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인문 #고딕#성모숭배#기독교
오늘은 유럽을 이해하는 한 가지 키워드인 고딕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고딕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무언가 소름 끼치는데 아름다운 그림들과,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는 표정의 예수, 하늘을 찌르는 아찔한 고딕 건물, 그리고 중세의 암흑을 상징하는 게 고딕이라고 할만합니다.
현대인에게 고딕의 이미지는 무언가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 그런데 사실 고딕이 공포스럽고 무섭다는 말은 꽤나 억울한 누명으로 고딕 문명은 고트인(라틴어: Gothi)이 만든 게 아니라 로마 멸망 이후 유럽의 주인이었던 프랑크인이 만들었다
고트인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기원한 동부 게르만족의 일파이다. 최초의 거주지가 동부 스웨덴 지역이었던 이들은 1세기경 발트 해안과 비스와 강 유역으로 이동했다. 스칸디나비아에 남은 일파는 기트족으로 불렸고, 남하한 고트족은 슬라브족과 바스타르네인들의 뒤를 따라서 로마 제국의 변경(邊境)에까지 다다라 로마 제국의 일부를 점령하였다. 3세기경에 동 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나뉘었다. - 위키백과
사실 고딕이라는 말은 어원인 고트족과 크게 관련이 없다. 서로마가 고트족과 게르만족에 의해서 멸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딕 양식이라고 불리는 건축과 예술들은 고트족의 것이 아닌 프랑크족의 것이었다. 5세기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유럽의 힘은 북쪽의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랑크 왕국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프랑크인들은 로마보다 우리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독교 신앙을 중심으로 새로운 뛰어난 건축과 예술을 꽃피웠고 뛰어난 건축물들을 만들었지만 아시아에서 온 기마 민족들과 페스트로 세력이 약해졌다.
페스트로 유럽이 신음하면서 가톨릭의 절대적인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자유 무역으로 재산을 만들고 뛰어난 이슬람의 지식을 받아들인 이탈리아의 지식인들은 다시 인간이 중심이었던 로마 시대로 돌아가자며, 르네상스 운동(인본주의)을 시작했고 점점 유럽의 힘은 다시 이탈리아 반도로 돌아온다. 이후 다시 1차 세계대전이 지나서야 유럽의 중심이 다시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새로운 유럽의 중심이 된 이탈리아인들은 르네상스 이전 시대, 프랑크 왕국의 건축양식과 예술을 비하했고 낡은 것으로 치부했는데, 그때 야만인이라는 뜻을 가진 고딕이란 단어를 프랑크 양식에 붙이게 되었다. 하지만 고딕 시대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것 중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위대한 건축 양식을 남기게 된다. 여행자들이 현재 유럽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유명한 성당들과 건축물들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
1309~1377년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납치한 사건, 7명의 교황이 프랑스 왕국의 지배에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교황의 지지를 받고 싶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신의 대리인이지만 힘이 없던 교황을 이용한 유럽 세력들의 분쟁이었는데, 1377년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이탈리아로 귀국하면서 힘의 균형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이동하였다고 본다.
고딕 양식은 이렇습니다.
고딕 건축은 하늘로 향한 첨단이 첨단이 많고, 성당의 외부에는 흉물스러운 가고일과 성당 내부에는 나무처럼 쭉쭉 뻗은 기둥이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늘로 향하는 높은 첨단은 바벨탑처럼 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의미이며, 가고일은 성당에 오는 나쁜 존재를 막아주며, 실내의 기둥은 프랑크인의 고향인 깊고 어두운 나무의 바다를 뜻합니다. 성당은 하느님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흡족해하시도록 십자가 모양으로 건축되었으며, 뾰쪽한 첨탑은 돌기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성령과 천사들의 날개 모양으로 보인다.
지식인들의 나라였던 로마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고 문맹자가 다수였던, 프랑크족들과 게르만족들의 교육을 위한 고딕 문화들은 종교적인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 글보다는 여러 가지 종교적인 미술품으로 남겨져있다. 특히 성상과 십자가상을 보면 고딕과 고딕 이전 로마네스크 시대를 확인할 수 있다.
두 십자가의 차이는 확연한데, 지식인들이 많았던 로마네스크 시대에는 시민들이 성경이나 책자들을 읽을 수 있었고, 인간들의 원죄를 안고 죽어가는 예수의 얼굴은 부드럽고 온화하다. 하지만 문맹이 대부분이었던 프랑크족이 살던 고딕 시대에는 너희들의 원죄로 예수가 죽었다는 경고와 죄책감을 주기 위해, 예수의 얼굴은 괴로움에 몸서리치고 있다.
고딕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는 인간에 의해 죽은 존재였고 그를 무서워했고 경외해야 할 존재였다. 그래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예수께 자신의 기도를 전해 달라는 의미로 성모 마리아 숭배 사상이 생기게 되고, 그에 이어 자신의 기도를 예수께 쉽게 전달해 줄 수 있는 수많은 성인들이 인기를 끌며, 그들의 유해가 신자들에 숭상받는 시대가 온다.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 눈에 보이는 성자들의 유해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며 그래서 고딕 시대의 특징은 실제로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으며 기도 드릴수 있는 성상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성인의 유골까지 있으면 최고로 꼽혔다.
유럽에선 간질병의 수호성인, 후두의 수호성인, 화재 수호성인 등 수없이 많은 성인들이 인기를 끌게 되었고 가톨릭에선 14명의 수호성인(Fourteen Holy Helpers)들이 유명하다. 러시아에선 심지어 대륙간 탄도탄 ICBM의 수호성인(성 바바라)도 있을 정도.
고딕 시대는 800년대부터 1400년대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프랑크족의 시대였다. 수많은 건축물과 사상을 남긴 기독교를 만을 위한 시대, 고딕이라는 말로 비하당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고딕의 아름다움을 다시 되살려, 신고딕 건축을 만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