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넘어 떠난 유학에서,
삶은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유학을 떠나오기 전, 나의 건강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지냈고 특별히 불편한 곳이 없었다. 오십이 갓 넘은 나는 내가 유학을 떠나면서 다른 건 몰라도 건강상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 학기를 지내는 동안 타국생활에 적응하고 학업에 몰두하면서 조금씩 어깨에 이상을 느꼈다. 나는 전날 무리하게 책상에 오래 앉아있었던 것을 후회하였고 운동을 게을리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반성했다. 요가매트와 폼롤러를 구입하고 몸을 조금씩 운동을 시작하였다. 진통제와 근육통약을 구입해서 먹으면서 몸을 잘 달래 보았다. 하지만 그 작은 통증은 쉽사리 나를 떠나지 않았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힘든 것은 아니었다. 때론 너무 아프다가도 어느 날은 운동한 보람을 느낄 만큼 회복되었다. 가끔씩 잠을 이를 수 없을 만큼 고통이 찾아오곤 했는데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버틸 만했나 보다.
한 학기를 마치고 내가 그동안 그렇게도 고대했던 방학여행을 시작하였다. 밀란은 너무 더웠고 8월 초에 떠난 북유럽은 쾌청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불편한 어깨를 의식해서 되도록 짐을 줄였다. 그렇게 홀로 떠난 스톡홀름과 헬싱키에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시간들과 마주했다. 과거 여행에서의 나는 정말 유난히도 많이 걷은 사람이었다. 가이드 없이 홀로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마음 가는 대로 걷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여행을 했다. 스톡홀름까지 별 탈이 없던 나는 헬싱키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입병이 도졌다. 혀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것 같이 아팠다. 헬싱키 호텔에 도착해서 약을 먹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혀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어깨가 아픈지도 몰랐다. 다음날 약국을 찾아가 가장 강한 진통제를 사 와서 호텔에서 하루종일 잠을 잤다. 입속이 아프니 무엇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때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 연어수프였다. 몸이 조금 회복되어 바닷가 쪽을 걸었는데 야외 마켓 같은 것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나는 따끈한 연어수프에 눈길에 갔다. 뽀얀 국물에 감자와 당근, 연어만으로 만들어진 수프였다. 그것을 먹고 기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에도 몸이 좋지 않으면 연어를 사다가 수프를 만들어 먹곤 하였다. 그래도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면서 몸이 많이 좋아져 예전처럼 꾸준히 운동하면 곧 회복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밀란으로 돌아온 나는 푹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열흘 뒤면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함께 여행을 한다. 그토록 고대하던 시칠리 여행이다. 나는 어깨가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워낙 더운 여름이라 낮시간은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오후 늦게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산꼭대기에 예전에 수도원으로 쓰던 곳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 숙소였는데 광활한 시칠리의 산마루를 해 질 녘 30-40분을 달려 올라가던 금빛 찬란한 순간들을 잊을 수 없다. 열흘간의 여행을 마치고 딸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군입대를 앞둔 아들은 기차로 유럽 몇 곳을 여행하기로 하였다.
나는 다시 밀란으로 돌아와 새 학기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어깨의 고통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하였다. 못 견디겠냐고 묻는다면 견딜 수 있다고 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도 견딜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9월과 10월 워크숍 수업이 끝나면 11월부터 인턴쉽을 해야 한다. 나는 이미 내가 원하는 회사에 지원해서 인터뷰까지 마치고 그곳에서 일을 하기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11월 초부터 1월까지 이곳에서 실무경험을 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만약 계속 상태가 악화된다면……’
버틸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비로소 비행기의 몸을 실었다. 2주 정도 치료받고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적절한 병원을 찾고 치료방법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는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았고 수술 이후로 실밥을 제거할 때까지 비행기에 오를 수 없어 2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결국 25일간 한국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았다. 몸이 회복되는 동안 나는 학교 수업에 줌으로 참여하였다. 같은 그룹인 친구들과 화상으로 연락하면서 과제를 따라가기 위해 애를 썼다.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도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밀란으로 떠나는 날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친구들에게 내가 스케치한 것들을 보내고 나의 생각을 공유하였다. 아마 시차로 좀 늦게 메시지를 확인하겠지만 내가 밀란에 도착했을 때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업데이트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나의 어깨통증의 원인은 라운드 숄더, 즉 안쪽으로 말려있는 형태의 어깨에서 기인했다. 살면서 수 차례 들어왔던 어깨를 펴야 한다는 소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단지 가동범위의 문제라고 치부했었다. 어릴 때는 괜찮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좋지 못한 자세가 계속 굳어지면 그것이 그대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굽어지게 된다. 관절은 활동에 필요한 공간을 점점 더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관절, 근육이 서로 부딪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염증이 생기고 유착이 일어나고 거기서 통증이 유발된다. 어깨를 펴고 팔의 가동범위를 늘리는 운동은 고통스럽다. 나의 취약지구인 고관절 역시 마찬가지다. 딱딱하게 굳은 관절을 스트레칭하면 근육들이 아우성을 한다.
나는 그 고통을 아름다운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움츠려있던 몸을 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비명의 순간들이 있다. 악 소리가 나도록 힘든 순간을 버티다 보면 오는 새 몸은 부드러워지고 온몸의 피가 시원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즐거움은 반드시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이번에도 여실히 깨닫는다.
"고통이 없으면 즐거움도 없다."
거짓 편안함에 속지 않고 매 순간 찾아올 삶의 아름다운 고통들과 마주하자. 거기에 반드시 즐거움이 따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