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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ebibu May 07. 2021

내가 지은 이름으로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가면 무도회


조용한 영화관에서 어린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젊은이들이 상주한 카페에서 노인이 큰 목소리로 음료를 주문한다.

미용실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들어온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의 습격이다. 이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은 불편하다. 왜 이런 곳에 아이를 데려왔는지 모르겠고, 소란을 피우는 노인이 빨리 나갔으면 좋겠고, 휠체어를 위한 자리를 만드는 게번거롭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자리를 누리고 누군가는 찌뿌린 눈살을 맞는다. 사회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을 보이지 않는 주변부(margin)로 밀어낸다.


글은 주변부의 사람들이 중심부에서 빛날 수 있는 무대가 되어준다. 글은 화자를 철저히 숨기고도 의미전달과 빠른 배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변부의 사람들은 대자보를 붙이고 대나무숲에 글을 올려 그들의 “자리”를 만든다.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을 상상하며 유심히 문장들을 읽는다.


이미 유명 작가였던(안티도 많았던) 로맹 가리는 “자기앞의 생”을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공쿠르 상을 받는다(시상식엔 친척 동생을 보내 연기하게 한다). 브론테 자매들은 남자의 이름을 빌려 글을 썼다. 19세기에 여성으로서 글을 쓰려면 별 수가 없었다. 이처럼 내가 지은 이름으로 쓰는 글은 내가 태어나 받은 이름으로 하는 말보다 자유롭다. 보편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더 그렇다.


<은는이가>에서 왜 별명을 쓰는지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삶의 편집권(authorship)을 글을 쓰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그 사람의 이름, 경력, 외모, 팔로워 수는 묻어두고 싶다. 글을 처음 써보는 주부, 맞춤법이 어려운 외국인, 유명 인플루언서 모두 은는이가에서는 ‘글쓴이’다. 그들이 어울러 편견 없이 글을 읽고 쓰는 사이가 되기를 바란다. 은는이가는 그런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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