
이수 단위수 기준으로 기초교과와 탐구교과의 학업성취도가 80% 이상 A이고, 해당 학년 전체 학생 중 상위 15% 이내에 들면 조졸이 가능합니다. 기초교과는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이며, 탐구교과는 사회와 과학을 의미합니다. 즉, 예체능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과목에서 80% 이상 A를 받아야 하고, 동시에 상위 15% 안에 들어야 합니다. 이 조건을 충족한 학생들은 대학 입시 결과와 관계없이 조졸을 할 수 있지만, 상당수가 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합니다.
조입은 기본적인 성적 요건은 조졸과 동일하되, 상위 30% 이내의 학생에게 주어지는 자격입니다. 다만 조졸과 달리, 상급학교 진학이 확정된 경우에만 2년 만의 졸업이 가능합니다. 즉 2학년 때 대학 입시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주되, 합격하지 못할 경우에는 3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조입을 선택한 학생들의 입시 결과 역시 일반고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둘째, IQ 기준입니다.
[쉰다섯 번째 고슴도치 시선]에서도 언급한 적 있지만, 입학 이후 6개월의 간격을 두고 시행한 서로 다른 두 차례의 공인 지능검사에서 IQ 145 이상을 받은 경우에도 조졸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조졸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IQ와 별개로 학업 성취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원하는 대학 진학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학고에서는 조졸 기준에 IQ를 포함하고 있지만, 이 기준이 대학 입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습니다.
셋째, 수상 기준입니다.
국가기관 주관 전국대회에 학교장 추천으로 참가해 3위 이내에 입상했거나, 국제올림피아드 국가 대표로 선발된 경우에도 조졸이 가능합니다. 대학에서도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특기자전형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문이 넓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이 기준으로 조졸을 선택한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경로이긴 합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조졸과 조입 대상자가 되면 2학년 1학기에 '상급학교 조기입학 이수인정 평가'를 통과해야만 3학년 과정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2학년 1학기 동안 2학년 정규과정에 더해 압축된 3학년 과정(수행평가 포함)까지 소화한 뒤, 별도의 인정 평가까지 통과해야 하는 부담이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고에서의 2년 조기졸업은 여전히 매력적인 선택지로 작용합니다.
최근에는 이공계특성화대학을 중심으로 '과학영재선발제도'가 신설되어, 과학고뿐 아니라 일반고와 영재학교 학생들에게도 2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못다 한 이야기'를 통해 보다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한편, 과거에는 과학고에 입학하는 것만으로도 2년 조기 졸업이 가능했고, 이후 카이스트와 같은 이공계특성화대학으로 진학하는 흐름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경로처럼 여겨지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조졸과 조입의 문이 좁아지고 있고, 대학에서도 조졸은 수용하되 조입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과학고의 조졸시스템이 다른 진로를 위한 경유지로 활용되는 사례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치약학 계열 선호 현상과 맞물려 나타나는 흐름이기도 합니다.
