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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Dec 01. 2020

면이 고르지 않은 것이 늘 문제다.

 


면(surface) 만들기


호기심으로 시작한 가구 만들기에서 나의 육체적 노동을 가장 필요로 했던 부분은 면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면을 만든다는 건 나무의 거친 면을 다듬어 나무 패널의 면이 서로 수평, 수직을 이루도록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제재소에서 절단되어 공방 안으로 들어온 백골의 나무의 표면은 거칠고 못생겼다. 처음에 수압 대패라는 기계 위에 나무 패널을 올리고 손을 누르고 밀어내면서 울퉁불퉁한 면을 평평하게 만든다. 작은 패널의 경우는 할 만 하지만 긴 패널을 작업해야 할 경우에는 무거운 패널을 밀고 들어 다시 옮기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노동 지옥을 경험해야 한다. 한쪽 면이 평평해지면 자동 대패 위에 그 반대면을 위로해서 올린다. 그러면 수압 대패로 평평해진 면과 평행이 되게 윗면이 깎여 나간다. 그 작업이 끝나면 그 면과 수직으로 만나는 면을 다시 수압 대패에 올려서 면을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이 지나가면 패널을 재단하고 접합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설계만 꼼꼼히 했다면 별 탈 없이 진행된다. 그런데 만약 면을 잘못 만들면 면과 면이 만나는 접선에 아귀가 맞지 않게 된고 한쪽 면이 어긋나면 줄줄이 면이 맞지 않아 제대로 된 가구의 형태를 갖추기 어렵게 된다.

 

대패질로 매끈해진 나무 패널 ©boah



공간의 면


얼마 전 현장에 감리를 나갔을 때였다. 신축건물에 입주하는 오피스 공사였다. 기존 건물은 한 층이 8개의 경량 칸막이 벽으로 분할되어있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칸막이벽을 철거하고 공간을 다시 나누어 신설 벽체를 조성해야 했다. 실과 실 사이의 벽체를 철거하니 각 공간의 천정면의 높이가 모두 제각각이었다. 공간을 나누는 벽체의 높이를 골조까지 올리고 각 공간의 천정을 조성하다 보니 그 높이가 정확히 맞지 않았는데 심한 곳은 그 단차가 매우 심했다. 우리는 천정내부의 구조물을 풀어 일일이 높이를 맞추고 텍스를 다시 고정하는 작업으로 천정의 높이를 고르게 했다. 이 내용을 현장을 체크하면서 미리 확인하지 않았다면 추후 인건비 상승이라는 예상하지 못하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현장은 바닥의 레벨도 전혀 고르지가 않았다. 쉽게 이야기하면 건축에서 디럭스 타일로 마감한 바닥면이 경사가 져 있었다. 바닥면이 수평이 맞지 않으면 그 위에 맞닿아 조성되는 벽체와 면이 맞지 않는다. 바닥에 걸레받이를 취부 해야 하는 경우에도 시작점은 잘 맞다가 맞은편 벽과 만나는 부분까지 이어지면 바닥의 높이가 맞지 않아 바닥보다 걸레받이가 위로 올라가서 붙어있게 된다. 이럴 경우 바닥면을 모두 셀프 레벨링 과정을 거쳐 평평하게 해야 벽과 만나는 면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는 비용이 발생된다.


타일공사나 도장공사, 도배공사 모두 면의 레벨을 맞추는 것이 모든 공사의 기초가 된다. 타일을 붙이는 면이 고르지 않으면 타일 취부가 깔끔하게 될 리가 없다. 미장으로 면을 잡기가 어려울 만큼 벽면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결국 목공으로 면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도장공사에도 퍼티(putty)라는 공정을 거쳐 도장하기 전에 면을 잡는 작업을 한다. 도배도 마찬가지다. 도배지 안에 하는 초배 작업(현장 용어로 후크친다고 한다)은 울퉁불퉁한 벽면에 벽지를 띄워 붙여 면을 잡아주는 작업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현장점검 시에 모든 공정의 흐름을 염두에 두고 현장을 구성하는 면을 살핀다. 면이 잘 잡혀있는지 수평과 수직은 잘 맞는지 만약 면이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풀어갈 건지 고민이 시작된다. 면을 만드는 작업은 모든 공정의 시작이고 그 과정은 길고 지루한 여정이다. 숨겨진 작업이지만 결코 소외되어서는 안 되는 시공과정의 주연(main character)이다. 그 과정의 성실함과 정확함이 없이는 마지막 최종 마감재가 빛을 발할 수 없다. 잘 만들어진 면은 색상을 돋보이게 하고 질감을 살려낸다. 그리고 그 면에 떨어지는 빛의 파장을 의도한 대로 공간 속으로 흘려보낸다.


두 공간 사이의 칸막이 벽을 철거해보니 두 공간의 천정의 높이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boah
왼쪽으로 갈 수록 낮아지는 바닥면, 벽체에 수평 먹줄을 놓아보면 보인다. ©boah
벽체의 면이 휘어져 있어 걸레받이가 떠 있다. ©boah






작업이 주는 위로


오늘 드디어 공방에서 재단한 나무 판재를 조립하였다. 이렇게 기쁜 순간을 맞이하게 하려고 지난주 내내 나의 대패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아직 몇 가지 조립을 더 해야 하고 사포질과 마감 오일 페인트 작업이 남아있지만 마치 다 끝난냥 마음이 상쾌해졌다. 그토록 거칠고 험악했던 나무의 표면이 한없이 부드럽고 보송보송해져 있다. 손길이 닿을 때마다 나무의 표면이 주는 따스함에 자꾸 녀석을 매만지게 된다. 오차의 범위까지 고려해서 절단한 나무 판재의 면과 면은 꼭 맞게 접합되었다. 긴 시간 어르고 매만져 하나의 실체를 구현해 가는 작업은 이토록 마음을 찌릿하게 한다. 어쩌면 늘 면이 고르지 않아 속을 썩이는 건 사람의 마음인지 모른다. 때로 어긋나고 틀어져 길을 잃어버린 마음이 이렇게 사물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거칠어진 내 마음이 보드라운 나무를 매만지며 잔잔해진다. 이 마음으로 다시 세상과 맞닿아 본다.


조립하기전 타공을 마친 나무들.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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