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밖의 세상

고등 편

by My Way

2019년부터 세계를 뒤덮은 COVID-19로 몇 년간 잠시 중단되기는 했지만, 과학고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행사 중 하나는 세계의 우수 교육기관을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합니다. 조기졸업 제도가 있는 과학고의 특성상 이 탐방은 1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자 학교에서도 상당한 부담을 안고 준비하는 일정입니다.


선생님들은 약 열흘 안팎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이 무탈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학기 초부터 세심하게 준비를 시작합니다. 저는 학부모 운영위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알게 된 것도 있고, 아이가 직접 참여하면서 들은 이야기도 있는데, 그 운영 절차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전 준비

선생님들께서 계획안을 학교에 제출하면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이를 심의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선생님들의 계획안은 대부분 그대로 통과됩니다. 이후 가정통신문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탐방 지역에 대한 사전 선호도 조사가 이루어집니다. 제 아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미국 서부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역이 정해지면 여행사와 협력해 항공편과 숙소, 식당, 견학지 등을 예약하고 전체 일정을 조율합니다. 또한 몇몇 선생님들이 사전 답사를 다녀오시는데, 모든 이동 경로와 방문 장소를 미리 점검하며 철저하게 준비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째, 실전 준비

학부모들도 준비에 들어갑니다. 우선 경비는 수익자 부담이 원칙입니다. 다만 경제적인 이유로 참여가 어려운 학생이 있을 경우, 학교에서 회의를 통해 일부 학생을 선정해 지원하기도 합니다.

제 아이가 학교에 다니던 약 7년 전만 해도 경비는 대략 300~400만 원 선이었습니다. 과학고에 돈이 많이 든다는 오해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해외 탐방 비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2025년 기준으로 여러 과학고의 탐방 경비를 살펴보니, 환율 변동의 영향으로 예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오른 곳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은 아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가능하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미성년자이다 보니 준비할 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데이터 로밍 신청부터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 준비까지,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절차들이 이어졌습니다. 학교에서는 여권과 지갑, 휴대폰을 함께 넣어 다닐 슬링백과 여분의 여권 사진, 호텔에서 신을 슬리퍼, 멀미약, 멀티 어댑터 등을 준비하라고 안내했습니다. 관광을 도와줄 가이드를 통해서는 환전을 미리 해 두라는 연락도 왔습니다. 아이들은 방문 지역의 날씨에 맞는 여벌의 옷을 챙겼고, 학교에서는 반별로 단체 티셔츠를 맞추기도 했습니다.


셋째, 여행의 시작

오전 6시 30분까지 학교 앞으로 집결하는 것에서부터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방에 살다 보니 인천국제공항까지는 반별로 제공된 리무진을 타고 이동했습니다. 사실 과학고 학생들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습니다. 출발하는 아침까지도 짐을 다 싸지 못해 엄마에게 혼이 나며 온 아이도 있었고, 집에 뭘 두고 왔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늦게 도착해 허둥지둥 뛰어오는 아이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학교에서 출발하는 순간조차도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당시 아이들의 일정은 비행기가 연착되며 첫날부터 삐걱거렸습니다. 하지만 약 11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이후에는 첫날의 빡빡한 일정도 무사히 소화한 듯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함께 움직이는 행사라 그런지, 외부 일정에서도 학교 규칙은 그대로 적용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예를 들어 호텔 방 배정은 3분기 기숙사 이동 때 정해진 룸메이트와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었고, 기숙사 벌점 규정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소식은 인솔해 간 선생님들께서 사진을 계속 업로드해 주셔서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한 반에 두세 명씩 있던 여학생들의 엄마들을 통해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은 엄마에게 연락도 잘하지 않고 사진도 보내주지 않습니다. 제 아이는 그나마 연락은 자주 하는 편이었지만, 사진은 도통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습니다.

'연락이라도 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데, 여학생 엄마들이 딸들이 보내준 사진들을 공유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진들에는 자신의 모습뿐 아니라 친구들의 모습도 많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학생 엄마들은 사진 속에서 각자 자기 아들을 찾기 시작했고, 귀퉁이에라도 아이가 보이면 그 사진을 저장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도 그렇게 아이 사진 몇 장을 건졌습니다.

'에휴, 남자들이란...'


