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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더군 Jun 18. 2021

아락, 최초의 증류주 이야기.

여행의 인문







아마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 사람처럼 술을 자주, 빨리 마시는 민족이 많지는 않을껍니다. 어떤 사람들은 치열한 한국 사회를 쓰디쓴 소주 한잔을 털어 넣으며 오늘을 버틴다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술이 달다고 합니다. 저렴한 가격과 적당한 알코올 도수, 맛까지 깔끔한 소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며 가장 한국인과 비슷한 술이라고 할만합니다 



하지만 소주는 한국을 대표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소주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는지 아시나요? 원래 소주는 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소주는 타피오카, 고구마, 감자, 쌀처럼 전분과 당분을 가진 작물 중 그해 가장 저렴한 것들을 재료로 만들어지는데, 연속 증류를 마치면 무색 무미 무취의 95%의 순수한 알코올에 가까운 주정이 만들어지고, 그 주정에 물을 넣어 희석을 하고 이런저런 인공적인 맛을 첨가합니다. 


그런 술을 희석식 소주라고 하는데, 한국인들이 가성비를 좋아하듯이 희석식 소주도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그럴듯해 가성비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고 할만합니다. 






술이라는 특별한 음료는 신들이 사람들에게 선사하였다고 합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에서 “넥타르”라는 음료가 등장하는데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와 더불어 먹는 음료이며 신들에게는 신의 힘을 유지시키는 힘을 주었고 평범한 사람이 마시면 신이 되는 특별한 음료였다고 합니다.  아마 꿀로 만든 술인 미드(Mead)나 과즙으로 만들어진 술이 아닐까라며 후대 사람들은 상상합니다.


미드 인류 최초의 술 - 구글 이미지 


지금도 미드는 칵테일바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는데, 허니비(Honey Bee)라는 술을 주문하면 됩니다. 꿀처럼 달고 부드러운 아주 매력적인 맛이거든요. 아무튼 미드와 같은 역사적으로 오래된 술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꿀이나 과일로 만들어집니다. 


지중해 문명을 이끈 그리스인과 그리스인들을 추앙했던 로마인들은 호메로스가 살던 스미르나(현지명 이즈미르)에서 나오는 포도주를 최고로 생각했지요 중세 초반까지 사람들이 마시는 술은 포도나 다른 과일 혹은 꿀로 만들어진 발효주였습니다. 발효주는 알코올 도수가 20%가 넘으면 효모가 죽어버려 더 독한 술을 만들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천 년 전, 주류사(?)에 있어서 가장 큰 발전이 아랍 지역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현대적인 증류기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최초의 증류 기술은 바빌론에서 기원전 이천 년 전부터 기록되어있었고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발명가였던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도 증류법을 연구했지만 당시에는 이론과 기술을 정립하지 못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증류법의 수준을 끌어올린 사람들이 바로 아랍 사람들입니다.

 

중세 아랍 증류기의 구조 - 구글 이미지 


유럽을 기독교가 지배하며 로마시대의 뛰어난 기술을 중세의 암흑으로 묻었을 때, 아랍 사람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기술들을 받아들이고 책들 수만 권을 번역하면서 기술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는데 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인 순수한 알코올을 만들어 낸 사람은 9세기의 아랍 사람인 알 킨디(Al Kindi)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류법을 완성시킨 사람은 아랍의 천재인 이븐 시나(Avicenna, 980~1037)였습니다. 


이븐 시나 의학전범 - 구글 이미지


이븐 시나는 역사상 최고의 천재중 한 명이었으며, 르네상스를 이끌어간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와 비견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철학적으로는 스콜라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의학적으로는 17~18세기까지 유럽의 의사들이 배우고 읽었던 의학전범(醫學典範)을 집필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에 집착했던 그는 당시 세계의 모든 학문을 총망라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치유의 서(治癒의 書)를 남겼습니다.


이븐 시나가 만든 증류기는 최초로 식물성 오일을 만들어 냈는데, 증류기로 만들어낸 액체를 아락(Arak, عرق)이라고 불렀는데 뜻은 “땀”입니다. 기본적인 증류기의 원리는 식물의 잎이나 꽃잎을 물에 넣어 가열하면 식물성 오일이 배어든 수증기가 차가운 구리관에 맺혀 액 체화되는 방식으로 차가운 구리관에 수증기가 맺힌 모양이 땀처럼 보인다고 하여 “아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증류기 - 구글 이미지 





사람들은 증류기를 이용하여 술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무슬림들은 술을 마실수 없다고 하지만 초원의 밤은 추웠고 유목인들의 몸을 따뜻하게 해 줄 술은 필요했습니다. 물이 없으면 술을 마셔도 된다는 샤리아를 이유로 대며,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었고 아랍 지역에 무슬림들만 살았던 것은 아니니까요, 그들은 10도 정도인 기존의 발효주들을 증류시켜 50도짜리 증류주를 마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몽골족들이 말을 타고 나타납니다.

