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녁어스름을 배경으로 내게 한껏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왼손에는 내가 사자고 한 막걸리가 한 병,
오른손에는 당신이 먹고 싶은 요거트가 하나,
양 손 가득 먹을 걸 들고 신이 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양 길가로는 벚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마을에서 직접 연 조그마한 길거리 축제에 불과했지만 푸드트럭, 커피, 솜사탕, 화려한 조명... 갖출 건 다 갖췄다.
우연히 맞이한 즐거움이었다.
아주 오래전 아직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 제부도로 놀러간 적이 있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몇번 갈아타고, 수원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는 섬이었다. 애초에 나갈 생각은 없었기에 방은 미리 잡아두었다. 낮에는 갯벌 위를 한참 돌아다니며 돌게와 조개를 잡아보겠다고 애를 썼다. 그러다 오후쯤 들어와서는 한 명 겨우 들어갈 좁은 욕조에 같이 몸을 담그고 뻘을 씻어냈다. 부끄러웠을테지만 그랬다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저녁과 맥주를 곁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 걸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해안가로 데크길이 따로 나있지 않았다. 그저 도로와 해안이 맞닿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도 저녁 어스름이었다. 놀이기구가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마치 1980년대 미국 하이틴 영화처럼, 사람도 많이 없는 거리에 백열전구 장식의 놀이기구가 돌아가고 있었다. 해봐야 아래위로 움직이며 뱅글뱅글 도는 수준의 조잡한 것이었지만 그 기계에 몸을 실은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의 연인처럼 손을 잡고 백열전구 불빛에 서로를 의지하고, 빙글빙글 돌았다.
우연히 소길리의 축제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나는 제부도의 그 여름이 생각났다. 이유없이 들뜨는 마음, 백열전구 대신 LED 조명, 선선한 바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 그 때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직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당신과 이렇게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이어붙이고 싶다.
서로의 상황과 주어진 환경이 변한다 할지라도,
어느날 문득 다른 여행으로 다시 또 글을 쓸 때,
소길리의 기억이 하나의 연결점이 되어 제부도와 함께 아름답게 이어진 것처럼,
그 때도 여전히 나와 당신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하지 않고 바라보며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2024년 4월 제주 애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