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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Dec 06. 2021

뻘 짓이 필요한 시간,

"재능과 타고난 능력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라! 타고난 재능이 거의 없이도 위대해진 여러 사람들의 이름을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위대한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천재'가 되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니체 저)


 


0.1mm의 의미

P소목장님께 대패질을 처음 배웠을 때 나는 절망을 느꼈다. 대팻날을 숫돌에 가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천신만고 끝에 연마를 마치고 대팻집에 대팻날을 끼우는 작업에 봉착했을 때였다. 어미날을 망치로 때려 대팻집 밑면에 대팻날이 0.1mm가 나오도록 해야 했다.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팻집을 뒤집어 눈대중으로 0.1mm를 맞추셨다. 날이 너무 앞으로 나와있으면 나무를 너무 깊이 파먹어서 대패질이 잘 되지 않고 대팻날이 대팻집에 너무 들어가 있어도 나무가 잘 깎이지 않는다. 0.1mm는 매우 중요한 숫자로 내게 나가 왔다. 


내가 학생 때, 제도를 처음 배울 때는 제도대에 종이를 마스킹 테이프로 붙이고 삼각자와 제도대에 붙어있는 가로자를 휘저어 가며 선을 그렸다. 선긋기는 제도의 가장 기본이었다. 0.5mm, 0.3mm, 0.2mm, 0.1mm 등의 선으로 공간의 요소를 표현하므로 정확한 선 굵기의 표현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실내공간의 도면은 1:100 또는 1;50, 1:30 등으로 축소해서 그리기 때문에 도면에서의 작은 오차는 실제 현장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정확한 치수 표현을 위해서 수많은 시간 선긋기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대부분 캐드를 이용해 도면을 그린다. 컴퓨터로 정확히 설정된 선의 굵기는 오차 없이 출력이 된다. 내가 실무를 처음 시작했을 때 회사에서 캐드가 상용화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좋은 인사고과를 위해 일요일에 치러지던 캐드 시험을 보러 휴일에 인상을 쓰며 회사에 나갔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컴퓨터로 자로 잰듯한 작업에 길들여져 있는 나에게 망치를 이용한  탕탕법은 기묘하고도 아른거리는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끌을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숫돌 위에 끌을 갈기 위해서는 끌을 고정하는 도구가 필요하다. 아래에 롤러가 달려 있어서 숫돌 위에 놓고 날을 갈기 편리하게 되어 있다. 문제는 연마되어야 할 끌의 면과 숯돌의 면을 맞추는 일이었다. 끌이 숯돌과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끌면이 제대로 연마되지 않고 끌 작업이 어려워진다. 이 작업에서도 망치 탕탕법이 사용되었다. 숫돌에 끌을 문질러 보고 깎인 면을 확인하면서 면을 맞춰가는 것이다. 나는 이 클래스에서 나만 어려워하는 것 같아 소외감을 느꼈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숫돌과 대패 그리고 끌을 챙겨 와 토요일 오후를 거실 바닥에서 씨름을 했다. 가족들이 휴일 오후에 칼을 갈고 있는 나의 살벌한 장면을 목격하고는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을 짓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날 나는 결국 실패했다. 나는 칼을 가는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씁쓸한 생각에 이제 막 시작한 이 수업을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칼 가는 재능은 누가 가지고 태어나는 걸까?


끌을 연마할 준비!!! ©boah


"커다란 전체를 만드는 일을 감해하기 전에, 우선 부분을 완전히 만드는 것을 배우는 숙련된 장인의 성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부분을 완성하기 위하여 시간을 부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혹시키는 전체의 효과보다 작은 것, 지엽적인 것을 잘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니체 저)





작은 것들에 즐거움을 느끼는가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천재를 한낱 기적으로 치부함으로써 우리와는 먼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닌 내가 천재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를 자위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허영심과 자기애가 이러한 천재 예찬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독서모임에서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니체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아무래도 천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냐는 의견이었다. "천재"하면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재능의 소유자들. 그들의 능력의 크고 위대함은 확연하다. 그런데 분명한 건 그들이 쏟은 무수한 성실의 시간들이고 나는 그런 시간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시간과 마주할 용기와 노력의 부족을 태생의 다름으로 쉽게 정리해 버리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선생님의 도구들을 보며 기가 질렸다. 그 길은 너무 멀고 험해 보였다. 니체는 이야기한다. "그들은 현혹시키는 전체의 효과보다 작은 것, 지엽적인 것을 잘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선생님은 내가 끌을 연마할 때마다 유심히 보시고 교정해 주신다. 솔직히 같은 말을 여러 번 하셨다. 그 말을 알아듣고 내 것이 돼서 나 스스로 깨닫는데 걸렸던 긴 시간 동안 이상하게 짜증이 없으셨다. 아마 그도 그러셨을지 모른다. 수많은 시간의 시행착오가 있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의 뻘 짓을 나무라지 않으시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끌을 연마하는 방법을 조금 알 것 같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다. 빨리 끌질을 해서 끌 구멍을 내고 촉을 만들어 가구의 짜임을 완성하고 싶지만 끌을 연마하고 촉을 만들기 위해 톱질을 하는 작은 작업의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는 한 그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도면을 완성할 때도 같은 경험을 한다. 수많은 선들로 이루어져 있는 도면의 표현이 아주 작은 것까지 촘촘히 정성껏 이루어졌을 때 출력된 종이는 빛이 난다.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도 더욱 원활해진다. 대충 뭉개고 생략하는 이유는 그 작은 것을 표현하는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성실성, 손으로 하는 작업의 켜켜이 쌓인 성실성 없이 그냥 만들어지는 천재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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