 

몽골 전사들 - 구글 이미지



세계 최고의 기마술로 세계를 한순간에 점령해버린 악몽 같은 몽골 전사들은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서양과 동양을 연결했으며, 당시 최고의 과학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아랍 지역을 흡수하며 증류법과 여러 가지 기술을 받아들입니다. 인구가 적었던 몽골인들은 새로운 문명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이 원나라가 발전하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마르코폴로 - 구글 이미지




원나라는 마르코폴로와 같은 수많은 이민족들을 신하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기술들을 받아들였는데, 기본적으로 추운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몽고인들에게 적은 양으로도 몸을 확 데워주는 증류주는 가장 인기 있는 신 문물이었습니다. 곧 증류주와 증류 기술은 몽골인 덕분에 금세 세계로 퍼지게 됩니다


지역마다 다른 뜻으로 불리고 있지만, 지중해, 중동, 발칸 지역 그리고 인도 아대륙을 통틀어서, 아라크(Arak)라는 단어는 증류주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아라크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모음이 약한 지역에서는 라크, 라키, 라키에로 변화되었고, 중동과 멀리 떨어져 있는 아시아의 동쪽 끝 고려에도 아락이란 단어가 알려집니다. 


몽고가 고려를 침략하면서 증류 기술이 고려인에게 전해지고 몽골에 대항했던 삼별초도 증류 기술을 배워 지초(芝草)를 이용한 진도 홍주를 만들기 시작하였던 것이 한민족 증류주의 시작이었습니다. 몽골 침략 당시 식량 기지가 있었던 안동, 개성에서 유명한 소주가 만들어진 것도 몽고인 덕분입니다. 


먹고살기 힘든데 쌀로 술 만들지 말라. - SBS News


고려시대부터 전통이 이어졌던 안동 소주와 진도 홍주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수준의 증류주입니다. 구한말만 해도 집집마다 수많은 종류의 전통주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이후 박정희 정부의 양곡 관리법과 주세법으로 인해 전통주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집니다. 


향과 맛을 즐기기 위한 위스키 잔 - 구글 이미지


그럼 전통주의 맛은 어떨까요? 지금과 같은 인공적인 맛과 향을 맛보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희석식 소주가 아니라, 재료의 풍부한 맛과 향이 함축되어 있는 술입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술인 버번위스키, 중국의 백주, 고량주,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 프랑스의 코냑, 멕시코의 테킬라, 카리브해 지역의 사탕수수 럼, 중부 유럽의 맥주와, 북유럽의 보드카, 터키의 라크처럼 국가나 지역을 대표하는 정신이 담긴 술은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즐겨마시는 공장식 소주를 만드는 기술이 별게 아니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첨가물로만 맛을 내는 공장식 소주를 한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기 보기엔 너무 빈약하지 않을까요? 


터키 전통주 라크 - 구글 이미지




정성껏 만들어진 증류주는 스피리츠(Spirits)라고 불리며, 재료의 향과 맛이 살아 있어 처음에는 부드럽고 마지막에는 입안의 공기와 섞여 올라오는 복잡한 풍미가 인상적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맛본 배상면주가의 아락 시리즈는 저에게 상당한 감명을 줄 정도로 가격 대비 잘 만들어진 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장은 무척이나 작고 어디서나 쉽게 전통주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주세법이 바뀌면서 많은 소규모 주류업체들이 생겨나고 세금이 줄어들며 가격이 저렴해졌고, 전통주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할 수 있어 점점 많은 사람들이 전통주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래 술들은 전통주 입문 하기 좋은 저렴한 가격대의 전통주들입니다. 


나주배로 유명해진 배상면주가의 예전 아락 시리즈 - 구글 이미지






생강과 배맛이 부드러운 이강주 - 구글





안동소주 일품, 정갈한 전통 소주 - 구글 이미지





플럼 향이 인상적인 서울의 밤 - 구글 




한산소곡주 생주 - 구글 


이 글을 읽어보시는 분들께 이번 주말에는 일반 소주가 아닌 전통술을 드셔 보시는 것은 어떨까 말씀드려 봅니다. 편하게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주문이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면세점에서 양주보다는 한국 명주들을 구입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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