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시작에 대한 물음은 흔히 ‘무(無)에서 유(有)가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귀결되곤 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 자체가 특정 철학적 전제를 담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앞서 살폈듯, “진공은 텅 빈 공간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공간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가 존재하고 변화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이해는 ‘절대적인 비존재’는 존재하기 어려우며,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존재’ 자체가 더 기본적인 속성일 수 있으며, 진정한 의미의 ‘무(無)’는 우리가 경험하거나 파악할 수 없는 개념일 수 있다는 철학적 주장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무(無)’는 항상 ‘유(有)’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됩니다. 어떤 것이 ‘없다’는 것은 특정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서술할 뿐, 어떤 절대적인 ‘무의 공간’이 실체처럼 존재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무의 상태’를 상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상대적 기준이자, 인식론적 틀과 언어적 표현의 한계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무한(無限)’이라는 개념 또한 우리가 유한한 경험 세계를 넘어선 것을 상상하고 기술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학적, 철학적 도구에 가깝습니다. ‘무한히 큰 우주’나 ‘무한히 긴 시간’과 같은 개념들은 우리가 직접 측정하거나 경험할 수 있는 물리량이 아니며, 우리의 이론과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인 확장입니다. 무한은 실제로 물리적으로 달성하거나 경험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인간의 제한된 경험과 인식 범위 내에서 우주의 광대함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상대적인 개념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론에서 빅뱅을 논할 때 초기 물질과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빅뱅은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된 사건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극도로 압축되고 뜨거운 상태에서 시작하여 팽창해 온 과정을 설명하는 모델입니다. 현재 우리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빅뱅 이전의 상태를 시간적 의미에서 논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간 자체가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시간은 입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상대론적인 속성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빅뱅 이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묻는 것은, ‘한 손으로 박수를 치면 무슨 소리가 날지’ 묻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 모릅니다.)
+ 순환 우주론(Cyclic Universe Theory)의 가능성: 빅뱅 이후 팽창하던 우주가 빅크런치를 통해 다시 수축하고, 이 수축이 새로운 빅뱅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무한히 반복된다고 제안하는 이 모델에서는 우주에 절대적인 시작도, 절대적인 끝도 없습니다.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과 수축’의 주기를 반복하는 영원한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구름이 모여들어 보이더니, 그다음 흩어져서 보이지 않는다.
모든 모습이 구름의 본성이다.
- 존 버거 -
승려는 한없이 연민으로 가득 찬 음성으로 답했다. “어느 쪽도 아닙니다. 그렇게도 모르시겠습니까? 어디에도 선은 없습니다. 이 길은 언제나 있었던 길입니다. 아니, 길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길 아닌 곳이 없으니 말입니다. 길 안과 길 밖이 없으니 세계 전체가 길이고, 어디를 가나 길인 셈입니다. 수천 년 전에 고타마 싯다르타가 걸었던 길이나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이나 차이는 없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 하나 툭 내려놓으면 됩니다. 그 이전과 그 이후는, 애초에 없던 마음 하나 내려놓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초월적인 것,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박성환, <보살들의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