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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Nov 05. 2022

엄마도 성장하고 싶어

엄마의 성장욕구

나는 딸 둘을 키우는 젊줌마다. 미국에서 만난 엄친아(우리가 아는 그 엄친아 아니고, 말 그대로 진짜 엄마 친구 아들)와 5년간의 연애를 했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엄마는 학창 시절 베푸의 아들이 유학을 갔다는 말을 듣고 유학원을 소개받았다. 같은 유학원이니 같은 곳을 소개해 줄 수밖에! 우리의 첫 만남은 미국의 한 공항에서 시작되었다. 먼저 유학을 가있던 그가 엄마의 부탁을 받고 나를 마중 나와준 것이다. 그때 첫눈에 반했을까. 그날을 시작으로 그는 여러 차례 라이드를 주었고(굳이?) 우리는 얼마 안 가 연인이 되었다. 해외에서 이성이 해주는 라이드를 조심해야 한다. 오빠 차 얻어 타다 남편이 되는 수가 있다.

 

아무튼 식을 올리고  달쯤 지났을 , 임신테스트기에 두줄이 떴다. 취직 대신 취집과 육아를 하게  셈이다. 친구들이 꾸미고 놀러 다닐 시기, 나는 집에서 늘어난 티셔츠 입고 아이 젖을 먹였다. 딱히 남들이 부럽진 않았다.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새로운 단어를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과정이 뿌듯했기 때문인데. 머릿속이 온통 아이로 가득   부러울 새가 없었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도움을 주는 엄마의 일이란 얼마나 가치 있는가?'  순간 새기며 나에게 세뇌시켰다.


모든 것을 아이의 패턴에 맞추었다. 아이가 졸려하면 외출 시에도 바로 집에 들어와 잠을 재웠고, 아이가 보내는 반응을 놓칠세라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볼일을 보다가도 아이가 울면 문을 열고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물론 식사 시간도 보장받지 못했다. 아이를 안고 후다닥 식사하는 것이 일상이고 당연했다. 엄마의 먹고, 자고, 싸는 본능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도 아무렴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욕구에 온 신경을 기울이며 육아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의 욕구는 점점 잊혀갔다. 문득 아이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못 커봤는데… 나도 내 아이처럼 성장하고 싶다’ 처음 이런 생각이 들 자 죄책감이 느껴졌다. 엄마의 욕구는 사치라고 생각해서였을까. 못 들은 척 내 욕구를 의식 아래로 꾹꾹 미뤄 넣었다.


나의 욕구가 수면 아래로 잊어졌다고 생각했을 즈음 터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2019년도 신랑은 사업을 시작했고 나는 무지 더운 7월의 어느 날 둘째를 출산했다. 안타깝게도 조리원에 나와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첫째를 가정보육으로 돌리고 집에서 24시간 아이들을 돌보았다. 돌이 채 되지 않은 아이 젖을 물리면서도 동생을 질투하는 첫째에게 마음이 갔다. 나의 마음 따위는 들여다볼 틈도 없이 버거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의 하루는 왜 이리도 긴 건가. 자기 전 눈을 감으며 내일의 해가 뜨지 않기를 바랐다. 그 무렵, 마음 한편에서 무언가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억울하다

엄마의 자리에서 충실히 육아를 하는 것에 가치부여를 하던 내가 엄마와 아내의 자리를 부정했다. 남편의 성장이 부럽다 못해 질투까지 났다. ‘나도 부모님이 비싼 돈 주고 유학 보내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나만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이 억울하다고.... 나도 훨훨 날고 싶다고'


이런 감정에 걷잡을 수 없이 휩싸여 잠식되었을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육아 번아웃과 산후우울증을 겪지 않았나 싶다. 직감적으로 오롯이 나를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이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나를 성장시킬 만한 것. 동시에 엄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

책이었다.

책을 통해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잠시 떠날 수 있었고 그 시간만큼은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존재했다.

아이가 잘 때나 수유할 때. 짬이 날 때마다 무작정 읽어 내려갔다. 나의 잠을 포기할 만큼 책에 내 성장욕구를 투사했다. 비록 겨자씨만큼의 성장일지라도 지금 읽는 책이 훗날 나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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