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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더군 Jun 25. 2021

넥타이?크라바트 Cravate?

#여행의인문#패션 #크로아티아




오늘의 이야기는 넥타이입니다.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시인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A well-tied tie is the first serious step in life / 잘 묶은 넥타이는 인생의 첫걸음, 그는 넥타이를 사랑했고 애용했습니다. 지금도 넥타이는 신사라면 당연히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죠. 요즘은 여성분들도 넥타이를 멋지게 활용하십니다. 



삼위일체 매듭 / Trinity knot - 구글 이미지 





남자에겐 성년의 증거이며,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인 넥타이, 사실 넥타이는 멀리는 로마시대부터 그리고 가깝게는 발칸 유럽의 크로아티아에서 현대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넥타이를 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로마 시대부터로, 원래 넥타이는 로마 병사들이 포칼 focale로 불리는 두꺼운 양모를 목에 감았던 것에서 유래했는데, 일종의 스카프였으며, 추울 때나 전투 시 목을 보호하는 역할 등 다양하게 쓰였다고 한다 


포칼 - Marc Sanders youtube 



Karl von Piloty / The Death of Caesar(카이사르의 죽음) - 구글 이미지 


포칼은 로마시대 카이사르(Caesar)가 공화론자들에게 암살당한 후 원로원들이 카이사르가 상처들을 보고 공포에 질려 목을 보호하기 위해 마로 만든 튼튼한 천을 둘렀다고 하는데, 그것이 셔츠에 달린 칼라의 원형이라는 설이 있다. 


시간이 흘러 넥타이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본격적으로 유행이 된 것은 17세기 프랑스의 궁정으로 당시 유럽 최고의 왕 태양왕 루이 14세는 1683년 중부 유럽에서 벌어진 역사적인 전쟁이었던 비엔나 공방전의 승리와 새롭게 베르사유 궁전을 만든 것을 기념하여 궁전에서 승전 행사 및 각국 군인 및 용병들의 퍼레이드를 열게 합니다. 



크로아티아 체크 문양 - 구글 이미지 


지금도 크로아티아의 남성들은 건장하고 운동에 능한 사람들이며, 중세에도 크로아티아 용병은 스위스 용병들과 더불어 유럽 최고의 용병으로 유명했는데, 크로아티아 용병들은 민족의 상징인 흰색과 적색의 스트라이프 문양이 있는 풍성한 스카프를 하고 루이 14세 앞에서 행진했다고 한다. 그들의 화려한 스카프 문양은 루이 14세의 시선을 끌었고 루이 14세는 신하에게 스카프를 물어봤지만 잘못 알아들은 신하는 크로아티아 용병을 뜻하는 크라바트(Cravate)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에선 크로아티아인을 크로아뜨라고 불렀고 결국 넥타이는 원래 이름과 다른 크라바트(Cravate)로 불리게 된다. 이후로 스카프는 유럽의 최신 유행의 시작이었던 프랑스 궁정에서 유행하였고 부르주아들은 궁정 파티의 유행을 더 널리 전 세계로 알렸는데, 당시의 넥타이는 현대와는 다르게 크고 풍성하게 스카프처럼 목을 감싸는 스타일이었다. 



보더 Say 크로아티아 체크 문양 

크로아티아는 선명한 흰색과 붉은색의 체크 문양을 민족의 문양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10세기 크로아티아 왕국의 왕 스테판 드르지슬라브 Stephen Držislav는 달마티아에서 베네체아와 전쟁 중 포로가 되는데, 스테판이 체스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베네치아의 총독은 체스 게임을 제안하고 세 번의 게임에 이기면 자유를 주며, 이기지 못하면 완벽한 항복을 제안한다. 결국 스테판은 세 번의 체스를 승리하고 베네치아에게 달마티아의 영유권을 가져왔다는 전설이 있다. 





조지 브루멜 George Brummell / 댄디즘과 현대 정장의 아버지 - 구글 이미지 



넥타이 유행의 시작은 패션의 나라인 프랑스지만. 현대적인 스타일의 넥타이는 신사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영국에서 시작된다.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 후 왕들과 귀족이 학살당하며, 잠시 잊혔지만 넥타이는 영국에서 가장 옷을 잘 입었던 멋쟁이 조지 브루멜의 선택을 받는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성공하고 삶의 질이 올라감으로써 프랑스풍의 패션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는데, 심플한 것을 선호하는 영국의 패션에 자신의 스타일을 입힌 조지 브루멜은 슈트, 드레스 셔츠, 긴바지, 구두, 넥타이를 남성 정장의 기본 요소로 정의하고는, 여러 종류의 넥타이 매듭을 만들고 영국에 유행시킨다. 



댄디즘 : 댄디즘(dandyism)은 19세기 초반에 영국, 프랑스 상류층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조이다. 무게, 깊이를 고려하지 않고, 세련된 멋, 치장을 주로 고려함으로써 일반 계층의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태도, 사조를 나타낸다. 이런 성향은 프랑스 문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예술가 자존심을 보여주는 정신적인 귀족주의'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문학 작품에서는 이러한 뜻을 자주 이용한다. - 위키백과 




윈저공으로서 넥타이 패션은 완성되었다고들 합니다. 윈저공 - 구글 이미지 



조지 브루멜 이후에 현대의 넥타이를 패션으로 정착시킨 사람은 윈저공이었다. 168cm의 단신이었지만 세기의 멋쟁이이자 결혼을 위해, 영국의 왕위를 버렸던 윈저공은 다시 넥타이를 세계에 유행시킨다. 윈저공이 애용했던 윈저 매듭(Windsor knot)은 포인 핸드 노트(Four-in-hand)와 더불어 가장 사랑받는 넥타이를 매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넥타이 매듭 법입니다.  







완벽한 윈저 매듭을 한  007 - 구글 이미지 


"The Secret to Tying a Perfect Windsor Knot" 에스콰이어에서 소개하는 완벽한 윈저 매듭을 매는 방법 




사실 넥타이와 정장이 직장인의 필수 장비(?)처럼 여겨진 것은 2차 세계대전 후로 J.P 모건 체이스 앤 컴퍼니와 IBM은 직원들에게 유니폼으로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하게 합니다. 특히  J.P 모건은 몸 좋고 잘생긴 색슨계 백인들을 뽑아 상담 창구로 보냈고 꽤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이후 세계적인 대형 회사들이 유니폼을 기본으로 채용하면서 넥타이는 직장인 패션의 기본이 됩니다. 













이렇게 넥타이의 역사를 이야기했습니다만. 한국에서의 넥타이는 조금 다른 측면도 있지요?

직장인...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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