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ipping Through My Fingers' 들으며...
최근 들어 종종,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했던 경험들이 생각난다. 그중 하나가 뮤지컬인데, 2층짜리 대극장 로얄석에 앉아 붉은 커튼이 열리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쯤으로 기억한다. 맘마미아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당시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유명했던 배우 박해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텔레비전에서 보던 연예인이 내 눈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연기하는 모습이 마냥 신기했다. ABBA의 노래는 또 어찌나 중독적이던지. 못 들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들어 본 사람은 없을 테다. 90년대생이지만 익숙했던 ‘맘마미아’, ‘댄싱 퀸’ 등의 멜로디에 뮤지컬 장면들이 더해져 몇 날 며칠을 흥얼거렸다. 수능 금지곡으로 지정될 법한 중독성 있는 곡을 좋아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 "Slipping Through My Finger'이라는 잔잔한 수록곡 하나가 마음에 들어왔다.
“엄마, 같이 놀자!”를 외치던 첫째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아이 연령에 맞게 잘 성장함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모든 아이는 자란다. 영원히 그 귀여운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 것 같던 아이가 점점 엄마품을 떠나는 건 당연한 성장과정이다. 건강히 자라주는 아이의 모습에 박수를 치며 감사를 느낄 일이지! 이를 머리로는 알기에 수긍하고 이해하지만, 이상하게 헛헛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시키려는 찰나, 주말에 친구와 약속을 잡겠다는 아이를 바라보며 치트키를 던졌다.
“숙제 다하면 엄마가 책 읽어주지~!” 아이가 좋아할 만한 그림책 두어 권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싸! 엄마, 꼭 책 읽어 줘야 해!” 아이는 상기된 얼굴로 나를 보더니 서둘러 숙제를 끝내려 들어갔다.
‘아직 엄마품을 떠나진 않았구나...’ 안심하면서도 아이를 시험하는 내가 참 유치하고 우습다. 그러다 다시 ‘에이 좀 유치하면 어때!’ 아직 아이가 엄마품을 떠나지 않았음을, 아직 시간이 있음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영화 맘마미아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도나’가 “Slipping Through My Fingers” 노래를 부르며 딸 ‘소피아’를 시집보내는 장면인데, 모래 한 움큼을 쥐었다 펴니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스르륵 빠져나간다. 과거에 스쳐 지나간 노래의 그 장면이 지금 현시점에 다시 살아 움직인다. 딸을 보내는 엄마의 헛헛한 마음이 나의 미래와 오버랩될 것만 같다. 다 자란 딸이 마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는 그 표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가슴으로 느껴지기에. 우리 아이들도 모래알처럼 내 품을 떠나갈 날이 오겠지. 분명 그날은 올 텐데… 부디 천천히 와줄 순 없는 건지,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 붙잡아 두고만 싶다.
“오늘 엄마가 두 시에 데려와야 해! 엄마, 꼭이야!” 5살 둘째 딸이 머리에 하트를 그리며 등원차량에 올라탔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둘째의 사랑고백이 애틋하고 고맙다. 그러다 금세 둘째도 빠져나가겠지…, 고작 9살, 5살 딸을 키우며 그녀들의 독립을 걱정하는 나를 보며 엄마가 떠올랐다. 스무 살, 미국으로 유학 간 딸은 몇 년 지나 남자친구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애걸복걸했다. 딸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으랴. 결국 졸업과 동시에 나를 떠나보낸, 그때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네 자식 낳아 가정 잘 꾸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안 바란다고 습관처럼 말하는 엄마의 그 말은 진심인 걸까? 효도라 하면 특별한 날 가족들과 웃으며 찾아뵙고, 선물과 꽃을 달아 드리는 게 전부인데. 이런 소박한 행위라도 효도라 칭할 수 있는 것일까? 그저 나를 이렇게도 사랑하시는 존재에 최선을 다해 감사하며 조금씩이라도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정도가 아닐는지. 이렇게 아주 조금씩 도리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간다. 내 역할과 그 시기에 맞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