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4>의 10대 키워드 중 하나는 ‘도파밍(Dopaming)’입니다. 도파민과 파밍의 합성어로, 사람들이 자극적이고 짜릿한 콘텐츠나 음식을 찾아 나서는 경향성을 보여주는 키워드죠. 도파민은 단순히 쾌락 물질이 아닙니다. 도파민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자신,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우리 조상은 사냥을 했습니다. 사냥은 성공 확률이 낮아서, 여러 번 시도해야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했죠. 장기적으로 불확실한 (그러나 커다란) 보상에 대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시도를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도파민입니다. 도파민으로 우리는 행동의 실행에 지원을 받아 꾸준히 사냥을 시도했고 간혹가다 보상을 받았습니다. 보상이 불확실하지만 짜릿한 도박이나 사행성 요소에 중독되는 것도 도파민 때문입니다.
도파민은 멋진 미래의 스케치를 그려주고, 그 미래를 현실로 만들도록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부여 물질입니다. 특히 설정한 목표, 그리고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에 근접했을 때 도파민은 최고치를 찍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시험에 합격하고, 취업하고 승진하며, 사랑과 음식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됩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미래에 더 가질 수 있는 것들에 군침 흘리고, 미래를 쫓게 만듭니다. 도파민은 철저히 ‘미래지향 호르몬’입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미래에 더 많은 것을 얻는 방향으로 학습하고, 움직이도록 만듭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도파민은 야심한 밤 출출한 우리에게 치킨의 바삭함과 육즙을 떠올리게 해서, 배달 앱을 켜고 치킨을 주문하게 만듭니다.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고, 치킨 포장을 뜯어 닭다리를 크게 한입 물어뜯는 순간 도파민은 최고치를 찍습니다. 하지만 치킨을 크게 물어뜯는 순간부터는 도파민의 각성 효과는 점차 줄어들고 현재 지향 호르몬이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도파민은 우리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특정 행동의 결과로 바라던 것(치킨)이 손으로 들어오는 순간 현재 지향 호르몬이 우세해집니다. 이때 치킨의 맛이 우리가 기대한 것 이상이라면, ‘보상 예측 오류’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이 긍정적인 오류는 치킨 욕망 회로에 가중치를 부여하며, 앞으로 치킨을 더 많이 시켜 먹게 만듭니다. 치킨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가, 다음에 치킨을 떠올릴 때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아예 예상하지 못한 것을 만나면 초기 기대치가 0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예측 오류가 발생해서 대규모 도파민 조정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뇌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치킨의 맛이 영 별로라면, 음의 보상 예측 오류가 발생합니다. 현실 경험(현재 지향 호르몬들의 연합)이 도파민 각성 효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것입니다. 이 경우 실망감이 홍수처럼 밀려오며, 치킨을 덜 선택하도록 우리의 회로가 수정됩니다. 이렇게 치킨을 먹을 때마다 뇌에서 치킨과 관련된 욕망 회로가 조금씩 갱신되면, 치킨을 먹을 때 보상 예측 오류(맛에 대한 기대감과 실제 맛에 대한 오차)는 줄어들 것입니다. 더불어 기대치에 따라 도파민 분비량도 조정됩니다. 미래가 현재가 되었을 때 도파민은 정산되고, 그것이 제법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뇌는 단순히 현실의 자극에 반응만 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뇌는 한 발 더 앞서서, 다음 순간을 예측합니다. 도파민이 예측해서 (불확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행동하게 하고, 현재 지향 호르몬이 점수를 매깁니다. (전두피질은 기댓값과 불일치를 계산합니다.) 도파민과 보상 예측 오류의 합작으로 학습이 이루어지면서 뇌는 더욱 정교한 예측 기계가 됩니다. 우리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도파민에는 내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같은 쾌락에 적응하게 되고, 비슷한 수준의 도파민 각성 효과를 얻기 위해서 더 좋은 것, 자극적인 것을 더 많이 쫓게 됩니다. 한편, 지나친 자극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때 우리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중독에 빠집니다. 현대에 와서 자연적인 자극을 월등히 넘어선, 인위적으로 과장된 자극들인 초정상 자극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초정상 자극에 대한 내용을 부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지나친 자극이 계속되어 이상 행복감을 경험한다면, 강박이 생기고 뇌는 그 중독 대상에 갇혀버립니다.
오늘날만큼 균형 잡기 어려운 시대가 없습니다. 우리의 뇌는 중독에 취약하고,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중독은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튜브, 넷플릭스는 천재적인 개발자를 동원해서 우리 개개인의 뇌를 해킹하는 알고리즘과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니, 알고리즘에 빠져들지 않기 힘듭니다. 중독의 조건 중 하나가 접근의 용이성과 빠른 피드백입니다.
