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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병묵 Jul 04. 2019

오랑우탄은 바나나 더미를 타고...

[과학적 추론의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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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두 가지 버전의 생존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아름답고 다른 하나는 참혹하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가 첫 번째 버전에 등장하는 ‘바나나 더미’를 타고 구출되는 오랑우탄이다. 오랑우탄은 두 번째 버전에서 주인공의 엄마를 상징한다. 정말로 오랑우탄은 ‘바나나 더미’를 타고 표류하다 구출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일본인 조사원은 “바나나는 물에 뜨지 않는다”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 두고 바나나가 물에 뜨는지 여부를 실제로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직접 해보는’ 의욕적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바나나 하나가 물 위에 뜨는 것과 오랑우탄이 ‘바나나 더미’를 타고 안전하게 표류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과연 그럴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추론해 보자.


과학적 추론


우선, ‘바나나의 밀도’를 살펴보자. 싱싱한 바나나의 밀도는 물의 밀도와 거의 같다. 자료1을 보면, 온도 20도에서 싱싱한 바나나의 밀도는 약 997 kg/m³으로 물의 밀도 998 kg/m³와 거의 같다. 그러나, 바나나에서 수분이 줄어들면 밀도가 급격히 증가한다. 바나나를 밖에 오래 두면 서서히 마르면서 수분이 줄어드는데, 처음보다 수분이 절반이면 밀도가 1150 kg/m³ 이상으로 올라간다. 싱싱한 바나나는 물 위에 뜨지만 오래된 마른 바나나는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바닷물의 밀도는 순수한 물의 밀도보다 높다. 바닷물에 염분 등의 물질이 들어 있어서 그렇다. 바닷물의 밀도는 온도와 염분에 따라 1122~1030 kg/m³ 사이의 값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바닷물의 밀도는 1030 kg/m³으로 가정할 수 있다 (자료2).

그렇다면, 바나나 더미의 밀도는 얼마나 될까? 바나나 여러 개를 단단하게 묶은 바나나 더미는 사이사이에 빈 공간이 많다. 바나나 더미를 아주 조밀하게 묶어도 전체 부피의 약 60%가 바나나이며 나머지는 빈 공간이다. 바나나 더미가 공기 중에 있으면 바나나 밀도의 거의 절반이지만, 바닷물에 잠긴 바나나 더미는 60%가 바나나이고 40%가 바닷물이므로 약 1010 kg/m³의 유효밀도를 가진다.

바나나 더미의 부피는 대략 구형의 모양이라 가정할 수 있다. 직경 1 m의 구형 부피는 0.5 m³이며 직경 1.5 m이면 2.0 m³의 부피를 가진다. 꼭 구형이 아니더라도 오랑우탄이 올라탈 정도면 바나나 더미의 부피를 2.0 m³ 정도로 가정해도 무방하다.

이제, ‘부력’을 계산해 보자. 물에 잠긴 바나나 더미가 지탱할 수 있는 무게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이용하면 쉽게 구할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자료2를 참조할 것. 부력에 의해 물에 뜰 수 있는 물체의 무게는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수식 : 물체의 무게 = 물에 잠긴 부피 × (바닷물의 밀도 - 바나나 더미의 유효밀도)

적용 : 앞에서 검토한 값들을 적용하면, M = 2.0 m³ × (1030 kg/m³ - 1010 kg/m³)이며, M = 40 kg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석 : 싱싱한 바나나를 2.0 m³ 정도의 부피로 묶은 ‘바나나 더미’는 40 kg 정도의 오랑우탄 무게를 가라앉지 않도록 지탱할 수 있다.

따라서, 오랑우탄이 바나나 더미 위에서 표류하다 구조되는 영화적 설정은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닷물 위에 안전하게 떠 있으려면 바나나가 ‘싱싱해야’ 하며 더미의 ‘부피가 커야’ 한다. 즉, 물체의 밀도가 작고 부피가 클수록 부력이 크다. 바닷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싱싱하고 부피가 큰 ‘바나나 더미’ (가볍고 부피가 큰 물체) 위에 올라타야 한다. 그래야 충분한 부력을 얻을 수 있다.

영화에서 어느 버전이 진실인지는 각자 생각해 보자.

— 자료1. 바나나 밀도 자료. Journal of Food Engineering 64, 103–109 (2004).

— 자료2. 부력 계산 방법. https://youtu.be/Ls4aig_pg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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