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때론 직장의 담장을 넘고 싶었다.

어디로든 우리는 움직여야 행복하니까

by 김보아

행복한 사무공간은 불가능한 것일까?


A : "점심시간에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데 정말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 :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니 너무 좋아요. 쓸데없이 말 거는 인간들이 없으니 수요일쯤 되면 일주일 업무량을 모두 끝내고 남는 시간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맘껏 봤어요. 계속 재택근무를 하면 좋겠는데... 아 또 출근해야 해요"


나의 주변의 직장인들은 늘 퇴사를 꿈꾸는 듯 보인다. 파란 가을 하늘을 보면서 왜 A는 퇴사를 떠올렸을까? 오늘 내가 하늘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을 떠올려보았다. 파란 가을 하늘에 몽글몽글 떠 있던 구름이 무표정한 내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파란 가을 하늘은, 마치 신이 나에게 준 생각지도 못한 깜짝 선물 같았다. 나는 그 기분을 놓칠세라 찰칵찰칵 두 손을 하늘로 뻗어 거저 받은 선물을 핸드폰에 담았다. 그 행복감에 길을 가는 내내 나의 마음은 둥실거렸다. A는 파란 가을 하늘을 보고 퇴사를 떠올렸다. 자신과 상관없는 파란 하늘은 오히려 그녀에게 상실감만을 안겨주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결국 삶이란 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겠냐고...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꽤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터는 우리 삶의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무공간에서 우리는 행복할 수 없을까?


몇 년 전 구글에서 일하는 지인 덕분에 구글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했었다. 샌프란시스코 캠퍼스라고 불리는 구글 본사는 걸어서 모든 곳을 다 돌아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었다. 우리는 방문객에게 허락된 직원식당과 몇몇 연구소 동의 로비, 야외 라운지, 기프트 샾(gift shop) 등을 돌아보았다.


약간 이른 점심시간에 직원식당에 들어간 우리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이 풍부하게 준비된 식당에 눈이 동그레 졌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무렵 식사를 마친 우리는 식당 밖으로 나왔는데, 흩어진 연구동에서 모여든 직원들의 자전거 무더기를 보고 한 번 깜짝 놀랐다. 수많은 자전거들이 만들고 있는 형형색색의 원색들은 다양함 속에서도 여전히 선명하게 개개인이 살아있음을 대변하는 듯 보였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전거 위에 올라앉더니 마음껏 주변을 달렸고 우리는 가볍게 차를 마시며 그곳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세계 각국의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구글 본사 식당 ©boah
방문객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의 로비, 놀이와 휴게시설은 늘 업무공간과 연계되어 있다 ©boah
편안하고 소박한 가구들 ©boah
독립된 업무공간들 사이에 자리한 휴게공간 ©boah
좌판의 높이가 낮은 편안한 휴게의자들 ©boah
건물 외부에 흔하게 마련되어 있는 휴게공간들 ©boah
자연이 가까운 일터라면... ©boah


구글 본사 식당 앞 직원들이 이용하는 색색의 자전거들,누구나 자전거를 타고 캠퍼스를 달려볼 수 있다 ©boah
자전거가 주는 즐거움, 자전거가 주는 여유 ©boah




1.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유,


평일 낮에 자유롭게 우리에게 시간을 할애하는 지인분에게 오늘 반차라도 내셨냐고 물었다. 그분이 한국에서 꽤 오래 직장생활을 하셨음에도 반차라는 단어가 이미 어색한 단어가 되었음이 느껴졌다. 출퇴근 자유제이므로 반차 개념은 당연히 무의미해 보였다. 그분은 우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화상 미팅에 참여한다고 하였다. 미팅에 참여하는 몇몇은 사무실의 미팅룸에 모이고 나머지는 각자의 형편에 따른 장소에서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퇴근시간만 되면 일을 던지던 예전 직장의 나의 사수가 떠올랐다. 내가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를 퇴근시간 5분 전에도 알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사용하는 시간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것만큼 나를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있을까?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어느새 입사를 꿈꿨던 나도 퇴사를 꿈꿨던 것 같다. 나에게 만약 시간에 대한 자유를 주었다면 나는 방종했을까? 업무시간에 대한 자유가 주어지면 주어진 업무량은 명확해질 것이다. 그러나 업무시간에 대한 할당량이 강조되면 업무량은 무의미해진다.





