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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sy Apr 09. 2022

2022년 2월 25일의 일기

2022년 2월 25일 일기에서 발췌했지만 약간 다듬고 덧붙였다.

2022년 2월 25일 일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기어코 침공했다. 이로서 전쟁이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미사일이 떨어지고 불이 붙고 굉음이 들리는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푸틴의 엄포는 그저 심리전에서 그치지 않았고 사상자도 백 명을 훌쩍 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가 다른 나라가 개입할 시엔 철저히 응징하겠다며 되려 겁박한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일어났고 민간인들이 다치고 죽어간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구나, 또 내가 하고 있는 크고 작은 고민들이 정말 별 게 아니구나 싶다가도 막상 내가 직면한 문제는 전쟁이 아니라 직장과 인간관계, 또 내 미래인지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다가도 내 문제가 나에게 가장 큰 힘듦이라는 생각에 또 한 번 나의 뼛속 깊이 새겨진 이기심에 놀라고 만다.


지구 반대편에선 전쟁으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남들은 꿈의 나라라는 뉴질랜드에서   없이  정착해서 때론 티격태격하지만 화목한 가족과 건강 문제없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나에겐 문득 문득 공허함이 찾아오는 걸까. 사람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이런 고민을 하는 자체로 복에 겨운 것이라고들 하는데, 나에겐 무소식은 결코 달가운 성질의 것이 아니다. 빨리 무언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고 내가 필요한 곳에 쓰이고 싶다. 자꾸만 조급해진다. 이런 고민마저도  새로운 자극만을 원하는 나의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걸까. 모든 사람이 혁명을 원하지만 설거지를 원하지 않는다는 글귀처럼 반복적이고 평범한 일상을 건너뛰고 극적인 사건만을 쫓아가려는 나의 괘씸한 태도인 걸까. 삶의 단조로움 속에서 경이를 찾는 법을 내가 정말로 잊어버린 걸까?  


근데 내가 겪고 있는 삶의 고민들이 비단 나만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따라 유독 주위에 매너리즘, 공허함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내 나이가 딱 이런 고민을 할 시기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안정감을 위해 제 짝을 찾아 결혼을 하나 싶기도 하다. 근데 꼭 이 시기의 돌파구가 연애와 결혼 밖에는 없는 걸까? 내 삶의 목표가 연애나 결혼이 아닌데 말이다. 연애와 결혼이 내 삶의 목적은 더욱이 아니다.


참 사람이 간사하다! 인턴으로 나름 힘들어했던 시절에는 직장생활이 너무 고되다 보니 출근하는 길에 눈물 뚝뚝 흘리지 않을 만한 일만 있어도 좋겠다 싶었는데 그 부분이 충족이 되고 나니 또 내 삶에 충족되지 못한 다른 것들에 주목하며 불만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래서 나에게 영원한 생명수, 결코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물이 있다는 것은 이 땅에서의 또 다른 구원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적 안정감, 그 어떤 관계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내 안의 텅 빈 공간이 채워질 방법이 있다니. 이미 그 자체로 기적이 아닐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좋은 남자 만나라며 최고의 덕담 마냥 건네지만 난 아직 solitude 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한국어로는 고독인데, 외로움이라는 개념과는 또 다르다. 고독은 혼자 있지만 외롭지 않은 상태. 그 고독의 시간을 통해 충분히 사유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해본다. 물론 건강한 관계 속에서 오는 안정감도 분명 있을 테지만 습관적인 지루함에 대한 저항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느린 습관을 배우고 싶다. 평범한 일상을 향유하자. 설거지를 하지 않고서는 혁명에 이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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