과학고 졸업 이후 이공계특성화대학뿐 아니라 종합대학에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제도적 변화는, 학생들의 선택지를 넓혀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졸 이후 재수학원에 들어가 의대를 준비하거나, 조입으로 대학에 입학한 뒤 반수를 통해 의치약학 계열로 이동하는 사례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정작 과학고 안에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부작용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입학 시 의약학계열지원 제한 동의서를 제출해야 하고, 의대 진학 시 선생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장학금을 반환해야 하는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이공계 인재들이 과학고에 진학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1학년이 끝나고 긴 겨울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1학년 동안의 시험과 수행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정해지는 조졸, 조입, 3학년 진학 대상자 명단을 기다립니다. 제 아이 역시 그 시간을 기다리며 다음 학기 수업을 미리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2학년 1학기의 수학과 과학 대부분은 '심화' 단계로 넘어가고, 일부는 대학 과정에 가까운 난도로 진행된다는 것을 아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혼자 공부하는 아이에게는 참고할 만한 자료나 문제집이 마땅치 않았지만, 1년을 보내는 동안 아이는 학교 수업의 패턴을 어느 정도 익히고, 스스로 공부의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2학년 1학기 수업을 대비하는 아이의 공부 방식은 분명했습니다. 가장 어려운 과목부터, 가장 부담이 큰 부분을 중심으로, 가장 기본 개념부터 짚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심화'란 결국 기본 위에 쌓아 올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는 이미 체득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이가 집에서 묵묵히 공부를 이어가고 있던 그 무렵, 저는 그해 마지막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 다녀왔습니다. 그 자리에는 코로나19라는 낯선 변수에 대한 조심스러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고, 학교 역시 나름의 대비를 서두르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회의 후 마련된 작은 다과 자리에서, 2학년을 앞둔 학부모들에게 선배 엄마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3월 초, 과학고 2학년 교실의 분위기는 한 반에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 사이에, 조졸, 조입, 3학년 진학이 확정된 학생들이 뒤섞여 있어 묘하다고 했습니다. 같은 교실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것처럼 아이들이 느끼는 듯했습니다. 학부모들의 분위기도, 같은 학년이지만 당장 입시를 준비를 해야 하는 아이와 1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 아이로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입시설명회를 조졸 및 조입 학부모와 3학년 진학 학부모로 나누어 진행하다 보니, 그 간극은 더 또렷해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그런 2학년 교실의 미묘한 분위기나, 학부모들 사이의 어색함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제 아이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2020년, 2학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이들의 정상적인 학교 생활은 두 달 넘게 미뤄졌고, 미묘할 것이라던 교실 분위기는 비대면과 대면 수업을 오가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체감할 틈도 없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어색할 것이라던 학부모들과의 관계 역시, 오히려 정보를 공유하고 걱정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유지되었습니다. 덕분에 1학년때 만들어진 모임은 아이들의 진학 여부와 관계없이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사실상 멈춰 섰던 그 시기, 학교의 시스템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불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지나며, 오히려 과학고의 시스템이 얼마나 빠르게 복구되는지를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대면 개학이 세 차례나 연기되고 공지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도, 학교는 짧은 시간 안에 완성도 높은 온라인 수업을 준비했고, 아이들의 학습이 가능한 한 흔들리지 않도록 애쓰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아이의 고등학교 2학년 생활 일부를 집에서 지켜보게 되면서, 과학고의 학사시스템과 선생님들의 노고, 그리고 조기졸업 과정이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교실, 다른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던 그해 3월은, 그렇게 저희가 예상했던 모습으로는 끝내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예순두 번째 고슴도치 시선] 과학고의 1학년 마무리는 기말고사를 치르고 일주일 뒤 열린 축제가 장식했습니다. 전통처럼 이어져 온 학부모 참여도 있었는데, 1학년 엄마들은 반마다 간식 메뉴를 정해 점심 이후부터 저녁 시간까지 급식실 앞에서 작은 분식집을 운영했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의 무대를 함께 지켜보는 일정이었습니다.
힙합부터 발라드까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거기에 악기연주까지. 능숙한 무대들이 이어졌습니다. 기말고사가 끝난 뒤 준비 기간이 고작 일주일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완성도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물론 모두 고슴도치 엄마들이라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학교의 축제를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날의 무대가 예상보다 훨씬 빛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학년들은 모든 무대에 열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음악이 고조될 때마다 함께 뛰어올랐습니다. 반면 2, 3학년들은 자리에 앉은 채, 조금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대비가 또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졌고, 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던 엄마들은 그 다른 온도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많은 아이들 사이에서 제 아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음악에 몸을 맡긴 채, 누구보다 열심히 그 시간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제 아이의 또 다른 얼굴을 제가 아직 다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모습이, 훗날 카이스트 응원단장이 될 아이의 한 조각이었다는 것을 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 그해, 과학고의 봄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중등 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