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향한 판단과 확인의 기준이 스스로를 가두지 말자.”
햇살이 쏟아지는 하얀 모래사장 위, 바다를 사랑하는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네요. 작은 유리병은 매일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숨을 참으며 몸을 내맡겼어요.
"오늘은 바다를 이만큼이나 담았네?"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물의 높이를 보며, 눈금을 읽어 내렸어요.
어떤 날은 파도가 높아 눈금 끝까지 물이 차올랐고, 어떤 날은 물이 바닥을 겨우 적실뿐이었지요. 눈금이 낮은 날이면 텅 빈 가슴을 부여잡고 생각했어요.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을까. 나는 아직 바다를 품기에 턱없이 부족해.'
모래사장 위에는 갖가지 다른 병들이 굴러다녔어요. 저 멀리 화려한 라벨이 붙은 와인병은 자기 안에 담긴 빛깔이 얼마나 비싼지 뽐냈고, 단단한 플라스틱병은 파도에 부딪혀도 절대 깨지지 않는 강인함을 자랑했지요.
유리병은 그들의 화려함 곁에서 어떻게든 더 많은 바다를 가두어, 내가 이들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 커질수록, 유리병의 뚜껑은 더 꽉 닫혔고 몸 안의 물은 햇볕에 말라 지독한 소금기만 남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평소보다 훨씬 거대하고 푸른 파도가 해변을 덮쳤어요. 유리병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렸지만, 파도는 부드러운 손길로 유리병을 감싸 안아 깊은 바다로 끌고 들어갔지요.
그 순간이었어요. 거센 물살에 부딪혀 꽉 닫혀 있던 유리병의 뚜껑이 '툭' 하고 열려 버렸어요. 유리병은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공포에 질려 소리쳤어요.
”안 돼! 뚜껑이 열리면 내 안의 바다를 다 잃어버릴 거야!”
하지만 비명 대신 들어온 것은 투명하게 맑은 바다의 숨결이었어요. 뚜껑이 사라진 입구로 바닷물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고, 유리병의 몸 안과 밖은 경계 없이 하나가 되었어요. 더 이상 몸뚱이에 새겨진 눈금을 읽을 필요도, 물이 얼마나 찼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지요.
깊은 바다 밑바닥에 가만히 내려앉은 유리병은 비로소 보았어요. 눈금에 갇혀 있을 때는 보지 못했던 거대한 세상을요.
”난 숨을 쉴 때마다 이미 바다였어!”
유리병은 더 이상 바다를 '담는' 존재가 아니었어요. 나 자체가 바다의 일부였고, 바다가 곧 나였음을, 자신을 가두고 있던 뚜껑과 눈금은 바다를 담으려 한 게 아니라, 그저 스스로를 가두고 있을 뿐이었어요.
‘아무것도 채우지 않아도 난 이미 충분했어, 그래 그런 거였어.’
유리병은 바닷속에서 물결이 흐르는 대로, 심장이 뛰는 대로 그저 푸르게 흔들리며 흘러갈 뿐이랍니다.
[에필로그]
당신의 유리병에는 어떤 눈금이 새겨져 있나요? 그 눈금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요?
우리는 종종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곤 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숲의 나무가 자신이 나무임을 증명하지 않아도 푸르듯, 당신 또한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온전한 바다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을 가둔 눈금을 지우고 그저 편안히 당신의 바다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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