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자르는 날
하루 이틀 머리 자르기를 미뤄왔는데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다. 덥수룩한 남편의 머리가 마치 레고 가발을 뒤집어 쓴 모양새 같았다.
“오늘은 진짜 머리 잘라야 겠어요”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와서 밥먹을 준비를 하는 동안 남편은 화장실에서 머리를 자를 준비를 해 놓았다. 바리깡과 빗, 미용가위등이 담긴 작은 통과 의자를 가져와서 미용실에서 쓰는 보자기같은걸 두르고 바리깡을 이용해 징- 하고 남편 머리카락을 잘라낸다.
시골에 와서 ‘리틀포레스트’까지는 아니지만 어느정도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급자족 하며 사는 삶을 살게 되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남편 머리를 직접 자르게 되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였는데 내려와서 여기저기 미용실을 다니며 머리를 잘라도 머리모양이 이상했다. 돈을내고 저렇게 자를 바에야 차라리 내가 자르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 바리깡을 샀고 그게 5년째가 되었다. 처음에는 유투브로 ‘남자 머리 자르는 법’같은 동영상을 찾아서 열심히 공부를 하기도 했지만 영상을 봐도 막상 머리를 자르려고 하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흔히 ‘바리깡’이라 부르는 이 도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조심조심 자르려 했지만 바리깡은 머리카락을 살짝 스치기만 해도 잘려나갔고, 짧은 남편의 머리는 군데군데 땜빵이라고 부르는 동그란 모양이 생기기도 했다. 그럼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해서 소리내어 웃고, 자기머리가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남편은 내 웃음 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자르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바리깡으로 뒷머리를 밀고 나면 작은 미용가위를 들고 미용실에서 봤던 모습을 대충 흉내내어 윗머리와 앞머리를 자른다. 새로 자란 끝이 뾰족한 머리카락들을 손가락사이에 끼워 조금씩 잘라내면 어느새 머리가 조금 단정해 진다. 처음에는 30분도 넘게 걸렸던 머리자르기는 이제 10분 남짓이면 끝이 났다.
“오늘은 좀 잘 자른거 같아요. 어때요?” 남편은 안경을 쓰고 거울을 이리저리 본다. 대답대신 웃는 걸 보니 이상하게 자른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안심이 된다. 조금 엉성해 보여도 머리가 조금 자라서 잘라낸 부분이 자라나면 다시 자연스러워 진다. 어깨에 둘렀던 보자기를 풀고, 도구를 정리하고 바리깡에 뭍은 머리카락도 솔로 잘 털어내 다시 상자에 담아둔다. 다행히 남편도 나도 외모를 치장하는 걸 크게 좋아하지도 않고, 시골에 내려왔더니 그럴 일은 더 없어졌다. 단정하게 하고 다니면 됐다. 도시에 살 때에는 심한 곱슬머리 때문에 2달에 한번씩은 미용실에가서 매직펌을 하던 나도 시골에와서 자연스럽게 곱슬머리로 기르게 됐고, 온전히 기른 내 머리가 이렇게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 예수님같은 머리가 된다.)
여러모로 자연스럽게 시골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그게 불편하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