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미용실

by 김보아

작은 프로젝트 하나,


오늘 함께 일하는 파트너 현장소장님과 미팅이 있었다. 워낙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분이라 늘 고맙고 믿음직하다. 서로 바쁘다 보니 함께 일을 하고 있지만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밥 한 번 같이 먹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사람 사는 게 그런 게 아닌데 싶었다. 곧 시작하게 될 프로젝트를 전에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싶었다. 또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하면서 전하지 못했던 아쉬움이나 고충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돼서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된다.


이야기가 끝나 갈 무렵 얼마 전에 그분이 개인적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 준공사진을 보여주셨다. 큰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워낙 예전부터 알던 분들이라 거절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얼마나 작은 공간이기에? 궁금한 마음에 폰을 뺏어 들고 준공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미용실이라고요?





미용실에 대한 기억


내가 처음 갔던 미용실이 어디였더라...... 아주 어렸을 때는 기억이 안 나고 중학교 이후에는 동네 상가에 있는 미용실을 다녔던 것 같다. 미용실 원장님이 계시고 그 밑에서 일하는 헤어 디자이너 몇 분 그리고 스테프들이 있었다. 미용실을 바꿔도 늘 그 위계는 존재했던 것 같다. 원장님 아래 디자이너, 스테프 아니면 원장님과 스테프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미용실에는 머리를 하는 미용의자가 줄줄이 필요하고 샴푸대도 여럿 있었다. 요즘 다니는 미용실은 말할 것도 없다. 일하는 직원 분만 수 십 명이니 미용실 사이즈는 말할 것도 없다. 미용의자뿐만 아니라 중화하는 테이블, 대기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파 그리고 일열로 죽 늘어선 샴푸대에는 늘 붐빈다. 미용실은 복잡한 곳이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좀 색다른 미용실을 경험을 한 건 밴쿠버에 살 때였다. 어느 미용실에 가야 할지 몰라 당연히 동생이 다니는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찾아갔다.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일본인이 하는 미용실이었다. 다운타운에 공짜로 주차할 곳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용실 앞에 차를 세우고 기계에 동전을 넣고 두근두근 샾으로 들어갔다. 작고 아담한 샾에는 미용의자가 단 두 개 있었고 샴푸대로 하나였다. 내 동생의 담당이자 나의 담당이 된 헤어 디자이너 "쿄코"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쿄코도 밴쿠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외국인이었고 나도 같은 처지였지에 둘의 어색한 영어는 오히려 편안했다. 쿄코는 다른 파트너 디자이너와 둘이 동업을 하고 있었고 그 외의 직원은 없었다. 헤어 스타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마치자 쿄코는 직접 나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머리를 잘라 주었다. 손수 드라이까지 다 마쳤다. 팁까지 우리나라 돈으로 한 오만 원 정도의 돈을 지불한 것 같다.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쿄코에게 머리를 했다. 내가 예약한 시간에 다른 손님은 없었고 파트너의 손님이 없는 경우도 있어서 매우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비스를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올해 초 코로나 영향으로 꽤 오랫동안 미용실을 가지 못했었다. 노령의 부모님은 아예 미용실을 못 가고 계셨다. 5월 어버이날에 우리집 현관에 들어서시는 부모님은 두 분 다 장발 머리로 변신을 한 체 입장하셨다. 식사를 마치고 다과를 나누다 나는 문득 두 분의 머리를 잘라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집 둘째 녀석이 워낙 성격이 독특해서 미용실만 가면 울어대던 탓에 꽤 클 때까지 내가 머리를 잘라 주었던 고된 기억이 왜곡된 자신감으로 재발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의자를 놓고 보자기로 가운을 대신했다. 그리고 나는 과감한 가위질을 시작했다. 사실 전문가가 본다면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였다. 하지만 두 분 다 너무 기뻐하셨다. 조금 과장해서 진짜 십 년은 젊어 보였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두 분의 머리를 잘라드렸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내가 머리를 잘라드리는 것이 맘이 편할 것 같다.





작지만 큰 미용실


소장님의 사진을 보니, 미용의자가 2개, 그리고 샴푸대가 1개 있다. 그리고 작은 소파 하나. 미용사는 원장님 한 분이라고 한다. 한두 사람만을 위한 작은 미용실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니 예전에 밴쿠버에서 경험했던 미용실이 떠올랐다. 나는 사진 속 미용실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느낌은 알 것 같았다. 사실 이 미용실은 꽤 작아 보이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작은 미용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해진 시간 동안에 그 공간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만약 같은 조건이라면 이렇게 작은 미용실을 다시 이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같은 때에는 더욱더 그렇다. 부모님도 안심하고 이용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올해 우리가 겪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도 한다.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덕에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공간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소장님 말대로 그저 소소한 프로젝트일지 모르는, 그 사진 속 작은 미용실이, 한 사람 고객에게는 커다란 만족을 주는 공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작은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객과의 친밀함, 그 독특한 매력이 이 공간의 가치를 크게 만드는 비밀은 아닐까?




작은 미용실 사례, 미용의자와 샴푸대, 작은 소파로 이루어진 작은 미용실 (images via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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