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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Mar 20. 2024

어느 날 내가 죽었다

지난 밤 꿈 이야기


 


세상은 서로 쉽게 앙심을 품고 복수하는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은 작은 피해만 입어도 복수하러 쫓아다녔다. 그러다 내 친구 하나가 누군가의 계략에 희생되어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도 그 친구의 복수를 하고 싶어서 가해자 주변을 얼쩡거렸다. 가해자에게 크게 화를 내기도 하고 되려 목숨의 위협을 느껴 겅찰서로 피신하기도 했다. 다시 집에 돌아온 어느 날, 나는 느닷없이 난입한 2인조 괴한이 흉기를 휘둘러 목숨을 잃었다.




보통은 꿈 속에서 죽음을 맞는 즉시 잠에서 깨고는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 몸 안쪽에서 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풍선처럼, 구름처럼 팽창하며 점점 떠올랐다. 그렇게 몸을 벗어나자 무척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내 존재는 전보다 훨씬 가벼웠고 자유로워졌다. 둥둥 떠다니던 나는 몸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무겁고 불편한 것을 짊어지고 어떻게 한 세월을 살았던 거지? 몸, 그러니까 저 껍데기가 병에 걸릴까봐 걱정하고, 다쳐서 고생했던 과거의 내가 우습기도 했다. 이제야 진짜 내가 된 것 같았다.



영혼의 세계는 인간 세상과 겹쳐져 있었다. 인간 세상을 바탕으로 깔린 한 겹의 레이어 같았다. 영혼들은 생전 가장 편안했던 곳에 머문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갔다. 남편과 큰아이는 나를 못 보고 지나치는데 둘째는 어렴풋이 나를 느끼는 것 같았고 내가 쓰던 침대에 엎드려 가만히 이불을 만지며 엄마를 그리워 하는 듯 보였다. 아이가 내 존재를 느꼈는지 내 무릎쯤을 베고 눕기도 했다. 영혼의 세계는 자유롭고 신이 났지만 인간으로 사는 내 아이들은 고통스럽겠다는 걸 처음 느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것이 슬프진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 기쁨으로 다시 만나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꿈 속에서 생각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은 인간이 만든 것이구나. 어떤 면에서는 인간 시절이 그립기도 했지만 영혼의 세계는 인간일 때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새롭고 완전한 느낌이 들었다. 프롤로그가 끝나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겠다는 예감. 몸을 입고 살았을 때 했던 걱정과 고민들이 하염없이 어리석고 먼 얘기처럼 느껴졌다.



먼저 영혼이 된 내 친구는 영혼을 위한 요리책을 만들었다. 나는 영혼 교회 안내장을 받고 이런 게 있냐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몸이 아파 고생하다 영혼이 되신 분들,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다 영혼이 되신 분들이 모여 흥겹게 기뻐하며 춤췄다. 더는 아프지 않아서 너무 좋다고 했다. 거의 축제 같았다.



이제 다시 어딘가로 떠날 때가 되었다. 인간 시절과 작별하라고 주어졌던 시간이 다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내가 지금 어떤 곳으로 갈 지 잘 몰랐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고향에 돌아가는 마음으로 기쁘게 사라졌다.



잠에서 깼다.


한동안 멍멍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자각이 들자 이 살아있음이 진정한 삶이라 하기엔 너무 무겁고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떠날 날이 가까워진 걸까? 그걸 미리 알려주는 꿈이었나? 나는 몸의 시간을 더 유예해달라고 기도했다. 여기서 몸으로 연결된 사람들과 더 사랑할 시간을 달라고. 함께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이 얼마나 벅찬 기회인지 새삼 느껴졌다. 매일 사랑을 표현하고 행복을 누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구나. 당장의 문제에 매몰되어 이미 주어진 행복을 못 보고 지나치지 말아야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고 나니 어제의 고민들은 무의미한 먼지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침에 아이들을 꼬옥 안아주었다.

너와 내가 살아있어서 감사해.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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