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끝나가네…” 제 친구가 속절없는 시간에 한탄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걸로 하루를 느끼고, 배꼽 시계로도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지만, 우리 뇌는 그 이상의 긴 시간을 직접 감각하는 데는 형편없다고 합니다. 몇 달, 몇 년이 흘렀다는 건 대체 무엇으로 느끼는 걸까요?
뇌에는 시간 감각을 직접 주관하는 부위가 따로 없다고 합니다. 다만, 일화 기억(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을 다루는 뇌의 해마가 이런저런 사건을 선후적으로 배치하고, 다른 뇌 부위들과 함께 종합해서 “아, 이때부터 이때까지 이 정도 시간이 흘렀구나”하고 시간 감각을 구성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직접 감각하는 게 아니라, 발생했던 사건들의 연속성과 간격을 통해 ‘변화’와 ‘서사’로서 시간을 인지합니다. (물리학에서는 이런저런 ‘똑딱임’을 통해 시간을 감각하는 대신에 ‘측정’한다고 합니다. 원자 한 번의 진동, 지구 한 바퀴의 공전과 자전 등으로요. 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간을 부록에 첨부합니다.)
과거는 온데간데 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현재에서 과거를 불러오려면 기억이라는 방법을 써야합니다. 다만, 과거는 컴퓨터 파일처럼 시간 순서대로, 입체적으로 차곡차곡 쌓이지 않습니다. 기억은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에 분산되어 저장되며 뒤죽박죽 섞이고 또 섞입니다.
빨간색 찰흙을 조물락거리는 꼬마를 생각해 봅시다. 꼬마는 이윽고 주황색 찰흙을 받아들고 빨간색 찰흙에 덧대어 주물럭거립니다. 그 다음은 노란색, 초록색... 이런 식으로 기억은 뇌 속에 축적됩니다. 그러다가 꼬마가 노란색 기억을 꺼내보려고 기억 찰흙을 뒤적입니다. 하지만 노란색은 이미 다른 색과 어우러져 원형이 조금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노란색을 다시 끄집어내려는 행위는 노란색을 다시금 이염시킵니다.
우리가 기억을 끄집어내는 순간의 감정이 지난날의 기억을 염색합니다. 마치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슬픔이가 만진 기억 구슬이 파랗게 변하는 것처럼요. 기억을 꺼내도록 돕는 단어 하나의 미묘함으로도 기억은 바뀝니다. (심지어 약간의 조작만으로 가짜 기억을 덧씌워, 가짜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믿게 되기도 합니다.)
노란색 찰흙의 색이 꽤나 바뀌었더라도 우리는 그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억이란 과거에 활성화되었던 뇌 패턴과 지금 활성화된 뇌 패턴의 유사성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특정 경험을 할 때 뇌에서 특정 신경망이 활성화됐는데 지금 비슷한 패턴이 활성화되면 그걸 ‘과거 기억’이라고 인식한다는 겁니다. 찰흙 색깔이 비슷하면 ‘아, 그때 그 색깔 찰흙이구나’ 하고 알아보는 것처럼요.
과거는 어제 있던 일이든 유치원생 때 있었던 일이든 뇌의 같은 차원에 새겨져 기억의 형태로만 소환 할 수 있습니다. 어렴풋함과 아련함만 남을 뿐, 일주일 전의 일과 유년 시절의 기억은 같은 차원에서 ‘기억 패턴’으로 소환됩니다. (인간의 경우는 기억 패턴에 이야기를 붙일 수 있죠) 그래서 돌아보면 시간의 길이감은 느껴지지 않고 몇십 년이, 세월이 야속하게 흐른 것만 같습니다.
글이나 사진 등의 기록을 통해 기억에 순차성과 입체감을 조금 보탤 수 있지만, 우리의 인식으로는 시간은 뒤돌아보면 찰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과거는 전부 하나의 점으로 응축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선후 사건들을 연결해 서사적으로 입체감을 복원하려 들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엔 지나간 날이 아닌 다가올 날을 내다보도록 합시다. 이때 역시 기억이 작용합니다. 과거의 기억들이 허물어지고 녹아들며 다시 뒤섞여듭니다. 이것을 인지심리학에서 ‘미래 일화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기억은 향수를 부르지만, 감성을 빼놓고 말하면, 기억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그리고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위한 재료일 뿐입니다.
우리는 기억 찰흙을 계속 조물락거리며 무한한 종류의 미래 일화 기억, 미래를 조합하고 상상합니다. 다음에 뭐 먹을지 같은 사소한 것부터 인생의 중대한 계획까지 연쇄적으로 몽상합니다. 기억이 자연스레 만들어지고 허물어지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기에,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미래는 아직 한참이며 한창인 것 같고 끝없을 것 같다는 느낌을 얻습니다. (마치 우리가 모래성을 쌓던 어린 시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것처럼요.)
하지만 우리에게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예상하던 미래든, 예상치 못했던 미래든 결국 모두 과거가 되어버립니다. 시간과 미래의 고갈. 바로 죽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죽음에 대한 감각을 흐릿하게 만드는 탓에 미래가 더 무궁무진하게 (혹은 숨 막힐 정도로 기나길게) 느껴지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신체적) 죽음에 대한 감각이 한 층 더 멀어졌습니다. 1분 1초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무척이나 괴로울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뇌가 마음에 죽음이 떠오르는 것을 대부분 막아줍니다. (하지만 분명 죽음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입니다.)
친구에게 시간은 뒤돌아보면 점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애니메이션 Sonny Boy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가 떠올랐습니다. “인생은 아직 지금부터야, 이 앞은 조금 더 길어.” 저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시간은 뒤돌아보면 점에 불과하니, 우리는 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 무한한 반직선이야”라고요.
‘과거는 이미 지나간 한 점일 뿐, 우리는 이 순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향해 뻗어간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