2. 원하는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면,


자신의 업무시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는 곧 공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공간을 통제할 수 없다면 시간 역시 통제할 수 없다는 의미와도 맞닿아있다. 그 두 가지가 가능했다면 A는 파란 가을 하늘에 마음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B 역시 재택근무가 끝나고 회사로 복귀하기 전 주말 저녁이 숨 막히지는 않을 것 같다. 늘 같은 공간,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들과 지내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우리의 사고와 감정의 커다란 부분을 스스로 마비시켜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끝없이 변화해 가는 존재이다. 그것이 사람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따라서 사람이 모여 함께 일하는 조직 역시 늘 변화한다. 그런데 그 조직을 담는 공간은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행동 특성을 담기에 유연하지 못하다. 디자이너들은 공간을 구성하는 고정된 요소, 주로 벽면에 가변성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공간의 벽면을 자유자재로 이동시키는 계획은 그 다지 효과적이 않았다. 벽면과 함께 같이 유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가구 역시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고 가변 벽을 조성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 대비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또한 오피스 랜드스케이프의 개념을 도입해서 완전히 개방된 공간에 자유롭게 가구를 배치를 하기도 하였으나 소음문제와 사적 공간에서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업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Layout of Bertelsmann »Buch und Ton« Office Landscape, 1961 via google image


공간에 유연성을 주는 것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면 사람을 움직이게 함으로 공간에 대한 유연성을 주는 것은 어떨까?

얼마 전에, IT회사의 사무실 내장공사를 마쳤다. 이 IT 회사의 조직은 경영지원실을 제외하고 연구소, 디지털 컨설팅팀, 개인화컨설팅팀으로 구성된다. 각각의 팀에게는 독립된 공간이 주어졌지만 전체 공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라운지 공간에도 미팅 공간과 업무 테이블을 배치해서 어디서든 업무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그 공간에서는 휴식과 업무, 미팅과 회의가 동시에 가능하다. 하루 종일 라운지에 머물러 업무를 봐도 무방하다. 창가에 놓인 낮은 의자에 앉아 느슨한 작업을 해도 되고 창가의 긴 테이블에 앉으면 자신이 사무실에 있다는 것도 잊은 체 자신의 업무에 빠져들 수도 있을 것이다. 독립된 업무가 필요할 시에는 언제든지 분리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업무공간의 영역을 한정하지 않으므로 직원들에게 공간 사용에 유연성을 허락하고 직원들은 자신의 고정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경직된 부담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일 할 수 있다.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생각보다 일터를 활기 있게 만든다.


사내 라운지에 마련된 미팅 공간이다. 미팅, 휴게, 개인 업무 모두 가능하다(최근에 준공한 오피스) ©boah
라운지에 마련된 화이트보드, 동료와 휴식을 취하다가 언제든지 업무 관련 아이디어 회의가 가능하다(최근에 준공한 오피스) ©boah


휴게공간 속 미팅 공간, 업무와 휴게의 경계가 없다.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하면 된다 (최근에 준공한 오피스)©boah
파란 하늘을 보면서 작업을 하고 싶으면 라운지 창가로 이동하면 된다.(최근에 준공한 오피스) ©boah
낮은 의자가 주는 안락함. (최근에 준공한 오피스)©boah
독립된 실로 만들어진 회의실, 좀 더 긴밀한 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최근에 준공한 오피스) ©boah




3. 원하는 프로젝트를 원하는 사람들과,


구글인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의 자유는 그렇게 만만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글은 프로젝트가 발생하면 팀의 구성원이 만들어지는데 철저히 개인의 능력에 따르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팀이 고정적이어서 그 팀에 할당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의사를 보내면 그 팀의 구성원의 동의가 있어야 참여가 가능하다. 업무능력뿐만 아니라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 팀 내 기여도, 책임감 등등 모든 것을 고려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잘못하면 아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 날의 짧은 대화로 구글의 업무 시스템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팀워크도 원활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회사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적당히 팀에 묻혀서 흘러가려는 태도는 용납될 수 없는 조직이었다. 만약 성과 없이 지나가는 기간이 길어지면 바로 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자유의 결과는 기업의 이윤창출이라는 당연한 목적을 향한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의 사무공간에 움직임이 있다면,


블레즈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와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너무나도 불행하기에 어떤 일을 즐길 때에도 혹시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조건하에서만 즐긴다. 실제로 숱한 일들이 그렇게 될 수 있고 또 수시로 그렇게 된다. 그 반대의 불행을 걱정하지 않고 행복을 즐기는 비결을 발견한 사람은 요점을 찾을 셈이다. 그것은 계속적인 움직임이다."


파스칼은 인간은 불행한 존재이지만 계속적인 움직임은 행복을 즐기는 비결이라고 하였다. 파스칼이 이야기한 "움직임"의 의미는 매우 모호하기도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아주 확실해지기도 했다. 때로는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순간 마음을 달래서 몸을 일으켜 움직여보면 의외로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었다. 살아있어야 움직일 수 있지만 움직임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움직임이 없는 절망 속에 자신을 오랜 시간 방치하게 되면 고통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뎌져 있다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푸르른 가을 하늘에 비참하게 투영되는 것이다.


직장인에게 있어 사무공간은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므로 그 공간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속적인 움직임은 시간, 공간, 사람, 일 등의 영역에서 고려될 수 있으며 움직임이 허락하는 자유라는 기쁨과 자긍심은 업무수행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늘 물리적인 환경조건과 가지고 있는 자원의 한계라는 어려운 벽과 마주 하지만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의 대한 고민과 인간 본연의 가치에 대한 탐구가 함께 간다면 조금씩 더 나은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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