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일자리와 "존엄"
실업 문제는 가까이서 보면 개인의 무능력과 시장의 실패 문제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 성장과 문명 발달의 명확한 증거다.
경제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생산성 향상, 자동화, 기술 발전으로 예전보다 사람이 꼭 투입되어야 하는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쉬는’ 사람이 증가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꼭 고용 규모가 줄어든다기보다는, 우선 노동에 대한 요구 형태와 방식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쉬고 있다는 청년들이 시급하게 투입되어야 할 ‘명확한’ 일자리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기존 경제질서와 사회적 필요가 재구조화되는 시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 저성장이나 축소 사회에서는 무분별한 일자리 창출보다는 질적 변화와 노동의 재배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특별히 누군가를 시급히 투입해야 할 뚜렷한 ‘긴급 일자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쉬고 있다’는 비판은 오히려 시대 변화에 대한 오해일 수 있다.
인력이 부족하면 시장 원리에 따라 임금이 자연스럽게 오르게 마련이고, 반대로 공급이 넘치거나 기술 발전으로 노동 수요가 줄면 임금 상승 압력은 약해진다. 현실에서 ‘쉬었음 청년’에게 허락된 일자리가 대부분이 최저임금 수준이나 그 이하 포괄임금제로 일하는 기업인 경우, 사회·경제 구조적으로 ‘진짜로 꼭 필요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음을 반영하는 아주 현실적 신호 아닐까? (심지어는 아르바이트성 최저임금 자리도 부족한 실황이며, "너 아니어도 다른 사람이 많아!"라는 분위기다.)
최저임금은 단순히 ‘일자리’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이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억지로 일자리를 창출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렇게 긴급하게 쉬었음 청년 인력을 투입해야할 일자리가 충분히 있다면, 최저 임금이 존재할 필요도 없이 모두가 최소한의 노동으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저성장 시대와 축소 사회에 진입했다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는 사회적 대응을 늦추고 혼란을 키운다. 이미 경제 성장률 둔화는 글로벌 추세이며, 인구구조 변화와 기술 발전이 불가역적으로 만든 구조이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이 먼저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풍요롭고 활기찬 사회를 설계할지 고민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다.
정리하자면, 쉬는 청년 문제, 일자리 부족, 최저임금 논쟁은 결국 경제와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마주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갈등과 담론이다. 기존의 ‘계속 성장-계속 고용’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있으므로, 새로운 사회적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고민하며 대응할 때이다. 궁극적으로 ‘쉬지 말고 당장 일하라’는 식의 단순 압박이 아니라, 변화하는 경제에서 인간다운 삶과 노동의 재정립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존에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해온 활동들도 이제는 노동의 범주에 충분히 편입될 수 있으며, 노동이라는 행위 강박에서 해방되어야 할 차례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산의 가치는 노동의 임금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고, 특히 청년들은 최저임금 수준에 머무르며 그 ‘차이’를 메워야 하는 듯한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에게 “어떤 일이라도 좋으니 놀지 말고 노동시장에 자신을 최저시급으로 팔아넘기라”는 요구는 단순한 일자리 권유를 넘어 공정성의 근본을 위협하는 문제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말은 청년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노동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거대한 자산 가치 상승의 구조적 불평등을 견뎌내라는 사회적 압력과도 같다. 노동임금과 자산 축적의 불균형은 경제 구조의 심각한 왜곡을 보여주고, 그 결과 ‘노동’이 인간의 삶을 온전히 보장하는 수단이 되지 못할 위험을 내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실을 피하거나 부정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 복잡한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동시에 청년들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낮게 평가하지 않도록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 문제는 자본이라는 것이 삶의 모든 곳, 심지어 정신 깊숙한 곳까지 모든 곳에 침투하여, 자신의 경제적 생산성이 곧 자신의 가치라고 굳게 믿게 되는 사회 문하다.
사회적으로도 자산 가치 상승이 노동의 가치와 균형을 이루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기본소득이나 최저임금 강화, 공정한 세제 정책 등 다양한 접근으로 청년과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청년 세대는 단순한 ‘최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미래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노동과 삶의 질을 높이고, 자산과 소득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할 때다.
결론적으로, 노동 시장에서 청년을 단순히 저임금 공급원으로만 보는 시각은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존중받는 노동과 공정한 경제 구조가 세워져야 청년도, 사회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짜증나고, 별로 까다롭지 않고, 지루하고 임금이 형편없는 일자리를 보존하겠답시고 시간 절약 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
모두의 시간을 존중하면서 절약된 노동시간의 이득을 공유하는 소득-분배 체제가 있는 사회라면 확실히 그런 기술이 환영받을 것이다. 우리는 무의미한 일자리의 필요성을 제거하는 모든 전망에 대해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일자리 최소화라는 목적이 일자리 최대화를 대체하는 그런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가?
<시간 불평등>, 가이스탠딩
원제: The politics of time
'인구가 아니라 인간이 한국의 새로운 미래다'
아이들의 수는 아마도 지금보다 줄겠지만, 이들의 가치가 올라가고 또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인구에서 인간으로>, 이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