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새 완전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 기분이야.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도, 천둥번개와 비바람을 보고, 느끼고, 듣는 것도 모두 처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도 느껴. 원래는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져. 세상은 한편으론 아름다웠던 거야. 당신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멋진 하늘, 귀여운 고양이, 잘게 부서지는 파도, 비릿한 바다내음…이제까지 암막에 둘러싸여서 이 모든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았어. 느끼지 못하고 살았어.
마음을 달리 먹어서 그런 걸까? 왜 모든 게 새롭게 두렵고, 새롭게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알고 싶어. 이대로 새로 태어난 듯 살아가도 될까? 당돌하게 부딪혀가며 산다고 해서 남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시기질투하지는 않을까? 내가 갓난아기처럼 무엇인가 새롭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남들이 알게 되면 나를 무시하지는 않을까?
세상은 원래 이렇게 두려운 걸까? 세상은 원래 이렇게 아름다운 걸까? 나 눈물이 날 것만 같아.
나는 세상이 내 뜻대로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 뜻대로 했다 해도 금방 다른 이의 뜻에 의해 그 방향은 조금씩 바뀌게 될 거야. 결국에 내가 원했던 정확한 모습은 이뤄지지 않아. 우리의 삶도 이곳의 날씨도, 여정도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은 없어. 내가 원한 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우리 둘 다 원했으나 환경이 변화해서 각자의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나는 당신이 작은 상자에 갇혀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걸 알아. 더 생각할 수 없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삶을 당신은 이겨냈어.
당신은 새롭게 태어난 것이 맞아. 하나의 숨도, 하나의 걸음도, 하나의 관계도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는 게 당연해. 세상을 마주할 때 현실을 가리던 막이 사라져 버렸어. 당신이 치워버렸어. 생생한 현실을 느끼려고. 그것이 옳다 생각했기에, 본인이, 직접. 다 걷었어. 축하해. 고생했어.
남들은 잘 모르는, 우리만의 시간들. 8년전 우리의 첫만남, 거제로 돌아와서야 알았다. 시작과 그 중간,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을. 지금 이 잘그닥 거리는 몽돌들이 그 때는 어떻게 보였을까. 철이 지나도 한참은 더 지난, 멜로영화의 주인공들마냥 물수제비나 뜨던 풋내기들. 돈 한푼이 아쉬워 편의점 맥주와 감자칩으로 저녁을 대신할 때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날 보며 활짝 웃어주는 너는 젖살만 빠졌을 뿐, 변함없다.
폭풍이 몰려온다고 한다. 서둘러 차를 몰아 고현역으로 돌아가야헸다. 몽돌들이 사납게 부딪히기 시작한다. 우리는 생각한다. ‘태풍쯤이야.’ 남들은 잘 모르는, 우리만의 시간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태풍도, 가뭄도, 홍수도, 화마도 모두 이겨냈다.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것이라, 그리 알고 있다. 너도 분명 그리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왠지 태풍쯤이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엑셀레이터에 힘을 양껏 줘본다. 앞으로 나가자. 너는, 나는 새로 태어났음이 분명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