우리는 방 안에서 손가락만을 통해, 별 노력 없이 상품을 받아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자극적인 정보를 얻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사회적 연결감과 사회적 보상을 얻습니다. 정보 추구와 연결/소통 욕구가 순식간에 해소되는 듯합니다. 우리는 자동적으로 도파민 수치를 더 높이 끌어올리는 쪽을 선택하고, 그 흐름에 따라 고정된 행동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중독 사이클이 형성되고 계속해서 강화된다면, 이를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뇌가 균형을 잃어버려 특정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중독이 되면, 중독 대상에 일상의 맥락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쾌락에 적응하기 때문에 더 재밌는 오락거리와 사회적 보상(더 많은 ‘좋아요’와 댓글 등)을 욕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욕구에는 끝이 없기에 우리는 공허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데, 그만두고 싶은데도 어쩔 수 없이 계속하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Wanting without liking)
도파민 과다 분비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도파민의 역치가 높아지면 일상적으로 더 자주 심심함과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도파민 생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다가 고갈되면 무기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도파민 고갈은 피로와 순종을 부릅니다.
도파민이 부족하면 선택지 구성에 문제가 생기고,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동력도 부족해집니다. 실제로 도파민이 고갈된 생쥐는 바로 코 앞에 있는 먹이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생쥐 입에 음식을 넣어주어야 비로소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합니다. 미래지향 호르몬 도파민이 작동하지 않고, 현재 지향 호르몬만이 작동한 결과입니다.)
결국 중독 대상에 매몰되면 우리는 미래에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중독 대상에 집착하게 되고,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 현재 순간 그 자체에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기대하던 중독 대상을 얻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할 정도로 부족하다면, 도파민 수치는 급격히 떨어지며 심심함과 무기력,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심한 경우, 우울증을 정의하는 주된 증상인, 무쾌감의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도파민 통제 회로
우리의 뇌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욕구들이 정치적 다툼을 벌입니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당선된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행동을 단계별로 밟아 나갑니다. 하지만 균형을 잃어버리게 되면 특정 욕구가 특정 맥락을 벗어나 시도 때도 없이 지나치게 강한 힘으로 우리를 끌어갑니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대니얼 Z 리버만에 따르면 하나의 도파민 회로에는 그것을 견제하는 다른 도파민 회로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핸드폰에 손을 뻗게 만드는 것도 도파민, 핸드폰을 내려놓게 만드는 것도 도파민입니다. 우리가 계속 재밌는 동영상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도파민 분비가 중단됩니다. 재밌는 동영상이 주는 효용이 감소하는 어느 순간 우리는 하던 것을 멈추고 다른 것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지금 하던 것은 이제 충분하니 멈추고, 이제 다른 것을 찾아 나서도록 지원하는 도파민 회로가 있는 겁니다. (도파민 분비가 막히면, 이전까지 보상으로 작용했던 자극이 피하고 싶은 자극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우리는 한 가지 자원에 매몰돼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자원이 균형 있게 필요합니다. 배가 부르면 음식을 그만 먹게 되듯, 한 가지 자원과 행위에 대한 효용이 감소하면 중단하고 다른 행동(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도파민입니다. 욕망 회로가 흥분과 열정을 담당하는 영역과 이어지는 반면, 통제 회로는 논리적 사고에 특화된 영역으로 이어져 신중한 계획을 돕는다고 합니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독은 유쾌하지 않은 원함입니다. 우리는 이성이라는 마부가 욕망이라는 두 말을 꽉 쥐고 있다는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하나의 감정을 막아세우는 것은 다른 감정입니다. 치킨 배달 앱 앞에서 경쟁하는 것은 ‘지방 축적 모듈’이 요청하는 식욕과 ‘장기적 모듈 및 자기 홍보 모듈’이 요청하는 자책감입니다.
특정 상황에 하나의 모듈이 추진하는 감정이 힘을 우세하게 얻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그 감정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시, 앞서 말씀드렸던 마음챙김 명상입니다. 우리의 특정 행위는 중독의 고리에서 도파민을 매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레버를 누르면 음식이 랜덤하게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쥐는 미친 듯이 레버를 누릅니다. 로버트 라이트에 따르면 마음챙김 명상은 레버를 눌러도 음식이 나오지 않게 함입니다.
느낌을 알아차리고, 신체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관찰하면서 가까이 다가감으로서 멀리서 보고, 그 느낌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음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과의 약속 등 모든 상황 맥락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한순간에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려는 특정 모듈이 어벙하게 멈춰서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모듈 하나가 독점하려는 힘을 슬그머니 내려놓게 해서 다른 모듈과 나눠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순간적이고 충동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다시 균형으로 돌아갑니다. 도파민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 다른 미래를 향해 갑니다. 충동에 휩쓸린다고 해서 자신에게 크나큰 질책을 가하지 말고, 자신을 용서해야 합니다. 잠시 뇌의 도파민 쟁탈전에 균형을 잃었을 뿐입니다.
대니얼 Z 리버만에 따르면 우리를 중독으로 이끄는 것도 도파민이지만, 우리가 예술 및 창조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도 도파민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두 아들 중 하나는 천재 공학자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도파민은 창작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도파민은 끝없이 요동치는 ‘예측되는 미래 보상’을 계산하고, 미래 보상을 극대화하게끔 우리를 움직입니다.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 줄 확률이 높은 일을 찾아서 하도록 동기 부여합니다. 도파민의 관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내가 정말로 좋아서 하는 것인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도파민이 원하는 것인가. 이 둘은 확연히 다릅니다.
우리는 도파민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추진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