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제일 비싼 물건에 후기를 남길 수 없는가
인터넷 쇼핑을 할 때 상품 평을 꼼꼼히 읽는다. 여러 개의 글을 읽다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있고, 그게 곧 사려는 물건의 실체와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리뷰들이 내 통장을 구해줬다. 모델의 분위기에 홀려 결제할 뻔 했던 카디건을 “10만원 짜리 넝마”라는 촌철살인으로 포기하게 해줬고, ‘남들은 안 어울려도 난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오만을 박살내준 수많은 사진 상품평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야말로 까막눈 호구를 합리적인 소비로 이끌어준 길잡이라고 믿는다.
사려는 재화가 비쌀수록 경험자들의 조언은 더욱 절실해진다. 특히 집이 그렇다. 인터넷처럼 배송시키는 물품은 아니지만, 살아보기 전엔 10%도 제대로 알 수 없기에 솔직한 리뷰가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500원짜리 양말도 상품 평을 볼 수 있는데, 몇 천만원이 왔다 갔다 하는 집을 첫 인상으로만 골라야 하다니. 아무래도 비합리적이다. 만약 우리 집에 “겨울에 결로 쩔고요. 곰팡이랑 백번 싸워 이길 수 있는 분만 들어오시길”이란 평이 달려있었다면 진지하게 계약을 고민했을 거다. 이 집 밖에 대안이 없었대도 마음 한 구석에 준비는 하고 있었겠지.
내친김에 지인들에게 “본인의 집에 상품 평을 남긴다면?” 물어보았더니 역시 진실 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방음 겁나 안 되고 사는 동안 끄떡하면 공사함. 공사를 다 마치고 세입자를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다 괜찮은데 여름에 비 X나 샌다.” “1층 상가에 노래방 있어서 새벽에 맨날 깨요. 고시생인데^^” …그렇다고 한다. 이런 평을 미리 접할 수 있다면 최소한 자기가 꼭 피해야 할 집은 걸러낼 수 있지 않을까.
재밌는 사실은 집에 대한 상품 평에 ‘집주인’이 꽤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장마 때문에 방이 반쯤 잠겼는데 어떤 조치도 취해주지 않은 경우부터 이사 가야 하는데 다음 세입자가 없다고 보증금을 안 내어주거나(이래서 전 세입자들이 솔직한 이야기를 못해주는 거다), 윗층에 살면서 마주칠 때마다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이며 ‘고나리질’하는 사례까지. 집의 결함은 시간이 좀 지나면 '극한 추억'으로 소비할 수 있지만, 집주인에게 받은 스트레스는 끝까지 더러운 기억으로 남는 듯 했다. 유독 집에 대해서만은 판매자가 ‘갑’이 되는 현실이 설움을 더 북받치게 하는 걸지도.
숙박 공유 사이트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와 게스트가 서로에게 리뷰를 남길 수 있다. 여행자들이 리뷰를 보고 숙소를 고를 수 있듯이 호스트도 게스트가 받은 평을 보고 예약을 수락할지 말지 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리뷰는 양쪽이 다 남긴 순간 공개되는데, 한쪽이 끝까지 쓰지 않으면 2주의 블라인드 기간을 거친 후 볼 수 있다. 먼저 남긴 평에 대한 보복성 별점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이처럼 자신에게 조금 더 맞는 집을 고를 수 있게 투명한 정보가 공개되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집은 부동산 사장님의 달콤한 말에만 의지하기에는 삶의 질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는 상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