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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 Oct 18. 2018

멋진 어른이 되는 법은 모르지만

서른보단 마흔이 걱정이야

로맨스 드라마의 1화는 자주 이렇게 시작한다. 갓 서른이 된 여자들이 “이렇게 서른이 될 줄 몰랐다”고 한탄하면서. 사랑도, 일도 무엇 하나 제대로 손에 쥔 게 없는데 어쩌자고 나는 서른이 되었냐고 우울해하는 내레이션이 참 싫었다. 백서른 살도 아니고 꼴랑 서른 살 먹어놓고 나이 타령 하는 게 우습고, 왜 모두 서른을 대단한 분기점이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지도 이해가 안 됐다.


석 달 후면 서른이 된다. 맙소사. 나는 내가 욕했던 그녀들처럼 시시하게 굴고 있었다.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었지? 서른 살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이딴 말을 내뱉으면서. 김광석이 왜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최영미가 어떤 기분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읊조렸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시기가 내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날들이 폐장한 축제처럼 쓸쓸할 거라고 단정 짓거나, 이뤄내지 못한 것들을 복기하며 과거를 후려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단지 TED 강연의 제목 같은 고민을 하게 됐을 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꼰대’나 ‘고인 물’이 아닌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링컨은 “마흔을 넘긴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고, 공자는 더 무서운 말을 남겼다. “불혹에 접어들고서도 남의 미움을 받으면, 그자는 끝장이다.” 내 인상과 행동, 태도에 책임져야 할 날이 고작 십 년밖에 남지 않은 거다. 서른이 무슨 대단한 분기점이냐고 비웃었던 과거의 나는 바보였다. 품위 있게 늙으려면 서른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을!


쿨 워터 향이 나는 마흔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illust 강한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알게 된 아이유의 생활신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늘 마음에 새긴다는 세 가지. 1. 나는 행운아다. 2. 들뜨지 말자. 3. 일은 적을수록 좋다.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스타이니, 내가 잘된 건 다 내 탓이라고 여기며 자의식에 취해 살 수도 있을 텐데. 아이유는 간결한 세 문장으로 겸손을 기억하고, 오만함을 경계한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생각을 지니고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10년, 20년 후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아이유에게 힌트를 얻어, 나도 딱 세 가지만 정해 실천해보려고 한다. 내가 원하는 산뜻한 어른에 좀 가까워질까 싶어서.


1. 기분이 태도가 되게 하지 말자. 

인터넷에서 만난 작자 미상의 명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어. 네가 제일 못하는 거.”라는 답이 돌아왔다. 맞다. 일주일에 열두 번씩 다짐하고 스무 번 실패한다. 그게 얼마나 꼴불견인 줄 아는데도! 그러니 더더욱 생활신조 1번에 올려놓고 수시로 새겨야 한다. 기분과 태도를 분리하지 못하면 어려서는 아마추어, 늙어서는 꼰대 소리를 듣는다. 


2. 새로운 것을 싫어하지 말자.

20대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다 보니, 한 달이 멀다 하고 새로운 신조어와 트렌드를 접한다. 이런 말을 왜 쓰는지, 이게 왜 인기가 많은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요즘 친구들 감성, 정말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튀어나온다. ‘요즘 친구들’이라니. 백스물아홉 살도 아니고 꼴랑 스물아홉 먹은 주제에! 자기가 즐기지 못한다고 다른 세대의 문화를 이해 못 할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내가 가장 싫어했던 연장자들의 특성인데. 왜 나쁜 건 항상 빨리 배울까. 


지난 학기 함께 일했던 인턴 친구는 자신의 몸에 ‘포에버 영(Forever young)’이라는 타투를 새겼다. 여기서의 ‘young’은 비단 몸의 생기만을 뜻하는 건 아닐 테다. 마음과 머리의 유연함에 더 가깝겠지. 낯선 것에 무작정 혀를 끌끌 차지 않는 사람만이 말이 통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3. 더 늦기 전에 운동하자.

인내와 친절과 사랑과 웃음은 체력에서, 꼿꼿하게 편 기품 있는 자세는 허리 근육에서 나온다.

생활신조를 적으려고 했는데, 반성문이 돼버렸다.(머쓱) 어쩌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모습 3종 세트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적이고, 익숙한 것만 선호하고, 게을러터진. 이것들을 완벽히 고칠 수 있을까? 아니,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마음에 두고 떠올릴 순 있겠지. 생각 없이 말했다가 ‘아차’ 하며 반성하거나,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아주 천천히 변화하면 최악의 중년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서른 살의 내가 지금보단 괜찮은 인간이었으면 좋겠다. 마흔엔 나름의 멋도 느껴지길 바란다. 청춘은 점점 멀어져 가고, 화려한 파티는 끝났을지 몰라도 내가 나를 만들어 갈 여지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기갈나게 멋진 어른은 아니어도 좀 더 나은 어른은 될 수 있다고, 더 나중에도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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