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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이누나 Mar 20. 2023

당신이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

내가 미술관에서 일하는 이유



"넌 그냥 엄마를 믿고 기다려. 하나 분명한 건 엄마는 널 지키는 선택을 하셨다는 거야. 세상이 너무 엉망이니까. 그러니까 넌 유학을 가야 해. 유학 가서 죽어라 공부해. 네가 지금 낼 수 있는 유일한 용기는 외면이야.

공부하다 틈틈이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가고 천천히 저녁도 먹어.

넌 그렇게 살아. 그거면 돼."



당신이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전, 지난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의 10화의 대사를 가지고 와 보았다. 위 대사는 학교폭력을 당한 동은(송혜교)의 복수를 도왔던 현남(염혜란)의 딸을 유학 보내주면서 동은이 남긴 말이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죄 없는 아이를 꺼내주면서 죽어라 공부하고, 틈틈이 여행도 가고, 미술관도 가고, 저녁도 천천히 먹으라는 말. 주인공은 왜 이런 말을 남겼을까? 작가는 왜 굳이 내가 밥벌이를 위해 약 10년째 일하고 있는 '미술관'이라는 단어를 넣었을까?



사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남들이 좋다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딱히 뭐가 좋은지 체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분석해 보자면 우선 이해하는 게 쉽지가 않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길게 늘여놓은 것이 에세이, 그것을 작가의 상상력을 활용해 글로 풀어쓴 것이 소설이라고 봤을 때 우선 에세이와 소설은 글의 길이가 길어서 어느 정도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을 조금 더 함축한 것이 '시'인데 시를 읽는 일만 하더라도 가끔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근데 그림이라? 작가의 생각을 하나의 점처럼 회화나 조각 등 다양한 형태로 함축해 놓은 것인데 과연 이게 이해하기 쉬울 수가 있을까? 당연히 쉽지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미술작품은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함의된 내용을 즉각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작가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표현방식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리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현대미술로 오면서 이 아름다움의 표현방식도 다양해지고 있기에 역시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법에 대해서는 향후 조금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이렇게 태생적인 특성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게다가 미술작품을 열심히 감상한다고 어떠한 눈에 보이는 이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이득은 무슨, 경제적으로 봤을 때는 사실 돈과 시간을 쓰는 행위가 아닌가? 각박한 현실 속에서 큰맘 먹고 미술관까지 갔는데 이건 뭐 이해도 안 되는 것 같고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싶다. 이 이유를 말이 되게 설명하는 일은 어쩌면 '내가 왜 미술관에서 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우선 문화적 경험은 타인이 절대로 대신해 줄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스스로 경험하는 방법으로만 채득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조금 더 풀어서 설명하면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뻔하디 뻔한 말이 있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세상을 보고 있을까? 쉽게 느낄 수 없을지는 몰라도 미술감상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무한히 넓은 세계가 있는데, 이걸 나는 느껴봤기에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는데, 당신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눈을 뜨고 살면서도 보지 않아 그냥 놓쳐버리기엔 너무 아쉽다.



17~18세기에 작가, 시인, 예술 애호가들이 모여 작품을 감상하거나 예술적인 대화를 나누던 장소를 말하는 '살롱' 문화가 있다. 보통 근세에서 근대에 걸친 서양 상류 계급의 응접실을 말한다. 미술 용어로는 현존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모아서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공식적인 전람회를 지칭한다. 1667년 프랑스 왕립아카데미의 전람회 개최 이래 살롱은 공개적인 전람회를 의미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아카데미 회원들만이 참가할 수 있었던 이 전시회가 루브르궁의 ‘살롱 카레(Salon Carr)’에서 열렸기 때문에 살롱이라 불리게 되었다.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살롱문화에 대한 간단한 정의를 살펴보며 금세 눈치챌 수 있는 것은, 미술을 향유하는 일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상류계급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는 점이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죽겠는데 어딜 예술 같은 타령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미술관 타령을 하고 있다. 지금은 과거와 시대가 달라졌다. 국공립 미술관에서는 '모두를 위한 미술관'을 표방하며 무료전시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최근 리움미술관 같은 곳은 사립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지 않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개를 위한 미술관'이라는 전시를 열기도 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즐기기 바라는 마음은 때론 인간의 친구인 반려견을 향하기까지 했다. 개방성과 확장성을 가진 미술관이 존재하는 시대에 미술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전유물처럼 되는 것은 내가 다 억울하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행동은 인간의 삶 속에 켜켜이 스며들어 다채로운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당장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좋은 작품을 감상한 시간들이 성실히 쌓여 시나브로 당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확신. 나는 그 확신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시지프스의 형벌'의 현실 버전이 아닌가? 삶의 무게라는 돌덩이를 짊어지고 비슷한 자리를 무한히 반복하고 있지만, 당신의 삶의 쉼표에 예술이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가끔은 '미술관도 가고' 천천히 저녁도 먹으며 그렇게 살라는 말. 이것이 내가 미술관에서 일을 하는 이유이자, 당신이 미술관에 가야 하는 이유다.



내가 일하는 미술관 전경 © ARCHFRAM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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