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

멈춰버린 빱조

by 밈바이러스

내가 부모님이 닦아주신, 낮은 경사의 포장도로를 십수년 가뿐히 산보하며 올라온 이 언덕. 그리고 어느샌가 나는 뭔가에 홀린듯이 낮잠에 들었다. 그 낮잠이 수 년의 긴 잠이 되었고, 잠깐 깨어서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나는 그들의 정체를 인식했다.


그들이 맹렬히, 경사가 가파른만큼, 시간이 덜 걸리는 코스로 성큼성큼 올라오고 있다. 그들은 밤길을 걸을 줄도 알고, 수풀을 헤치며 올라갈 줄도 안다. 그들에게는 험난한 바위를 오를 완력도 있다. 그들은 험난한 골짜기를 제 힘으로 오르는 법을 앎으로, 앞으로, 나보다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내가 멈춰버린 이유는, 포장도로가 이제는 끝이라서. 내 앞길을 더 닦아주시기에는 부모님들은 이미 너무 지쳐버리셨고, 이 앞길은 남이 닦아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에. 지금까지의 길은 튜토리얼쯤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 앞에는 너무나 광범위한 지대가 펼쳐지고 있다.


너무 오랜기간 제자리에 있었다는 불안감에 나도 그들을 흉내내며 올라가보기를 자처한다. 나뭇가지에 몸이 살짝이라도 긁힐까 조마조마하며,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뜀박질하며 나를 앞지르는 상처투성이의 맨몸 등산가와 캠핑밴을 타고 쉽게 가는 자, 심지어는 헬기로 수직상승하는 자를 차례로 봐버린다. 나는 그들을 흘낏보고는 주특기인 자기합리화를 시작한다.


흥, 시시하네.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던 길이었어,

엉망진창인 세상이야, 혼돈만 가득하구만.


그런 식으로 한탄하며, 다시 눈을 감아버리거나, 책으로 도피하거나, 옆의 죽기에 알맞은 낭떠러지를 기웃기웃.


의욕과 설렘, 욕망 전혀 못 느끼겠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어쩌지, 내 인생, 전혀 자극이 오지 않아


요즘은 뭐라도 해보자는 식으로 런닝머신이라도 뛰기는 한다. 수시로 나를 저어주지 않으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응어리 질 것 같아서. 내일은 무엇이라도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기를.


오늘 깨우친 것은, 좋은 습관을 시작하려면 무엇인가 트리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 가령 친구가 헬스장에 가는 것에 나도! 하면서 따라 가는 것. 언제라도 즉시, 손쉽게 당길 수 있는 방아쇠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것. 손에 넣고야 말겠다. 나의 방아쇠를!


+ 축 쳐지는 다음 날, 뛸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뛰었다. 의욕은 저절로 안 생긴다. 시작하지 않으면 의욕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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