미국 서부 일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캠퍼스투어, 그리피스 천문대 방문, 로스앤젤레스 고등학교와의 교류행사, UCLA 대학 투어와 데니스 홍 교수 특강, 스탠퍼드 대학 캠퍼스 투어와 토마스 리 교수 특강, 인텔 박물관 방문, 애플 스토어와 구글 스토어 방문, UC 버클리 캠퍼스 투어, 그리고 EXPLORATORIUM 과학관 방문 등이 주요 일정이었습니다.


대학 캠퍼스 탐방은 사전에 연락이 된 한국 유학생들의 도움으로 설명을 들으며 진행되었고, 현지 고등학교와의 교류 행사에서는 수업을 참관할 기회도 있었다고 합니다. 데니스 홍 교수 특강에서는 연구실을 둘러보고 연구 중인 로봇들을 직접 볼 수 있어 아이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습니다. 다른 일정들도 단순한 여행이라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던 듯합니다.

그 밖에도 주말에는 국립공원이나 유니버설스튜디오를 둘러보는 일정이 있었지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듯하고, 전용 차량으로 이동하는 시간도 꽤 길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세계의 이공계 대학들을 둘러보고 그곳의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힘들었던 과학고 생활 속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과학고 밖의 세상에서, 아이는 무엇을 보고 왔을까요?


1학년 2학기 중간고사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떠났던 약 열흘 남짓의 여행을 다녀온 뒤, 아이는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1학년 1학기 성적은 아이에게 독이 되었지만,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은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조금 느리긴 했지만 아이는 차츰 정신을 차리고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방황이 그리 길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 마음이 타들어 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주중에는 잠시 잊고 지내다가도, 주말에 집에 와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는 일이 참 힘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힘들었던 이유는 아이가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그 결과로 받게 될 성적이 아이에게 상실과 좌절을 안겨 줄까 봐였던 것 같습니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이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가능하다면 그런 괴로움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런 방황과 시련이 있었기에 아이가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학년 2학기 최종 성적이 나온 날, 담임 선생님께서는 희망하는 학부모에 한해 상담 시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다만 조졸이나 조입 여부와 같은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두리뭉실하게 답을 주셔서 아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이야기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 비해 기말고사 성적이 꽤 많이 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이가 다시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는 사실에 일단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은 말씀도 들었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담임 선생님께서는, 제 아이와 같은 학생들이 과학고에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른 과목 선생님들께서도 오롯이 자신의 수업만 듣고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끼신다고도 전해 주셨습니다.

아이의 방황이 짧고 굵게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렇게 많은 선생님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덕분에 아이도 다시 자존감을 회복하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1학년 2학기 성적을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2학년 때 수시 원서를 준비하며 담임 선생님과 입시 상담을 하면서였습니다. 그때 확인한 종합 성적은, 1학년 2학기 중간고사 성적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면 조입이 아니라 조졸 대열에 충분히 합류할 수 있었을 만큼의 결과였습니다.

그만큼 1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하며 아이가 얼마나 이를 악물고 공부했는지를 보여 주는 성적인 것 같아서 괜히 울컥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그 열흘 남짓의 여행 동안 아이는 단순히 세계의 대학들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다시 확인하고 돌아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1학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예순한 번째 고슴도치 시선] 해외 탐방을 다녀온 뒤, 아이에게는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가장 먼저 아이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유튜브 앱을 삭제했습니다. 1학기때는 주로 동기부여 영상이나 공부법을 찾아보는 용도로 사용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학기에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하는 일이 있었던 듯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그것이 자신의 공부에 방해가 되는 요소라고 판단한 것 같았습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자신의 목표를 종이에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이전 시험의 성적과 함께 자신이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는 공부하다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종이를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아이에게 '2년 만에 과학고를 졸업한다'는 목표는 처음에는 막연한 희망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한때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지자, 아이는 그 목표를 다시 붙잡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한 번 흔들렸지만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페이스를 되찾아 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제 아이는 무너지지 않는 아이라기보다는 흔들리더라도 결국 다시 일어서는 쪽에 더 가까운 아이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 이야기] 같은 교실, 다른 세상




이 이야기의 첫 단추 영유아편과 본격적인 교육 이야기를 담은 초등 편,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을 실천했던 중등 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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