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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3. 2019

연필

연필


송복련


기록은 오래 몸에 밴 습관이다. 동굴에 들소를 그리던 조상의 피가 흐르는 나는 연필로 풀어내길 좋아한다. 한글을 깨우칠 때부터 내 연필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내 중지 첫째 마디에 팥알만 한 굳은살을 박아놓았다. 쓰다가 떨어뜨리면 둥근 것은 또르르 굴러가다 발밑으로 곧잘 숨는다. 아무래도 사각이나 육각으로 된 것들은 그런 염려가 덜했다. 연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지금의 연필이 탄생된 시기는 질 좋은 흑연 광산이 발견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흑연으로 심을 만들어 나무에 끼워서 쓰거나 종이나 실로 감아 썼다니 연필의 구석기 시대인가. 우스꽝스런 모습이 떠오른다. 칼을 잘 다루지 못하던 초등학교시절, 연필심을 잡고 있던 나무가 푹 파여 심이 훤히 드러났고 심도 곧잘 부러졌다. 만드는 이나 깎는 나나 서툴기는 마찬가지였다. 눌러 쓰다보면 잘 부러지는데 그때마다 연필을 깎는 일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은 연필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산다. ‘발망 카르본’이라는 향수가 나온 것도 연필냄새가 가져다주는 추억 때문이다. 내 친구의 필통에는 알록달록한 연필들이 가득 차 있어 늘 부러워했다. 몽당연필 한두 개에 지우개와 칼이 고작인 내 양철 필통은 움직일 때마다 달그락 소리가 났다. 교실 마룻바닥에는 구멍이 많았다. 옹이가 빠져나간 자리로 우리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 구멍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잃어버린 것들이 어둠 속에 반짝거렸다. 언젠가 마루 밑 숨구멍을 열고 들어간 친구는 횡재를 한 것처럼 좋아했는데 제법 많은 것들이 끌려나왔다. 무엇이든 귀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연필은 향나무 연필이다. 향나무 연필을 깎을 때마다 향나무 냄새가 났다. 연필 향에 묻어나온 기억 하나가 있다. 큰애의 돌이었다. 돌잡이로 준비해 둔 쌀과 돈, 연필에 실타래를 상 위에 놓았다. 첫 선택의 순간을 맞는 아이가 무엇을 짚을까 무척 궁금했다. 제발 공부 잘하게 연필을 잡았으면 했다. 혹여 돈을 잡든지 실을 잡을지 몰라 연필을 아이 손이 잘 닿는 곳에 두었던 것 같다. 돈이 중요하고 수명도 길어야 하겠지만 내 욕심은 공부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믿었던 때였다. 아마 연필을 잡았을 거라 믿는다. 예나 지금이나 겨우 발을 디디고 선 아이의 눈망울을 보며 벅찬 기대감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어른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떠들썩해진 분위기에 아이의 놀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금은 청진기, 골프공까지 등장한다고 하니 시대를 따라 풍속도 많이 달라졌다.


HB 노란 연필을 깎는다. 연필이 샤프와 볼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컴퓨터자판을 두드리는 시대라고 하지만 변방으로 내몰린 연필을 무시하면 안 된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는 것으로 연필만큼 만만하고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샤프가 있긴 하지만 연필을 깎는 동안 느린 기다림과 수고가 없다. 깎는 과정에서 상상력은 날개를 달기 시작한다.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쥐고 있으면 술술 잘 풀리는 연필을 애용한다. 중심을 잡고 있던 연필심이 점점 날카로워지고 연필밥과 가루가 종이 위에 쌓인다. 미끈하게 잘 다듬은 연필을 가지고 밤새 심이 다 닳도록 긴 문장을 쓰고 싶다. 쓰다가 멈추고 지웠다가 다시 쓰는 나의 아날로그적 글쓰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의  시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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