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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8. 2019

갈꽃비

 

 가을바람 부는 강가에 서면 피어오르는 갈꽃과 갈잎끼리 서로 몸 부비는 소리 들린다. 바람에 몸을 맡긴 하얀 갈꽃들이 허공을 비질하면 하늘은 더욱 맑아지고 텅 비어 쓸쓸함마저 감돈다. 후끈하고 눅눅했던 바람은 어느새 서늘하게 살갗에 미끄러진다.  

이렇게 눈부신 꽃으로 맨 처음 갈꽃비를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푸른 하늘을 거울처럼 맑게 닦는 갈대꽃을 보는 순간, 방안을 곱게 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머리카락 한올 없이 말갛게 쓸린 방안이 떠오른다. 

 언제나 마루 한쪽 귀퉁이에 갈꽃비가 걸려 있었다. 오색실로 엮은 보드라운 방 빗자루는 언제 샀는지 모르지만 닳아서 뭉툭했다. 그때는 꽃비라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걸레질하지 않고 쓸기만 해도 방안은 깨끗해졌다. 요즈음의 플라스틱 빗자루와 청소기는 속 깊이 꼼꼼하게 가 닿지 못해 다시 살펴야 한다. 

갈꽃비로는 방안을 쓸었고 부엌은 수수 빗자루를 썼는데 붉은 수수껍질이 매달려 있었다. 마당은 빗자루나무라는 일년초 댑싸리나무로 만들어 쓸면 정갈하기가 그지없다. 주로 싸리나무나 대나무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데 비질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그런 마당에는 고요가 깃들어 마음가짐마저 정숙해진다. 우리들은 새벽에 비질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고 곱게 비질한 마당을 지나 새로운 하루를 열어나갔다.

갈꽃은 허공을 쓸며 사람들에게 남은 한 철을 위해 뜨거웠던 열기를 잠재우는 성찰의 자세를 가지게 한다. 갈꽃비,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허공을 쓸던 갈꽃은 이제 갈꽃비가 되어 자신의 생을 마지막까지 소진한다는 마경덕 시인의 시는 갈꽃비처럼 허공을 쓰다듬던 버릇으로 바닥을 쓸고 닦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닌가. ”갈꽃비가 평생 살아갈 곳은 바닥이다. 끝내 몽당비가 되어 벽에 풀칠이나 하다 버려질 저 꽃비, 쓸고 닦는 생의 목록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갈꽃비, 오는 가을에는 하얗게 넘실거리는 갈꽃을 보러 가리라. 마음에 일렁이는 잡스런 생각들을 쓸어내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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