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변신"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어느 날 아침, 주인공 그레고르가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깨달았다.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그였다. 외판사원인 그는 가족을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고 부모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참을 수 없는 사장을 견디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업실패 후 집에서 신문이나 읽으며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점점 체중이 늘어 거동조차 불편하였고, 엄마는 천식환자로 생계를 책임지기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열일곱 살의 여동생 역시 예쁜 옷이나 입고, 어쩌다 집안일을 돕거나 친구들과의 모임에나 다니는 바이올린이 전부인 아이였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던 그레고르였지만 언젠가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배우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자신이 도울 길을 찾고 있었다. 그레고르가 해충으로 변신한 후 가족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는 은행 경비일을, 어머니는 양장점 바느질 일을, 여동생은 상점 점원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족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위해 노예처럼 살았던 그레고르를 외면한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는 더 이상 그들의 가족이 아니며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레고르는 창고처럼 변해가는 그의 방에 갇혀서 홀로 지내야 하는 외로움의 시간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쫓아버려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도 저게 그레고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그토록 저걸 오빠라고 생각해 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우리의 불행이에요. 어떻게 저것이 그레고르 오빠가 될 수 있어요? 저게 진짜 그레고르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 같은 동물과는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집을 나갔을 거예요. 그러면 오빠는 잃었을망정 살아가면서 오빠에 대한 기억은 명예롭게 간직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에게 짐을 지우고, 하숙인을 내쫓고, 나중에는 틀림없이 집을 송두리째 차지하고서 우리를 골목에서 노숙하는 신세로 만들 거예요. 자, 보세요. 아버지!"
늘 오빠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던 여동생이었지만, 오빠가 벌레로 변한 이후에는 그에 대한 연민이나 동정을 찾아볼 수 없었던 여동생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방으로부터 나오는 그레고르에게 사과를 무차별적으로 짚어 던진다 그중 하나가 그레고리의 등에 박히는데 결국 그것이 썩어 그레고리는 죽게 된다. 그레고르가 사망한 뒤 가족들은 모두 결근계를 쓰고 하루를 쉬면서 그동안의 맘고생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나들이를 떠나 새로운 날들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안 그래도 먼 친척분의 치매 증상으로 그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차였다. 카프카의 변신은 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게 했다. 만약 내가 노년에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마치 해충으로 변신한 것 같은 모습으로 어찌 산단 말인가...... 나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만약 나는 치매가 걸린다면 스위스로 가서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할 거라고...
C교수님은 고된 시집살이로 평생을 힘들어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인내로 그 시절을 견뎌내신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에게 치매 증상이 시작되었고, 꽤 오랜 기간을 교수님의 집에 머물며 함께 지내셨다. 치매 증상이 악화되어 더 이상 집에서 돌보는 것이 어려워지자 결국 교수님의 시어머님은 요양병원으로 옮겨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나 불행히도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C교수님의 남편분에게서 치매 초기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은퇴한 남편과 함께 오붓한 노후를 시작할 시점이었다. 스마트하고 세련되셨던 그리고 너무나 점잖고 온유하셨던 남편분은 치매 증상이 점점 악화되면서 매우 폭력적으로 바뀌셨고 C교수님은 남편분과 한 공간에서 생활하기가 두려울 정도가 되었다. 갑자기 한 밤중에 집에서 사라진 남편을 찾아 거리를 헤매기도 하였다. 점점 뇌의 기능이 나빠져서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육체적으로도 쇠약해져서 결국 남편분도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마땅한 병원을 찾는 것도 전쟁이었다. 시설과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병원은 갑이었고 간병인은 상전, 환자 보호자는 그야말로 죄인이었다. 남편분은 점점 기억을 잃어서 그토록 사랑하는 손주들조차 알아보지 못하셨고 밥도 혼자서는 드시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셨다.
"교수님,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어... 그래도 병원에 가면 남편을 볼 수 있잖아. 내일이라도 가면 만날 수 있잖니. 살아있어서 아직 만날 수 있고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죽으면 다시는 볼 수 없잖아"
얼마 전에는 남편분의 생일이었다. 이제 남편분은 생일이 뭔지도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이 착한 교수님은 남편분의 생일에 남편분과 시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다. 역시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신 시어머니는 오히려 남편분보다 정신은 좀 더 나은 편이라고 하셨다. 나는 생각했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걷지도 못하시는 분을 굳이 휠체어에 태워 차로 옮겨 치매인 어머니를 만나게 해 줄 필요가 있을까? 이 교수님은 왜 이렇게 착한 거야....'
그런데 남편분이 휠체어에 타고 시어머니의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엄마..." 하면서 눈물을 터트리셨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치매 어머니와 치매 아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오열하는 장면을 보고 교수님은 한 없는 슬픔을 느꼈다고 하셨다. 나는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도 가슴이 먹먹해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변함없는 일이 있다면 그건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누구도 자신 언제,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걸 선택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두렵기도 하다. 변신을 읽고 나서 나는 치매에 걸린다면 스위스에서 명예롭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이제 부끄럽게 느껴진다. 비록 누가 봐도 초라해 보이는 치매환자지만 그 모습 그대로 아내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존엄이며 명예라고 이야기해 주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